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7 주일설교
본문: 마 6:33
제목: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
1.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염려하는 모든 것이다.
“그런즉”
앞에 말한 모든 것을 들었은즉, 그 말씀에 순종한다면,
이제 이렇게 하라는 접두어이다.
앞에 말씀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기 때문이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기 때문이다.
집 금고에 혹은 은행에 보험에 쌓아 두면 내 것이 되는 것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좀은 옷을 먹어서 못쓰게 하는 벌레요,
동록은 금전 같은 구리에 녹이 써서 못쓰게 되는 것이다.
작은 사고나 질병 위험과 불행한 일들이 닥쳐서 재물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우환과 환난이 도둑이라고 한다.
재물을 자루에 넣어 쌓아두지만 도적은 와서 구멍을 뚫어서 도둑질해 간다.
지갑을 잃어버리는 것도, 소매치기와 도적을 당하는 것도,
심지어 보이스 피싱을 당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잠26:2)
학개 선지자는 돈을 애지중지 전대에 보관하였는데, 전대에 구멍이 뚫려 없어지는 것도,
집으로 재물을 열심히 가져가 쌓았는데, 불어 버리는 것도 우리의 행위에 대한 보응이라고 한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뜷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1:6)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학1:9)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다.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거나 저를 경히 여기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돈과 재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경히 여기고 사랑하지 않는다.
겸하여 섬기고 있지 않는지 돌아 보아야 한다.
못한다고 하시는데 겸하여 섬기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의 아류이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5-26)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28-32)
공중의 새도, 들의 백합화도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고 입히시는데,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어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과 구하고 염려하는 것이 같으냐?
겨우 구하고 염려하는 것이 땅의 것이냐?
이 모든 것은 구하고 염려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쌓아논다고 내것이 아니다.
2. ‘먼저’ 구하는 것이 바뀌어야 한다.
교인이라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먼저 구하는 것을 보면 다 땅의 것이고,
자기 자식 자기 가정 자기 뜻과 야망, 자기 왕국 자기 의를 이루기 위한 것들이다.
구하는 기도 제목들을 보면 다 육신의 것들이요 하늘의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이스라엘은 열심은 있었으나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아 멸망했다.
‘먼저’는 우선수위의 문제이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회개가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회개는 땅의 것을 구하던 사람이 하늘의 것을 구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우선순위가 옛 사람의 것 그대로라면 그는 새 사람을 입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가 되어야 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하신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3:1-6)
이와 같이 먼저 구하는 것의 우선순위에 변화가 없다면,
그는 마음에 할례를 받은 적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적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힘과 공급으로 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손을 벌려 구걸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방법부터 먼저 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게 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게 할려고,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데, 그럴 때마다 사람을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할려고 하는 것은
떡으로만 사는 인생의 전형적인 행태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만 구하고 사람에게는 구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후원과 손을 벌리는 것은 하나님 팔아 자기 욕구를 채우는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나 죠지 뮬러의 책을 읽어보고 배우라.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선교를 하면서 후원회를 조직하지 않았고,
내지 선교회를 세우고는 그냥 중국 내지로 들어가 선교를 하며 하나님의 손길을 수없이 체험했다.
죠지 뮬러도 천명이 넘는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사람에게는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공급을 수없이 체험하였다.
청교도들은 1662년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었기에 교구와 사택과 월급을 버리고 길거리로 나셨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것을 믿었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고 그의 의가 아닌 것에 서명을 하고 기득권을 유지하지 않았다.
8천명의 소위 청교도들은 서명을 하고 기득권을 유지하였고,
2천명의 참 청교도들은 서명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청교도들을 축복하여 1688년의 명예혁명을 이루게 하셨고,
영국의 군대 경제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셔서, 영국을 세계를 재패하는 강대국이 되게 하셨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것이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삶으로 살지 않으면 그는 진리를 믿지 않고 진리를 살지 않는 사람이다.
입술로만 하는 바리새인의 믿음과 의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키거나 새롭게 할 수 없다.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셨을 때
‘그물과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따른다고 한다.
참으로 웃기는 입술의 장난이고 허울좋은 신앙고백이다.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청교도가 될 수 없음을 십 년 동안 청교도를 가르치면서 알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는’ 세 조건을 농담으로 여기는 자들이다.
부모 처자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첫째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으면, 둘째요,
자기 모든 소유를 버리지 못하면, 셋째이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하나님께 먼 자들이 곧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지금도 그러한 자들이 교회 높은 자리들을 차지하고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고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먼저 구하는 것의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으면,
선지자들은 거짓을 설교하고 가르치고, 제사장들은 권력을 쥐고 다스리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며 안심하고 희희낙락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어찌 되었는가? 무섭고 놀라운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먼저 구하는 것이 달라지지 않으면, 그것은 입술의 종교이고 아편이고 악세사리일 뿐이다.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외식하는 바리새인이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이고,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이고, 무너짐이 심하다고 하셨다.
먼저 구하는 것이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은 오히려 땅의 것의 결핍에 항상 시달리고
평안이 없고 안 좋은 평판이 따라 다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지 못한다.
하늘을 구해야 땅의 기업을 얻고 땅을 구하는 자들은 땅의 감옥에 갇힐 뿐이다
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마6:33)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조건은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탁하지 않으면 먼저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의 의는 그분의 뜻이고 계명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것은 내 나라 내 가정 내 교회를 먼저 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먼저 구하기 때문에
사람이나 세상이 통치하는 나라는 구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아 한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여호와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시기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려야 한다. 굶어 죽더라도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까닭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고난을 오래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나를 판단하시고 나에게 보응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면 극심한 고난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번개불에 콩 볶아 먹을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수 없다.
모세는 광야 40년을 견뎌야 했고, 아브라함은 25년을 견뎌야 했다.
젊은 요셉과 다윗도 10여년의 고난과 광야를 견뎌야 했다.
고난을 믿음으로 견디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고난의 광야 시절은 그야말로 황페하고 적막하고 파멸을 당하는 땅과 같은 시절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고 억울한 노예살이 감옥살이를 경험하는 시절이다.
사람의 우선순위가 바뀐다는 것,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것이
결코 쉽게 되지 않는다. 마음과 몸에 베게 할려면 오랜 세월의 연단이 걸린다.
이 고난과 연단의 시절이 끝나는 날, 하나님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으로 보상해 주신다.
“그 때에 내가 내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왕들과 왕비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사49:21-23)
모세는 40년 기다리고 고난을 견디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확실한 사람이 되었다.
그가 기도한 대로, 괴롭게 한신 날수대로와 화를 당한 연수대로 그를 기쁘게 해주셨다.
고난을 통해, 주의 교훈으로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신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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