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6 주일설교
본문: 요일 4:1-6
제목: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1.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4:1)
오늘날 성령의 역사라고 떠들어대는 것의 90% 이상이 가짜인 것을 알아야 한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정서론’을 읽으면서 깨닫고 확신하였다.
그는 휘트필드와 함께 미국의 1차 대각성을 주도한 목사이고 신학자이다.
그 부흥의 시대에도 사탄은 함께 역사하여 많은 부작용들을 낳았고 부흥을 종식시켰다.
그래서 그는 영을 분별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확실한 기준을 제시해 주었다.
긴 것 같으면서 아닌 것 12가지, 확실히 긴 것 12가지를 제시하였다.
성령 운동한다는 사람들, 쓰러뜨리고 안수한다는 자들, 예언하고 병 고치고 방언한다는 은사자들,
신비주의자들, 경건주의자들. 거의 대부분이 가짜인 것이다.
2차 대각성을 주도한 찰스 피니와 무디, 부흥사들, 그들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었다.
부흥과 부흥주의는 다른 것이다.
부흥은 진리의 영인 성령의 역사이고, 부흥주의는 미혹의 영을 뒤집어쓴 사람의 역사이다.
교회가 많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다 부흥이 아닌 것이다.
기업 키우는 경영 기법으로, 사람 많이 모으는 연예 오락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영의 역사를 분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교회만 키우면 다 부흥이고 성령의 역사로 안다.
1차 대각성과 2차 대각성의 차이를 모르고 같은 역사로 아는 목사들 신학교수들이 대부분이다.
영을 다 믿지 말고 분별하라고 하는 데도 분별할 줄을 모르고 영을 다 믿기 때문이다.
욕심이 앞서고, 탐욕과 방탕을 해결하지 못했고, 위선과 악독과 불법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부흥 부흥 하고 성령 성령, 은사 은사 한다.
다윗이 왜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했는가?
이 성령 운동한다는 사람들의 특징은 성경으로 향하지 않고 탐욕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찰스 피니 무디 빌리 그래험 할 것 없이 부흥주의자들은 말씀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이제까지의 기독교가 지켜온 중요한 교리들을 함부로 평가절하하고 자기 신학을 많이 주장한다.
내가 늦게 목사 되어 성령 운동한다는 사람들하고 십년을 어울렸는데,
그들이 주의 증거들인 성경을 향하는 것 보지 못하였다.
탐욕과 방탕, 악독과 불법으로 향했고. 주님이 바리새인들을 책망한 내용 그대로였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을 다 믿지 말아야 한다.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해야 한다.
분별하는 책임이 내게 있고 속고 미혹 당한 것에 대해서는 그 형벌 내가 감당해야 한다.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
얼마나 많으냐? 이 또한 90% 이상이다.
주님 말씀대로 큰 문, 넓은 길로 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신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5-20)
그 다음 이어지는 말씀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였어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시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하시는데도 조금도 귀담아 듣질 않는다.
양의 옷만 보고, 그들의 열매를 보지 않는다. 탈이 나고 사건이 나는데도 아랑곳 없다.
가시나무요 엉겅퀴인데도 거기서 포도를 무화과를 기대한다.
화려한 학위와 외양, 사탕발림, 거짓 형통과 평안, 쓰러뜨리는 것, 귀신 쫓는 것, 보지 말고,
주님은 그들의 열매, 그들의 인격의 열매, 삶의 열매를 보고 알라는 것이다.
진짜 선지자는 좁은 문, 협착한 길로, 찾는 이도 적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이다.
찾는 이들이 많다? 그러면 그것, 아닌 것이다.
참다운 성령의 역사가 없는데, 많이 모인다, 유명하다, 건물이 크고, 의식이 화려하다?
그러면 백발백중 미혹의 영의 역사이다.
제도권 유대교를 장악한 유대교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천년 동안 유럽을 지배한 교황 세력들이 개혁자들을 죽였다.
영국을 지배한 국교도들이 청교도들을 불에 태워 죽이고 고문하여 죽였다.
큰 교단, 큰 교회, 유명 목사, 좋아하지 말라.
또 작다고 다 아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으로 사는 지를 보아야 한다.
그 마음이 탐욕으로 향하고 있는지, 주의 증거들인 성경에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며, 그의 거짓 일꾼들은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3-15)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인데도, 초대 교회 교인들도 속아 넘어갔다.
그들은 지금도 그리스도의 사도로 목사로 신학교수로 가장하고 있다.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
사탄의 일꾼들도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고 있다.
잘 나가고 있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심판 받고 멸망 지옥에 갈 것이다.
미혹의 역사를 보내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11-12)
악한 자 거짓 일꾼들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지만,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아버지 스승은 적다고 하였다.
어느 시대나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청교도 아카데미를 하나님이 축복하여 쓰시더라도
절대로 대학 인가나 학교 인가 받지 말라고 정관에 못 박고 있다.
하늘의 인가로 족한 것이다. 성령의 인가로 족한 것이다.
미국 하버드와 프린스턴 신학교의 변질의 역사를 결코 닮지 말라는 것이다.
유명하고 크고 위대할려고 하다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힘쎈 집단 유명 교단과 교회 안에, 그리스도가 없고, 세상의 포로이고, 바벨탑에 갇혀 있다.
2.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한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4:2-4)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아들만이 아니고, 성자 하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육체로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입술로만 시인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 중심으로 영혼 중심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 나기 전에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성령은 자기를 높이시는 분이 아니시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요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분이시다.
성령의 역사를 자랑하며 성령을 높이는 자들은 거기서부터 그 정체가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자기를 높이시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높이셨다.
마찬가지로 성령은 아들 하나님만 높이신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아들을 알 수도 영접할 수도 없다.
아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
낮추시고 높이시는 삼위 하나님의 관계를 잘 알아야 한다.
성령을 높이는 자들은 적그리스도의 영이요 미혹의 영인 것이다.
성령은 또한 성경을 쓰셨기에 성경을 높이고 최고의 권위를 성경에 두신다.
신비주의 경건주의 잘못된 것은 그들이 성령의 체험과 역사를 강조하면서
성경을 낮추고 무시하고 소홀히 하는 것이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의 큰 차이는 성경을 높이냐 체험과 역사를 높이냐의 차이이다.
자기의 주관적인 체험과 영의 역사를 강조하고 자랑하다 보니까
성경과 멀어지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게 되고, 자유주의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대개 유명한 자유주의자들은 경건주의 집안에서 나오고 있다.
칸트도 쉐익스피어도 카엘케골도 그 출신들이다.
진리에는 관심이 있는데, 성령이 쓰신 성경에는 관심이 없고,
미혹의 영이 가르치는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에만 관심이 있다.
예수가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고 미혹의 영인 것이다.
정말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한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들을 이미 이기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세상에 있는 적그리스도의 영보다 크고
그들을 이미 이기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이기는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것이다.
이 모든 일,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에서 이다.
3.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아는 기준은 누구의 말을 듣는가 이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4:5-6)
세상에 속하였는지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진리의 영인지 미혹의 영인지,
아는 간단한 방법을 말씀하고 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세상에 속한 말을 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는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하는 말만을 듣고 다른 말은 듣지 아니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속한 자들, 진리의 영을 받은 자들은 ‘우리의 말’을 듣는다고 하였다.
‘우리의 말’이 무엇인가? 사도의 말이다.
지금 ‘우리의 말’, 사도의 말은 성경이다.
성경을 듣지 않는 사람들, 성경을 멀리하고,
그 성경을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경건서적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이다. 미혹의 영에 속해 있는 것이다.
영의 소속은 둘 밖에 없다. 중간은 없다.
세상의 배후엔 미혹의 영이 있고, 세상은 미혹의 영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말만을 듣는 것이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심판이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일5:19)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온 세상의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말 곧 사도의 말, 곧 성경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요 온 세상이다.
사탄은 온 세상 천년 중세를 지배하면서 사도의 말, 성경을 듣지 못하게 하였다.
성경을 자기 나라 말로 번역한 자들을 불태워 죽였고,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
개혁자들을 고문해 죽였다. 생명과 모든 소유를 빼앗아갔다.
청교도들은 이 개혁자들의 미완성 개혁을 영국에서 완성한 사람들이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의 말, 사도의 말로,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사람들이다.
교회 안에 신학교 안에 세상에 속한 말들이 난무하고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이 되었는데도
좋다고 평안하다고 복받는다고 천국 간다고 안심하고 있다.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무섭고도 놀라운 일이다. 마지막에는 어찌 하려느냐 하신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말, 사도의 말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참다운 개혁이고 부흥이다.
인간의 부흥과 개혁은 권력 다툼이요 구악을 일소한다고 하면서 더 지독한 신악을 낳는 것이다.
청교도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개혁이요 부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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