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로이드 존스, 에베소서 강해 2권, 영적 화해, 1장 서론 (김영희)

강대식 2021. 2. 28. 19:08

로이드 존스, 에베소서 강해, 2 권 영적 화해

 

머리말

 

이 책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주일 예배마다 연속적으로 전했던 설교들을 모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화해 방식 - 오직 유일한 길을 강해하였고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또한 인간의 절망적인 궁핍과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경이를 보여 주며, 중간에 막힌 담을 헐어버리는 문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화목, 유대인들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 다른 모든 자들과의 화목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 에베소서 2장에는 개인과 세상을 위한 오직 유일한 소망이 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펼쳐 보여 주어 나아감에 따라서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 되고 하나님의 권속이된 모든 사람들은 기다리는 영광스런 소망에 대해서 누구든지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1972. 1.

                                                                                                           D.M. 로이드 존스

 

1 장 서론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2:1)

 

- 또한 너희의 허물과---살리셨도다 2장이 또한이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1장과 2장 사이에는 연관이 있다. 이 위대한 에베소서 2장을 바르게 이해하려고 한다면

2장의 위치와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모든 서신들은 주로 첫 번째 부분은 교리적이고 두 번째 부분은 보다 실제적이다. 교리적인 대목은 언제나 하나의 논증이 갈파되어 있다. 우리는 논증에 대한 객관적인 윤곽을 포착한 다음에 세부 국면들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1장의 논증에 관해서 명확하지 못하면 이 2장의 논증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1장의 논증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1:10) 바로 이것이 에베소서의 중심주제이다. 사도는 이러한 단순한 진술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일을 하시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 계속해 나간다.

 

1. 1:1-14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또한 하나님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이것이 출발점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행동에 관심을 갖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다시 놓아 통일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 점은 즉각 우리로 타락의 교리로 돌아가게 만든다. 바로 그 타락을 통해서 분리가 되었고 모든 사물들이 그릇되어 나갔던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는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통일시키려는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망각하고 있는 일은 진실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점이다. 인간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알아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역사의 뒤안길에는 눈에 보이지 않은 이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세속역사 뒤에는 이 영적인 역사가 있다. 여러분이 기독교회의 역사를 읽어 본다면, 기독교 역사가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져 나왔다면 한 세기도 못 되어 기독교회는 문을 닫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창세전에 계획하셨고 그래서 그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에 전적으로 기인된 것이다.

전적으로 은혜에 속한 것이며, 모든 것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6),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14) 우리가 기독교회에 함께 앉아 있다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했다는 것, 우리가 이 위대한 구원을 숙고하려 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인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그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중심에 없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쳐 놓고서는 전혀 우리와 상대하지 않는다.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그로부터, 그에 의해서 온다. 사도는 1:1-14까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15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은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십자가를 높이 세우셨지만, 우리가 거기에 등을 돌리고 하나님은 그것 없이도 우리를 축복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사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7) 그 목적은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9-10)이다.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중심해 있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 명백해야 한다는 것은 사활을 좌우하는 문제이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3) 사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해놓으신 일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제공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말하였다. 우리는 죄사함”, 곧 용서를 얻었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후사의 놀라운 기업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인쳐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확신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로 만드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있다. 그것이 축복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축복은 신령한 복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여러 문제들과 시련과 환난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그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받은 사람이다. 만일 그가 이 점을 깨닫고 거기에 하늘을 사모하며 땅에 있는 것이 아닌 위에 있는 것에 그의 애정을 쏟는다면, 그는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으로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2. 1:15-23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이해하는 것과 그러한 일들에 관해서 명백한 관점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15-17) 그리스도인의 삶을 충만하게 살고자 한다면, 이 구원의 위대성, 구원의 영광을 영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임을 알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는 그것의 확실성을 알기 바라고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라고 말해 간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이 모든 것으로 즐거워하기를 바라고 있다. 여러분 자신을 바라봄으로부터 출발하지 말라. 이들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것들에 자신을 던지라. 그의 부르심의 소망, 성도들 안에 있는 그의 기업의 부요,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 등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켜야 한다. 우리는 그의 전능한 능력의 역사하심에 따라서 믿는다. 다시 말하면 그의 전능한 역사를 힘입어 역사의 결과로 믿게 된다는 말이다.

 

그는 그것을 교회의 차원에서 진술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며 머리의 능력이 온 몸에 퍼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거나 느슨하게 붙어 있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들이요 살과 뼈의 지체들이다. 그것은 하나의 유기적인 연합체로 그래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 속에 있다.

 

- 2장의 논증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재 연합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두 주제를 동시에 진술해 나가고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자기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는 사실만큼 놀라운 일이 없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이다. 이미 이 주제를 1:11-14까지에서 보편적 진술을 한 바 있다. 그러나 2장에서 그것을 상세하게 파헤쳐 나간다. 2장에서 바울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어떻게 하나가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이 전적으로 반대되는 요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시키는 데 성공하셨는지를 말하고 있다.

 

1) 무엇이 그것을 막았는가?

2:1-10. 나면서부터 가진 이 사람들의 조건과 상태였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그것이 바로 해결되어야만 했다.

2:11-22,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졌다. 그것이 즉각 그 둘을 나누는 중간에 막힌 담이 되었다. 이방인들은 개들이요 율법 밖에 있었으며, 외인들이었고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난제를 해결하셨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으셨다그는 모든 난관들을 극복하시고 모든 것은 해결되었다.

 

2)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2:1-3, 그는--- 너희를 살리셨도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써 이루실 것이다. 사도들이 그것이 그처럼 중차대하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서는 어떠한 구원도 없기 때문에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망각하기 너무나 쉬운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려고 너무나도 애를 쓰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 하고 있다.

 

그것은 모두 그의 십자가의 피로써 된 것이다. 다른 것은 어떠한 것도 그 일을 해낼 수 없었다. 다른 방식이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오시지 않았을 것이요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5) 사도는 그것을 괄호 안에 넣고 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가 이것에서 떠나지 못할 것이라 나는 너희 자신의 공로와 능력을 끊임없이 주장하려는 너희의 부단한 고집을 따라 가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제거하라. 너희는 그것이 모두 은혜 안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기 전에는 이것으로 인하여 영광스럽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정교화시켜 나가고 반복해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싶어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아니고서는 결코 그런 일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이 2장과 1장을 연결짓는 요점이다. 1장 끝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이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에 관해서 말하고, 바로 그가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도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점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셔야만 했으며, 우리의 조건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 외에 어떠한 것도 우리에게 충분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아는 정도까지 이러한 문제들을 이해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기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어떠한 존재들이었는가를 숙고하라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점에서 명백하지 못하면 어째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했는가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가장 큰 고통은 죄에 대한 부적합한 개념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빠진 수렁의 깊이를 인식한다면 우리가 오르게 된 높이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2:4-7,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내려가신 것처럼 그 무덤의 깊이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긍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과 일으키심을 받았으며 부활하였다. 우리는 하늘 보좌에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3) 어째서 그는 그런 일을 하셨을까?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으로써이다. 또한 너희는 그 은혜로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하심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7-10)

 

우리가 마땅한 바대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일을 깨달을 때만 임을 명백히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송축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죄가 무엇이며 죄가 우리 속에서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어떠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행하셨으며 어떻게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으며 또한 어째서 그 일을 하셨는가 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인식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고서는 베기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부족한 것은 놀라움의 감격이다. 사도들의 서신서들을 읽어보라. 이 위대한 구원을 말할 때 그들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경이로움과 말할 수 없는 탄성으로 가득하다. 만일 진리를 깨닫게 되면 그렇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적어지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성찬식에서 떡과 포도주를 들면서도 너무나 감정이 메마른 나머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넘치지 못한다고 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우리를 섬뜩하게 하는 것인가?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으면 여러분 속에서 어떠한 일을 하려고 애쓰지 말라. 그의 사랑을 인식하고 여러분의 이해의 눈을 밝혀 여러분이 빠져든 함정과 여러분이 깊이 빠진 수렁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위해서 해놓으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기도하라.

 

우리가 마땅한 바대로 다른 사람의 영혼의 짐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일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부담이 되며 내가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라고 묻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죄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진리를 전혀 깨달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만일 죄에 관해 알기만 한다면 우리 주님께서 그들을 보셨던 방식대로 그들을 보았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진실로 알기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복음전도를 역시 조정할 것이다. 모든 거짓된 복음전도에 있어서 문제점은 교리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사람의 조건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육신적이고 인위적인 복음전도는 사도가 2:1-10까지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지 못한 결과이다. 만일 여러분과 제가 아직도 죄인인 모든 사람들이 전적으로 공중 권세잡은 자를 따라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만 한다면, 그러한 각 사람을 해결할 수 있는 오직 유일한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성령의 권능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인위적인 조직을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붙잡고 부흥하여 주시고 성령께서 임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는 기도를 의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피상적으로는 변화시킬 수 있고, 교회에 출석하도록 설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 여러분은 사도바울이 어째서 이러한 일들에 그처럼 관심을 기울이며, 에베소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의 눈이 열려 이해의 눈이 밝혀지기를 기도하는지를 알게 된다. 사도는 그 모든 것을 1장에서는 원리로 진술하였으나, 원리로만 알아서는 안 되며 그것을 상세하게 이해하고 파악해야 한다고 2장에서 그 일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죄 안에 있는 가공할 상태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인식하기까지 죄 안에 있는 사람들을 묵상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경이감과 사랑과 찬송의 감정에 빠지기까지 그 죄에 빠진 인간들을 묵상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