3 장 복음의 권위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2:1-4)
- 앞서 보았듯이 히브리서 기자는 오직 복음 메시지 자체, 복음 메시지 전체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권면한다. 이 메시지는 우리 주와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 및 그 안에 있는 “이렇게 큰 구원”에 관한 것으로서, 우리는 이 메시지를 반드시 고찰해야 한다.
“왜 그렇게 오래된 복음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가?”라고 묻는 이들이 오늘날 많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네 구절을 통해 그 질문에 대답 세 가지를 제시하는 동시에 이 서신의 주요 주제 세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해야 하는 주된 이유 세 가지는 첫 번째 이유는 복음 메시지의 원천과 권위에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메시지를 듣는 모든 사람의 위태롭고 위험한 처지와 상태에 있으며, 세 번째 이유는 이 메시지의 중대성과 놀라운 축복에 있다. 이것이 히브리서의 세 가지 주요 주제이자 누구나 복음을 들어야 하는 세 가지 주된 이유이다. 우리는 복음을 들을 뿐 아니라 생각하고 묵상하는 일에 시간을 드려야 한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붙잡아야 하며, 복음에서 떠내려가지 말아야 한다.
1. 첫 번째 이유는 복음의 메시지의 원천 내지 복음 메시지에 수반되는 권위에 있다.
“왜 이게 첫 번째인가?”라고 묻는 이가 있을 것이다.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오직 이 메시지가 유효한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듯 실용성을 검증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그 나름의 치료책들을 내놓는다. 치료책에 대해 다수가 던지는 질문은 오직 한 가지 “저 제안은 유효한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의 유일한 시금석으로서, 그들은 다른 시금석을 고집하는 우리를 현학적이고 까다로운 자들로 여긴다.
1) 무엇보다 먼저 검증해야 할 것은 메시지의 원천과 권위이다. 그 이유는
① 첫째로 실용성만 따지는 것은 잘못된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삶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진리가 확실히 첫 자리에 와야 한다. 정신은 인간의 가장 큰 자신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특징이다. 동물은 본능으로 움직이지만, 인간은 본능보다 고등한 정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정신과 이성과 분별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삶의 시금석과 기준이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어떤 평가나 판단도 내릴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오늘날 인간에게 제시되는 여러 가지 무효한 치료책들의 차이가 여기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에게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감정적인 것이나 최루제로만 여기는 사람보다 더 무지한 자는 없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복음은 “더욱 유념”하라고 말하며,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고 말한다.(사1:18) 복음은 스스로 진리라고 주장하는데, 진리는 항상 정신에 먼저 찾아와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② 둘째로 실용성만 따지는 잘못된 이유는, 증상만 살피고 원인은 무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증상이 곧 질병은 아니다. 우리는 아플 때 질병보다는 증상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증상을 진정시키는 것은 지극히 옳고 좋은 것이지만, 그 증상을 일으킨 질병을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증상의 원래 목적은 원인이 되는 질병에 주목하게 하는 것이다. 또 질병의 원인은 모른 채 증상만 진정시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편안해지는 것보다 위험한 일은 없다.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세상과 삶 속에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영들이 존재한다. “이 세상의 신”이 존재한다.(고후4: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24:24에서 악한 세력이 “택하신 자들”조차 미혹될 만큼 교묘한 역사와 이적과 기사를 행할 날이 올 것이라고 하셨다. 악한 세력도 이적을 행하시는 성령의 일을 똑같이 행할 수 있다. 그래서 신약성경이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라고 권한다.(요일4:1) 성령이 일하시듯 악한 영들도 일하기 때문에 시험하고 검증해서 좋은 것만 취해야 한다.(살전5:21)
③ 셋째로 실용주의적 관점을 거부하는 이유는, 어떤 상태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지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행복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상과 이생의 많은 것이 일시적 안도감을 줄 수 있다. 일시적 안도감을 주는 그것이 곧 지옥의 사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시적 안도감에 만족한 나머지 영원한 사안들을 무시한 채 오직 이런 것들에서 위로와 위안을 찾는다. 그러나 죽음과 영원한 운명은 어찌할 생각인가? 일시적 만족을 주는 그것이 오히려 가장 큰 원수가 될 수 있다.
- 복음이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 원천과 권위 때문이며, 그것이 주어진 방식 때문이다. 복음을 들어야 할 진정한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 이 메시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출발한다. 성경은 스스로 인간의 책이라고 말하지 않고, 신성한 책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메시지를 주신다고 시종일관 주장한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책이다. 인간이 자기 문제를 풀어 나가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결책을 알려 주시는 책이다.
복음 메시지는 이처럼 유일무이한 것으로서, 우리가 복음을 들어야 하는 최고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2) 두 번째 이유는, 복음이 하나님의 메시지일 뿐 아니라 특별한 방식으로 주신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통해 주신 메시지이다. 우리가 고찰하는 것은 한낱 이론과 사상이 아니고, 사실과 역사이다. 인간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들은 다 이론이요 사상이지만, 복음은 다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한낱 이론과 사상이 아니다. 세상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과 그 의미에 대한 기록이다.
복음이 첫째로 권하는 바는 명백한 사실들을 살펴보라는 것이다. 여러분의 특정한 문제는 그만 잊고 확실한 사실들에 귀를 기울이라. 사실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고찰해야 할 복음의 메시지의 내용은 무엇인가? “주”라고 부르는 분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은 옛 선지자를 세워서 메시지를 주셨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하실 일을 계시해 주셨다. 그런데 그와 본질적으로 다른 일이 일어났고, 교회는 그것을 전할 소명을 받았다.
신약성경에는 2천 년 전 일어난 한 비상한 사건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가 나온다. 천사가 한 어린 처녀를 찾아와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35) 처녀는 다윗 가문과 계보에 속한 약혼자 요셉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호적 신고를 하러 갔으나 방이 없어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을 찾았고 거기서 아이를 낳았다. 그때 목자 여러 명이 찾아와 말하기를, 밤에 들에서 양떼를 지키는데 천사들이 나타나 구유에 누운 아기가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박사들도 하늘에 나타난 특별한 별의 인도를 받고 동방에서 찾아왔다.
주님이 열두 살 때 성전에서 율법 박사들을 당혹케 하신 일도, 서른 살 청년으로 세상에 나와 사람들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설교, 세상에 없던 놀라운 가르침을 주신 일도 기억하기 바란다.(요7:46) 그는 기적을 행하셨다. 나병 환자를 고치시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물결을 명하여 광풍도 잠재우셨다. 그는 내내 엄청난 주장을 하셨다. “나를 따르라” 사람들은 실제로 그를 보았고, 그와 함께 살았으며, 그가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결국 그는 체포당하여 누가 보아도 연약한 무방비 상태로 무참히 나무에 못 박혀 숨을 거두셨다.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내려 무덤에 두었으나 셋째 날 가보니 시신이 감쪽같이 사려져 버렸다. 그는 다시 살아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이것은 전부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일차적으로 이런 사실들에 귀 기울일 것을 요청한다. 이분이 바로 하나님의 외아들이며, 하나님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문제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이분을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 일의 정확한 의미를 알 때까지 쉬거나 마음을 놓지 말라고 권면한다. 그가 오신 이유가 무엇이며 이 일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 말씀해 오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 품속에 계셨던 독생자, 그 본체의 형상을 보내 주셨다고 한다. 세상에 보내신 이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아들은 선지자들보다 뛰어나신 분이요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분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처럼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말씀하셨다면 마땅히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 복음 메시지는 이런 원천에서 나왔고 이런 권위를 가진 것이기에 주목해야 한다. 외아들을 통해 주신 말씀에도 유념치 않는 자는 제정신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은 그의 출생과 그가 행한 기적과 그의 가르침과 그 자신의 주장으로 입증되었을 뿐 아니라 특히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입증되었다. “죽은 자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롬1:4)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모든 사실이 진실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이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 하셨느니라” 사도들이 우리에게 이 사실들을 알려 주었다.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들, 기독교회를 만들고 세운 사람들, 이후 모든 시대에 전할 메시지를 물려준 사람들이 이 사실들을 알려 주었다. 그들이 처음부터 설교하고 증언했기에 우리가 이 사실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십자의 죽음과 부활을 본 증인으로서 이 모든 사실을 널리 전파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이 사실들을 증언하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했다.
이처럼 복음 메시지를 위해 고난을 감수한 그들의 태도나 성품만 우리에게 확산을 주는 것은 아니다.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 즉 사도들의 메시지를 입증하시고 증언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은사들도 확신을 준다. 이들이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기독교회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순절 날 3천명이 회심한 이래 교회는 계속 확산되었다. 사도들은 기사를 행했고,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메시지를 입증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표적과 성령이 나타남이 없었다면 그들은 수백 년 전 잊혀졌을 것이며, 기독교회와 메시지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3) 세 번째 이유는 이것이 복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 없이 이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복음에 유념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아들을 통해, 성령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주고 계신다. 그 메시지가 전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 사실들을 직시하라. 이 사실들이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 때까지 한 순간도 쉬거나 마음을 놓지 말라.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궁전을 떠나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의 자리로 나아가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굳이 죽으실 필요가 없었고 그도 피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10:18)
다시 한 번 간청하건데, 여러분이 매달리고 있는 고민거리와 걱정거리, 건강, 인도의 필요성을 비롯한 모든 문제는 그만 잊으라. 중요한 문제는 오직 이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런 일들을 하신 것이 여러분과 무관하다고, 아무 상관이 없다 하겠는가? 그럴 수 없다! 그가 세상에 와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이유가 무엇인가? 오직 그것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용서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하나님과 화목케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지옥에서 구해 내 영원한 지복을 누리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이런 사실들에 “더욱 유념”해야 하는 이유이다.
세상의 방책들도 여러분을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여러분을 분리시키는 죄의 문제이며 여러분의 영혼이다. 여러분과 하나님의 관계이며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오직 복음뿐이다. 이 복음의 사실들에 유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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