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2 주일설교
본문: 약 3:13-18
제목: 위로부터 난 지혜
1. 사람의 지혜는 땅 위의 것, 정욕의 것, 귀신의 것이다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약3:14-15)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참다운 지혜와 총명은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곧 선행을 보인다는 것이다.
온유함으로 하는 선행이 없다면 그것은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서 의와 진리를 자랑하는 것은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목사 장로 권사라면서,
그 진리를 거스르는 큰 목소리, 그 자랑스런 독단과 험악한 행동들이 좋다고,
지혜의 온유함이란 찾아볼 수 없는 그 깃발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기독교의 망신이요 교회의 추악이다. 신성모독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지혜와 총명이 있다면 말이다.
이는 세상의 요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가정에서도, 모든 인간 관계에서도, 해당 된다.
선과 의를 말하면서, 지혜의 온유함은 없고, 시기와 다툼만 있고,
혼란과 모든 악한 일만 있다면,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는 것이다.
왜 그리 안 되는가?
성령이 없기 때문이고, 있어도, 성령을 따르지 않고, 육신의 정욕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껍데기 정의와 진리만 있고, 그것은 다툼과 혼란과 악한 일만 양산하게 된다.
그 지혜가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그 원천을 가보면 귀신의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공중 권세 잡은 자가 그 사람의 마음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하신다.(엡5:18)
진리대로 행할 때, 성령으로 행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게 된다.(엡5:21)
아내는 남편에게 주께 하듯 복종하고,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듯 아내를 사랑하게 된다.(엡5:22-6:9)
에베소서 5장의 순서를 눈여겨 보기 바란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18절
다음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1절
다음에, 아내들이여, 남편들아, 자녀들아, 아비들아, 종들아, 상전들아 명령하신다.22-6:9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술에 취해 있기 마련이다.
그 술이 땅 위의 지혜요, 정욕의 지혜요 귀신의 지혜이다.
그 술은 취해서 시기와 다툼,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을 양산한다.
십자가의 죽음 없이, 부활의 영광 없다. 죽음 없이 생명, 화평 없다.
성령의 충만함 없으면 ,그리스도를 경외함 없고, 그 경외함 없으면, 인간관계의 피차 복종 없다.
인간관계의 다툼의 원인도, 그 해결책도, 이 순서에 유의함에 달려 있다.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 하면서도 자기가 진리를 거슬르고 있는지를 모른다.
자기가 왕인 사람은 결단코 진리를 온유함으로 선행으로 행할 수가 없다.
왕이 없으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서 암흑과 사망과 멸망을 낳는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사사기의 마지막 말씀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3백년 사사시대 동안 암흑의 시대가 된 원인과 결과를 한 마디로 해주는 말씀이다.
우리의 생애가 가나안이 되지 못하고 사사시대가 되는 원인과 결과를 말해주고 있다.
2.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약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가 성결하다.
성결하지 못하니까 더럽고, 시기와 다툼이 있고 혼란과 악한 일이 있는 것이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령의 지혜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고전2:12)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고전2:13)이다.
땅 위의 지혜는 ‘세상의 영을 받아’,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이다.(고전2:12-13)
위로부터 온 지혜는 사도와 선지가가 가르친 전통이요,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회복한 전통이다.
사람의 지혜를 버리고 성령의 지혜로 돌아가는 것,
그것만이 참다운 교회 개혁이고, 참다운 부흥이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가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이 따른다.
화평은 성결의 열매요, 선한 열매이다.
화평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성결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너희 의가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화평이 먼저일 수 없다.
화평이 먼저인 성결과 의와 정의 또한 가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성결함에서 오는 화평이어야 하고 화평의 열매를 낳는 성결이어야 한다.
성결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이요, 하나님과 바른 관계인 경건이다.
경건이 없으니 불의를 낳는 것이요, 그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진노가 임한다.
오늘날 기독교는 만인사랑을 내걸면서 화평을 앞세우지만, 성결함이 먼저 없기에,
빛 좋은 개살구이고, 가짜이고, 온유한 지혜로 선행을 낳지 못한다.
시기와 다툼과 혼란과 악한 일만 있다.
성령의 지혜이기에 성결하고, 그 성결을 우리 성품과 삶에 심기 위해,
하나님은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면서 그 위험한 광야 생활을 통과하게 하신다.
그분이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하셨고 본을 보이셨다.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2: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리라”(벧전5:10)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곧 거룩함이다.
그 거룩한 성결이기에, 오직 위로부터 난 성결이기에, 다음에 화평을 낳고
관용과 양순과 긍휼이 따르고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는 것이다.
행여 거짓 성결에 속을까봐 그 열매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열매를 보고 알라.
선한 열매가 가득하지 못하고 편견과 거짓이 있다면,
화평과 양순과 긍휼이 없다면, 그 지혜는 위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땅의 것이다.
사람의 정욕이 낳은 지혜요, 그 원천이 귀신인 것이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많이 세워서 성결과 화평을 낳지 않으신다.
좁은 문, 협착한 길, 찾는 이도 적은 길을 통해, 생명과 구원을 낳고,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거짓 선지자들이 큰 문, 넓은 길로 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다.
땅 위의 지혜, 사람의 지혜가, 사람의 정욕에서 나온 지혜인 것을 알고,
그 원천이 귀신 마귀 사탄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모든 이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한다.
친히 모퉁이돌이 되신 그리스도 위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우리 자신의 성전과 교회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 일을 수행한 사람들이 개혁자들이요, 청교도들인 것이다.
그 최종 열매인 청교도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로 돌아가는 것이다.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다.
시기와 다툼이 없고 혼란과 악한 일들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엄밀한 의미의 ‘청교도들’과 ‘청교도주의자들’을 분별해야 한다.
명목상의 청교도 신앙으로, 이익을 취하는 자들이 바로 청교도주의자들이다.
또 하나의 ‘바리새인의 의’를 낳고, 미혹과 혼란과 암흑을 낳는 뱀의 후손들이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 왔다.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될 것이다.(고후11:14-15)
요즘 청교도를 파는 자들이 많이 나왔다.
청교도들의 검증된 고귀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자들이 청교도를 팔고 가장하고 있다.
청교도의 책들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 자들이 ‘청교도 신학교’, ‘청교도 교단’이라고들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청교도들의 책을 많이 공부했지만, 그것으로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었지만,
그들의 정신과 삶이, 패러다임이, 전혀 아닌 자들이 나와서,
청교도 신앙의 물을 흐리고 호도하고 흑암으로 인도하고 있다.
청교도에 관한 책들 중에 4분의 3이 청교도주의자들의 책인 것을 알면 놀랄 것이다.
4권 중에 한 권만이 진짜인 셈이다.
15년 동안 청교도 신앙을 공부하며 얻은 결론이다.
성령께서 가르쳐주신 지혜요, 위로부터 난 지혜가 가르쳐 준 지혜로 확신한다.
청교도 아카데미의 사명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절실한지, 더욱 분명해진다.
주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바울의 고백이 가슴에 와 닿는다.
참으로 그리스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면,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그러한 결단과 과정이, 바울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꼭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지식은 많이 못 전할지라도, 그 결단과 과정이 절대적인 것임을 가르쳐주고,
확신시켜주고,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청교도 아카데미의 사명이다.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실천하는 패러다임이, 청교도의 패러다임으로 바뀌지 않으면,
청교도주의자들을 양산하고 마는 결과가 될 것이다.
양의 우리에서 다윗을 취하듯이,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다윗을 이끌어 내듯이,
취하고 이끌어 내어, 하나님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해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지도하게 해야 한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틈을 막으며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워야 한다.
3. 의의 열매는 화평으로 심어 맺는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3:18)
전쟁을 해서, 혁명을 해서, 의를 이루지 못한다.
십자군 전쟁으로 예루살렘을 회복하지 못한다.
부흥주의는 부흥이 아니다. 부흥은 오직 성령의 기름부음일 뿐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십자가를 통해 영광과 축복을 이루는 것이다.
인간의 방법은 영광과 축복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시기와 다툼으로 혼란과 모든 악한 일로 이루는 것이다.
구악을 일소한다고 하면서 신악은 더 추악하고 더럽다.
교회 부흥을 이룬다고 하면서 성경의 정통 교리들을 멸시하고 세상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사람의 계명(지혜)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줄을 모른다.
하나님의 방법은 성경에 분명한 교리로 나와 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방법은 성경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증거되고 있다.
성경은 덮어 놓고,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만을 따르니, 세상의 학위만을 따르니,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요, 음부의 권세에 종 노릇하는 것이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을 낳고, 다음에 화평을 낳는다.
그 화평으로 의의 열매를 거두게 한다.
성결은 무시하고 멸시하면서, 세계 평화를 부르짖으며 유엔을, 연합을, 세운들 무얼 이루는가?
성결이 낳은 화평만이 의의 열매를 거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결이 진정한 화평을 이룰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의의 열매는 그 화평으로만 거둘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진리를 모르니까, 잊어버리니까,
어느 한쪽의 이데올로기 깃발을 따라가고, 그 논리와 주장들을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것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길이, 그리스도의 길이고, 생명의 진리의 길이다.
땅 위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령의 지혜요, 사도와 선지자가 가르친 전통이요,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회복한 가르침이요 지혜이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거짓과 편견이 없음을 기억하고 이루고 실천하자.
청교도 신앙을 공부하고, 말씀으로 살고, 마침내 복과 상을 받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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