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1/29 주일설교, '부르심과 택하심', 벧후 1:10-11

강대식 2020. 11. 29. 20:46

2020-11-29 주일설교

본문: 벧후 1:10-11

제목: 부르심과 택하심

 

1.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1:10a)

 

부르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지만, 그 전에 택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부르신 것이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3-5)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고

때가 되니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이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신분과 특권과 영광을 분명히 알고 굳게 붙들고 믿음으로 견고히 서는 것이다.

세상 어떤 풍파가 몰려와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지속되어도,

시온산처럼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한 것은 그 앞에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셨음을 의미한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주셨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이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이다.

 

누구를 힘입어?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음로써 이다.

그리스도인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행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지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자녀로서의 관계를 맺게 해주셨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과 특권을 갖게 된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관념적으로 믿는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내 마음 중심에, 영혼 중심에 영접하여 섬기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만이 이 믿음을 은혜로 선물로 받고 영접할 수 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교회 다닌다고, 직분을 가졌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영접기도 천 번을 하더라도,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들이 착각하고 있다.

 

유대인이라고 다 유대인이 아니다. 이면적 유대인이이어야 한다.

모태 신앙이라고 어릴적부터 교회 다녔다고? 아니다.

혈통으로 나지 아니한다.

 

내가 믿기로 결심해서? 나의 육정으로 나는 것이 아니다.

목사가 세례 주고 자녀라고 선포해 주어서? 사람의 뜻으로 나는 것이 아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진 것이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다.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가가 아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다. 무조건 믿으라가 아니다.

성령으로 회개한 적이 없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교인은 될지언정.

 

명목상의 그리스도인과 실질상의 그리스도인은 구별되어야 한다.

구별될 때 자기의 신분과 특권과 영광을 알게 되고, 믿고 의지하게 되고,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게 된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자녀들의 삶의 의미와 목적은 분명하다.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려고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자녀 삼으신 것이다.

 

자녀가 되었으면, 아버지를 닮아가야 한다.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였으면,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자녀도 거룩해져야 한다.

 

택하시고 부르셔서 자녀가 된 자들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었지만,

아직도 그 속에 세상을 사랑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베어있다.

그것을 씻어내고 배설물처럼 버리게 하는 곳이 광야이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그 위험하고 광대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는 간조한 땅을 통과하게 하는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는 것은, 목적은 하나이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흠이 없게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면서, 이 훈련과 연단을 하신다.

그래서 세상 사람과 다른 사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품과 삶을 이루게 하신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런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5:25)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이유와 목적이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2:10)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만들어 가신다. 당신의 형상으로.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 받고 행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가운데 인도하고 계신다.

 

우리가 아직도 세상에서 되고 안 되는 일에 목숨을 걸고 있다면,

이 세대를 그대로 본 받고 있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지 못해서 그렇다.

이 세대, 이 세상은, 성공과 출세, 명예와 부자가 되는 것이 목적이다.

돈과 재물과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는 것, 욕망의 바벨탑을 높이 쌓는 것이 목적이다.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악인의 형통이다.

악인의 형통은 풀이 베이듯, 채소가 쇠잔하듯, 등불이 꺼지듯이,

꽃과 열매가 시들어 떨어지듯이, 없어지고 멸망하는 날이 오고 만다.

 

하나님은 광야 생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가나안의 기업과 축복과 영광을 주신다.

하나님이 이렇게 해서 주시면 그 기업은 오래 오래 번영하고 천국으로까지 이어진다.

 

깨끗한 그릇이 먼저이지, 욕망의 더러운 그릇이, 먼저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신 목적은 거룩함이다.

그 그릇에 마침내 복을 주시고 자녀로서의 신분과 특권과 영광을 누리게 하신다.

 

2.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1:10b)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곧 너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족하고 낙심하고 절망에 빠져드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다른 것을 굳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들어도 가시 밭에 떨어지면 그 가시떨기로 인하여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 가시떨기가 뭐냐?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이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12:15)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6:13)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18:24)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6:17)

 

이 말씀들이 성경에는 있는데, 우리 마음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말씀이 그 마음 밭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인생은 사망이고 멸망이다.

백배 육십배 삼십 배 열매를 맺는 내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생의 염려, 재물, 향락을 굳게 잡고, 이것들이 마음과 생활을 지배하면,

언제나 실족하게 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광야 생활 중에서도 항상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신다.

만나를 주시고 생수를 주신다.

옷이 헤지지 않게 하시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신다.

너희는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었으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6:34)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모든 것을 더해 받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은 놔두고

내가 모든 것을 더하겠다고 뛰어나니고 야망을 불태워도

어렵게 쌓은 것들은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해가고 만다

 

하늘을 구하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늘만큼 마음이 넓어지고, 은혜와 평강이 깃들고 지배하고,

하나님은 거기에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시글락을 청산하고, 헤브론에 오르게 하신다.

철옹성과 거인들이 사는 기럇 아르바도 정복하여 복음의 성채 헤브론이 되게 해 주신다.

 

주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가 번거롭게 하니 원한을 풀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속히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하셨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18:8).

 

3.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1:11)

 

이같이 하면’, 즉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며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할 것이고,

영원한 나라 천국에 들어감을 얻는 데, 넉넉히 얻는다.

그 나라가 누구의 나라냐?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이다.

 

우리 인생은 길어야 80100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나라에 비하면 있다가 쉬 걷히는 안개요,

지나가는 나그네요 그림자요 거류민 인생일 뿐이다.

 

하나님은 잠깐 고난 당한 우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터를 견고하게 하신다.

우리가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신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의 영광에 대한 약속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다.(벧후1:4)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붙드는 것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증거로 붙드는 것이다.

 

굳게 붙들 것은 안개 같은 탐욕이 아니요, 가시떨기의 세상 염려와 재물과 향락이 아니다.

부르시고 택한 자들에게 때가 되면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택한 자녀들에게 주시는 신분과 특권과 영광을 견고하게 붙들어야 한다.

 

환난 중에도 극심한 고난 중에도, 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면 즐거워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이루고, 그 연단이 영광의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

하늘의 영광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라고 청교도 존 오웬은 말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권능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고

부르셨고 자녀로 삼으셨고, 자녀답게 만들어가고 계심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그에 비하면 세상이 알아주는 왕의 자녀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보배로운 믿음을 주셨다.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셨다.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셔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인생의 목적은, 거룩함의 성결에 있고, 성공에 있지 아니한다.

흠이 없고 거룩함이 가나안의 기업을 낳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그 보배롭고 큰 약속과 영광을 붙들고 바라보고 담대하게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