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0 주일설교
본문: 마 6:33
제목: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
1. “그런즉 너희는 먼저 -- 구하라”(마6:33)
‘그런즉’은 앞에 말한 내용의 결론을 말할 때 쓴다.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너희는 참새보다 귀하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바다.
너희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내일 일도 염려하지 말아라.
‘먼저’는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새해가 정말 새해가 될려면 우리의 속이 달라져야 한다.
속이 달라져야 겉이 달라진다. 전체도 달라진다.
우리 환경과 운명이 달라질려면 우리 속이 달라져야 한다.
떡으로만 살아서는 달라질 것이 없다.
말씀으로 살 때 마침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면서 우리로 광야길을 걷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떡으로만 살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그러니 우리의 주림과 낮추심, 곧 우리의 고난을 해결하는 방법이 이미 나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떡만을 구하고 재물만을 구하고 바벨탑만을 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그래서 멸망했고, 현대의 교인들도 별 볼 일이 없는 것이다.
‘먼저 구하라’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 우리 마음에 있어, 구하는 것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세상에 살면서,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던 데서,
나와 내 가정이 중심이 되어 살던 데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먼저 구하던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2:1-5)
구원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를 은혜로 살리시는 것이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다.
허물과 죄가 그 영혼을 지배하면 이 세상 풍조를 그대로 따른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없다.
그것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귀를 따르는 것이다.
지금도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다.
구원 받기 전에는 우리도 그 가운데서 행하여, 죄와 허물 가운데서 행하여,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순전히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고,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던, 삶에서,
성령을 따라 지내고, 성령과 말씀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구원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런 변화가 없다? 그러면 그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고 교인일 뿐이다.
표면적 유대인이고 표면적 세례만 받은 것이다.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고, 마음에 세례를 받아야 참 세례이다.
이제까지의 삶의 내용과 목적이 달라지지 않으면, 먼저 구하는 것이 달라질 수 없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나고서 달라진 것처럼 달라지는 것이,
‘먼저 구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이 해로 여겨지는 변화,
모든 것을 해로 여기는 변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변화,
그런 변화가 없다면 그리스도를 얻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될 수 없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고 교회 직분을 받았다고 구원 받은 것이 아니다.
변화가 없다면 구원도 없다.
겉만의 변화가 아니고 속의 변화를 말씀하고 있다.
표면적 교인으로 만족하지 말고 말씀을 따라 속이 변화되어야 한다.
내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고 있는가?
내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가?
세상의 풍조를 그대로 따르며 살고 있는가?
그것이 바로 죄와 허물로 죽어 있다는 증거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있다는 증거이고,
본질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인 증거이다.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듭나고 회심하게 되면 죄를 회개하고
먼저 구하는 것이 달라지게 된다.
그 이전에 먼저 구하던 것이 확실히 달라지게 된다. 가만 있을 수가 없게 된다.
2.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사람들은 천편 일률적으로,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다 ‘나의 나라’와 ‘나의 의’를 구한다.
로마서는 이스라엘이 멸망 당한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그의 의로 통치하는 나라이다.
나의 나라는 나의 의로 내가 통치하는 나라이다.
나의 의를 버리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의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누구인가?
지금은 신학교수들과 예수 잘 믿는다는 목사와 장로들이다.
신학교수들이 자랑하는 의, 목사와 장로들이 자랑하는 의, 그 의를 가지고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다. 결코!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나님의 의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고 목사 노릇했어도
주님은 ‘도무지 너희를 모르니 내게서 떠나가라’ 하신다.
율법을 손에 쥐고 줄줄이 외우며 가르친다고 하는 자들의 대표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이고 핍박하였다.
유대교의 대표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 초대교회를 핍박하였다.
그 행태는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인 것을 알아야 한다.
출애굽 2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다가 멸망하였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가 바로 나의 의이다.
중세 천년이 암흑시대가 되고 만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지 않고
자기들의 나라 왕국을 구하고, 자기들의 의로 통치하였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로 돌이킨 것이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미완성의 종교개혁을 완성한 사람들이다.
청교도들을 핍박하고 화형에 처하고 고문한 사람들은 국교도들이요 그 지도자들이었다.
성경을, 성령의 지혜로 바로 알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바로 알게 되고,
그러면 교회 권력들과 국가 권력들이 저지르는 불의에 저항하고 개혁에 나서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의 의로 통치하는 나라를 세우고 확장해 가는 것이다.
참 교회와 참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살아야 하는 그의 나라요 그의 의이다.
사람들은 입으로만 정의를 노래하고, 실제로는 오직 자기 의와 이익만을 먼저 구한다.
정의사회 구현한다고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뇌물과 불법과 불의가 판치는 나라를 만들었다.
율법을 가르치고 지킨다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의는 힘이다. 힘이 곧 정의이다.
기원전 500년의 희랍 철학자들은 이 사실을 벌써 간파하였다.
인간 세상은 법이 정의인 적이 없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만이 법이, 하나님의 의가, 정의인 나라이다.
다윗이 왜 칭찬을 받았는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 새”(삼하8:15,대상18:14)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21:3)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5:24)
눈이 밝아야 온 몸이 밝아진다.
그 눈을 밝게 할려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조명을 받아 바로 알아야 한다.
눈이 밝지 못하니 보이는 것, 먼저 구하는 것이 재물이요 권력이요 출세이고 바벨탑이다.
사람들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에 사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희생하며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그 자리에 가서는 같은 짓을 반복한다.
겉만 달랐을 뿐, 속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이 달라지면 겉도 달라질 뿐더러 전체도 끝도 달라진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만이 끝까지 달라질 수 있고
정의와 공의를 이 땅에 심을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다.
청교도 신앙으로 무장한 사람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들,
그 말씀으로 그 자신들부터 변화되고 우선순위가 바뀐 사람들,
그런 사람들만이 자기가 속한 가정, 교회, 사회, 나라를 바로 변화시킬 수 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법과 의가 우선인 사람들이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청교도들이 절대 군주국을 입헌 군주국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들이 먼저 1662년을 살았기에 1688년의 명예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
그들의 바르고 헌신적인 삶, 왕권의 불의에 맞서 교구와 사택과 월급을 포기하였기에,
그들의 신앙과 삶을 본 사람들이 뭉치고 변화되어 의회를 변화시키고 정치를 변화시킨 것이다.
청교도 신앙이 영국을 강대국으로 만들어 200년 동안 세계를 재패하게 하였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치게 하였고,
미국을 건설하였고, 이 미국 또한 200년 동안 세계를 재패하게 만들었다.
말로만 해서 세상에 변화될 것은 하나도 없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는 말씀이 영이 되고 생명이 되고 피가 되어
사람을 변화시키는 곳에 참다운 변화와 개혁과 부흥이 있는 것이다.
3.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마6:33)
‘이 모든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먼저 구하고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이다.
사람들이 탐심으로 구하는 것들은 얻기가 힘들 뿐 아니라
혹 얻어도 오래 가지 못한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그의 의로, 그의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자기 의대로 자기 왕국을 건설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그래도 오래 가는 나라들은 뭔가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로마가 천년을 유지한 것은 그래도 그들이 공의와 정의를 흉내냈기 때문이다. (일제는 36년이다.)
원칙을 지킨 가문들이 오래 번영했다고 역사가들도 말하고 있다.
창조적인 소수들이, 다수와 다른 사람들이, 역사를 이끌어 왔다고 말한다.
그래도 하늘의 의를 먼저 구한 개인과 가문과 나라들이 오래 번영했다고 하는 것이다.
공자도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다.
양심이 바르고 좀 안다고 하는 자들은 하늘을 좀 알고 하늘의 의를 조금 알았다.
그 희미하게 아는 것들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알게 하신다.
그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를 통치하는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신다고 하신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육체를 따라, 자기 마음과 육체의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은 거두는 것이 썩어질 것이다.
육체를 위해 심었기에 썩어질 육체가 줄 것은 썩어질 열매들 뿐이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주의 말씀대로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는 것이다.
영생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물론 하늘의 모든 것도 포함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먼저 구하고 매달리고 집착하는 것이 무엇인가?
오직 돈과 부와 재물과 권력과 출세 아닌가?
그 먼저 구하는 것이 달라지지 않으면 그 인생 환경 미래는 달라질 것이 없다.
주의 말씀대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얻는다는 것을, 경험하고,
보여주는, 인생이 되시길 바란다. 인생도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고,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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