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죄의 가공할 흑암이 대조적으로 은혜의 영광을 보여준다/ 로이드 존스

강대식 2021. 3. 25. 14:30

죄의 가공할 흑암이 대조적으로 은혜의 영광을 보여준다/ 로이드 존스

 

설교의 임무란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죄에 빠져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죄에서 벗어나서 은혜 아래있게 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할 때에 인간의 행복의 비결부터 말하지 않았다.

그것부터 시작하지 않았다. 인간이 그릇된 세계에 빠져 있고,

인간이 죄 아래 있다면 행복하느냐 비참하느냐 하는 것이 우선적인 것이 아니다.

문제는 심판날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 내가 어떤 영역에 속해 있는가이다.

 

만일 내가 죄 아래 있다면 내가 알고싶은 첫 번째 요점은

그 죄 아래서 빠져나와 은혜 아래 있는 방식이다.

그처럼 죄를 깨닫고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일부터 하지 않는 복음 전도는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서슴치 않겠다.

 

죄의 길에서 돌이키지도 않고 그리스도에게 나올 수 있다든지,

회개는 나중에 하고 죄에 대해서는 차차 배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사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가 볼 때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죄의 가공할 특성과 본성적으로 사람이 처해 있는 섬뜩한 자위를 보여줌으로써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보여주게 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죄의 흑암과 어두움을 살펴보면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이 기이한 은혜의 빛나는 영광을 더 뚜렷이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 밖에는 전혀 소망이 없다.

대조적으로 빛의 영광과 찬란함을 드러내는 것은 어둠과 흑암이다.

 

수세기 동안의 교회사 전체를 통해서 볼 때에

은혜와 복음에 대한 가장 높은 개념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 가장 큰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언제나 죄를 가장 크게 의식한 사람들이었다.

언제나 그러하였다. 그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다.

 

우리 주님께서 누가복음 7장에서 그 사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저희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자기 조건의 죄악성을 이해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이해하는 정도도 더 크게 될 것을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로이드 존스, “로마서 강해” 8, PP 286-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