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로이드 존스, '히브리서 강해', 14장 본- 변화산,산상설교,갈보리,감람산 (김영희)

강대식 2020. 7. 15. 20:58

14 장 본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8:1-5)

 

-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이었던 하나님의 종 모세의 중대한 임무를 상기시킨다. 복음을 전하는 모든 설교자 또한 이 중대한 임무를 맡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전하는 바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이것이 복음이다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니다라고 한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명백히 모순되는 말을 한다. 이처럼 현대에 발생하는 모든 혼란의 기저에는 권위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해답은 오직 한 가지 계시- 밖에 없다.

히브리서 기자는 거짓 선생들이 있어 믿음의 혼란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편지를 썼다. 그는 권위의 문제를 계속 강조하며,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 점을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요지는 위대한 민족의 영웅이자 지도자였던 모세 당시와 지금 너희 처지가 비슷한 것을 모르느냐라는 것이다.

 

모세는 그 메시지를 어디에서 얻었는가? 모세는 당대인들에게 연설했고, 큰 대가가 따르는 일들을 명했으며, 예배와 의식 및 여러 문제에 관해 세세한 지시를 내렸다. 그 메시지와 권위의 원천이 어디 있었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이에 답하고 있다. 모세는 단순히 위대한 종교적 스승이 아니었고, 타고난 지도자 또한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가 정치가로서 제가 숙고한 계획을 제안한다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되는 말과 행동을 했다. 모세는 목자였다. 그가 이런 인물이 된 이유는 오직 하나님이 그를 불러 임무를 맡기셨기 때문이다.

 

-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25:40)

하나님은 모세를 산으로 불러 40일 밤낮을 머물게 하셨다. 그 기간에 그가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말을 정확히 알려 주신 후 명하신 그대로 정확히 시행케 하셨다. 세세한 계획을 알려 주시고 나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성경의 중대한 메시지 또한 그처럼 모든 부분이 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세히 지시해 주셔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특히 하나님과 어떻게 만나고 교통해야 하는가? 이것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당면한 문제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세세한 양식()과 계획을 알려 주심으로 그 모든 질문에 대답하셨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축복받는 단 한 가지 유일한 방법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의 축복을 받는 길은 모세에게 알려 주신 이 방법뿐이다. 그런데 일부가 그 방법에 반발했다. 개중에는 대제사장이 된 모세의 형 아론의 아들들과,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라는 이스라엘의 똑똑한 귀인들도 하나님의 방법에 반기를 들었다. “왜 모세와 아론의 방법만 써야 하는가? 우리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으니 우리 생각대로 해보자라고 했다가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하나님의 본,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야 한다.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히브리서 기자도 이 점을 상기시킨다. 요컨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도 이처럼 본을 따라야 했다면, 하늘에 있는 것의 원형은 얼마나 더 본을 따라야겠느냐?”라는 것이다. 성막과 성전을 비롯한 모든 것은 실제가 아닌 모형이요, 그림자요, 예표에 불과했다. 그런 것들도 을 따라야 했다면, 중대한 본체는 무한히 더 본을 따라야 한다.

 

일반적으로 교회가 어긋난 길로 접어드는 지점이 여기이다. 대중적 가르침은 인간의 필요와 생각을 출발점으로 삼으며, 과학과 지식을 갖춘 현대인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니 심한 혼란에 빠지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인간의 탐색으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바울도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했다.(고전1:21) 이 방법을 뒤집는 우리의 사고는 전부 틀린 것이다.

 

-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이 산에서 보이신 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저는 이 계시의 산, 하나님의 산으로 돌아가자고 요청하는 바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를 예로 들었지만, 선지자들이나 이스라엘 위대한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베드로는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고 했다.(벧후1:20) 예언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1)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본과 메시지와 계시를 말하고 기록했다. 하나님의 생각을 전하고 계시를 전달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고, 말씀이 사로잡았다.

바울도 자신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일꾼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고전4:1) 갈라디아서에서는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1:11-12) 자신은 전령에 불과하며,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요 위임받은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강단에 서 있는 저의 권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의 산에서 기쁘게 보이신 을 그대로 전할 뿐이다.

 

-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본은 무엇인가?

1. 변화산

이 산이 나사렛 예수라는 복되신 분이 누구신지 명확히 알려주기 때문이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17:1-2),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이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17:5) 그는 홀연히 변형되셨고, 영광이 온통 그곳을 뒤덮었으며, 그들은 예수의 위엄을 보았다. 하나님이 친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 분의 말을 들어야 한다.

세상은 지금 곤경에 빠져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며, 자기 인생조차 실패한다. 어떤 인간도 죽음과 무덤의 문제를 풀 수 없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칠 수 없다. 이제 인간의 말은 그만 듣고, 그 거룩한 산에 울려 퍼졌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나사렛 예수는 단순히 위대한 종교적 스승이 아니며 도덕 혁명가,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다. 그의 위엄과 영광을 직접 본 사도들이 내린 결론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4:12)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하나님을 알려줄 이가 없다. 오직 예수만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실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다. 우리를 기다리는 영원한 세상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다. 모든 본은 오직 이 복되신 분 안에만 있다.

 

2. 산상설교

1) 주님이 가장 먼저 가르치신 것은 팔복으로 그리스도인이 실제로 어떤 사람들인지 묘사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선량하고 친절하며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리스도인이며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산상설교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5:3)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며 자신에게 아무 소망도 없음을 안다는 뜻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5:4)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탄식한다. 항상 자기를 정당화하며 빠져나가지 않는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5:5) 현대인에게서 온유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가? 그 모든 자신감과 확신과 허세와 과시를 생각해 보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5:6) 현대 세계를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고 할 수 있는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의를 위하여 핍박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5:7-10) 그리스도인은 이런 사람들이다. 팔복이 완벽하게 묘사하듯, 아주 영적인 사람들이다.

 

2) 율법의 절대성이다. 현대인은 율법을 싫어한다. 예수께서(하나님이 그 말을 들으라고 하신 분) 하신 말씀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5:17-18) 모세에게 주신 율법은 하나님의 법이기에 절대적이며 유효하다. 율법의 일부를 어기면 곧 전체를 어긴 것이다. 온 존재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3) 율법의 영적인 성격도 알려 주신다. 율법은 외적인 법이 아니라 마음의 법이다. 살인 행위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이미 살인한 것이다.(5:22) 하나님은 겉모습이 아닌 마음을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마음 온 마음- 을 원하신다.

 

4) 주님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라고 하신다. 비판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7:1-3) 주님은 위선과 가장과 허위를 폭로하신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 완전히 정직하라고 하신다.

 

5) 생명으로 가는 길은 좁다고 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7:13-14) 신자는 조롱받고 정죄 받을 것이다. 박해도 받을 수 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좁은 문이요 협착한 길이다.

 

6) 심판에 대한 말씀으로 설교를 마무리하신다. 양의 옷을 입은 이리는 스스로 아주 영리하다고 생각하지만 곧 정체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7:15) 그럴듯해 보이는 열매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눈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2-23)

주님은 똑 같아 보이는 두 집,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에 대한 비유로 설교 전체를 요약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7:24)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야 무너지지 않는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7:26-27)

 

하나님은 변화산에서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셨고, 산상설교는 그의 말을 들려준다. 오늘날 강단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하지만, 예수는 산상설교에서 우리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어긴 것을 드러내시며 모든 사람을 정죄하신다. 우리는 다 부정한 자들이며, 위선자들이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자들이다. 이것이 산상설교가 보여주는 본이다.

 

3. 감사하게도 우리가 달려갈 또 다른 산, 갈보리 언덕이 있다.

이 산을 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라. 갈보리는 어떤 산보다 영광스러운 본을 보여준다. 변화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추신 분이 바로 메시아이시다. 완전한 삶을 사셨으며 이적을 행하셨다. 그런데 갈보리 산이 보여주는 것은 심히 연약하며 확연히 무력한 상태로 나무에 못 박힌 모습이다. 대체 거기서 무엇을 하시는 것인가? 모세가 광야에서 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4-15)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복된 산, 갈보리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것이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9:22)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서 죄와 함께 거하실 수 없다. 황소와 염소를 잡아 그 피를 뿌리도록 모세를 통해 가르치셨다. 히브리서의 중대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9:11-14)

 

이 염소와 황소의 피로는 죄를 없앨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짐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짐승의 주된 역할은 죄를 없애기에 충분한 피가 장차 흐를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 피가 어떤 피인가? 세례 요한은 지나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1:29) 요한이 이 말을 하는 뜻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가르친 모든 일이 이제 성취될 것이다. 양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임시조처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셨다.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양, 자신의 제물을 준비하셨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이 피를 흘리게 하셨다. 이것이 갈보리 언덕의 메시지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내릴 수밖에 없는 결론은, 오직 이것만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도 우리를 구원하고 용서하며 대속하여 자신과 화목케 하실 수 있었다면 굳이 이런 고난을 아들에게 허용하셨겠는가? 그가 이 일을 하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 흘리신 피를 통해서만, 갈보리 언덕에서 우리를 위해 드리신 제사를 통해서만, 자기 영혼을 우리를 위한 제물로 바치신 일을 통해서만 구원은 이루어진다.

 

2) 갈보리 언덕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것이다. 죄 없이 순결하고 무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어린양이 되어 자원해서 도살장에 끌려가셨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여기에 사랑이 있다! 현대인의 감상적인 사랑관은 진정한 사랑을 모욕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알고 싶다면 갈보리 언덕으로 가야 한다. 우리 모든 죄의 고통과 수치와 형벌을 아들에게 지우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그곳에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십자가의 수치와 죽음에 내주셨으니- 이는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산에서 변형되신 분, 설교하신 분이 보여주신 본에 이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분이 보여주신 본을 살펴보았다.

 

4. 감람산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사망의 줄을 끊고 부활하셨으며 무덤을 밟고 승리하셨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1:9-12) 인간의 재능을 자랑하며 제 힘으로 역사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악하고 교만한 현대 세계에 이 메시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그런 태도에 대해 성경이 내놓는 대답이 이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이 또한 복음의 필수요소이다. 성찬상에 나아갈 때 우리가 하는 일은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다.(고전11:26) 우리는 오실 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감람산의 메시지가 그렇게 선포하고 있다. 예수는 모든 권세를 손에 쥐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원수들이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다.(10:13)

 

세상이 장차 어찌 될 것 같은가? 점차 행복하고도 완전무결한 시절이 올 것 같은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24:37-38) 계시록은 세상의 큰 권력, 군사 권력과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 온 세상을 통제할 힘과 권세를 가진 짐승들 - 이 일어나 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을 죽이는 장면을 보여 준다. 그러나 잠시뿐이다. 감람산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분이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백마를 타고 오셔서 자신이 시작한 일을 마치실 것이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빛과 지식과 진리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11:9)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만유를 통치할 것이며, 아버지 나라를 돌려드릴 것이다. 하나님이 만유가 되실 것이며, 만유 안에 계실 것이다. 이것이 감람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본이다.

 

여러분은 이것이 임을 알고 있는가? 혹시 지금 불행하게 살고 있어서 실패감을 느끼고 있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껏 연구한 이 뿐이다. 실제로 이 본은 여러분의 필요를 다 채우고도 무한히 남을 만큼 큰 것이다.

 

- 이제 긴요한 질문을 한다.

여러분은 이것을 으로 받아들이겠는가? 여러분은 이 본을 따르고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 성부 하나님이 보내신 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신 분 - 이 친히 그려 주신 본임을 알고 있는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말을 듣고 있는가? 그의 얼굴을 보라. 그가 겪으신 고난과 고통을 보라. 그는 말씀하신다. 이것만이 너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이 일을 하려고 왔다. 내가 이렇게 죽는 것은 바로 널 위해서다. 네가 할 일은 날 믿고 내 피와 부활과 중보의 효력을 의지하는 것뿐이다.”

 

그가 다시 오실 것이다.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을 비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의 본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파멸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러면 구원받을 것이다. 단순히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제 어리석음을 알고, 이 본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입니다라고 아뢰면 받아 주실 것이다.

 

여러분이 자신이 하나님의 큰 계획과 목적의 일부가 되었음을 깨달을 것이요, 날마다 자신의 삶에서 그 영광스러운 계획이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와 동행할수록 놀라움은 점점 더 커질 것이며, 마침내 그의 영광스러운 임재 안에서 영원토록 영광을 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