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가슴에서 나오는 경건'으로 세상과 역사를 바꾼 청교도 사상/ 김재성

강대식 2021. 10. 21. 19:50

가슴에서 나오는 경건으로 세상과 역사를 바꾼 청교도 사상/ 김재성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기독교 신앙을 실천했던 청교도는 가슴에서 나오는 경건’, 경건한 열심을 실행하고자 온몸을 바쳤다. 종교개혁 이전의 잉글랜드에서는 로마카톨릭이 각 지역교회를 장악해 왔으나, 청교도들은 성경적인 신앙생활을 촉구하면서 불복종운동을 전개하였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철저하게 생활의 모든 부분을 갱신하고자 했는데, 결국 국가와 사회와 시민의 삶을 바꿔놓았다. 찰스 1세의 부당한 탄압에 맞서서 청교도 혁명을 달성하게 되었다. 청교도들이 양심적인 열성과 애국적인 열정과 경건한 헌신은 그 이전의 국왕들에게 무조건 복종하던 종교와는 완전히 달랐다.

 

청교도는 실천적인 교회 개혁 방안과 경건의 생활을 위한 교훈을 남겼고, 강력한 동맹 의식을 심어 넣어서 청교도 혁명을 위한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만들어준 언약 사상을 발전시켰다. 청교도 사상의 뿌리에는 개혁주의 정통 신학, 곧 유럽에서 확립된 칼뱅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마침내 영국에서도 변화의 시간과 환경이 허용되어서 소수에 불과했던 청교도들이 엄청난 지지를 받으면서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청교도 운동이 일어나면서,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개혁이 확산되었다. 수많은 정치적 사건과 죄악된 문제에 직면하여 청교도 운동은 가장 순수한 기독교를 꽃피우는 금자탑을 세웠다. 청교도 목회자와 성도의 가슴에 있었던 정통 기독교 신앙과 칼뱅주의 개혁신학을 토대로 하여 더 개혁된 교회와 거룩한 삶을 창출해낸 것이다.

 

놀랍도록 처절했던 삶의 현장에서 결코 무너지지 않았던 헌신의 배면에는 견고한 훈련으로 다져진 청교도 정신, 청교도 신앙, 청교도 사상이 있었다. 청교도 운동을 일으키고 유지시켜준 동력은 청교도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청교도 사상은 성경에 기초한 주요 교훈을 다 포함하고 있다.

첫째, 청교도 사상은 초기 영국 교회 순교자들이 남긴 개혁 정신을 물려받아서 미신숭배나 다름없었던 로마카톨릭의 잔재를 철저히 청산하고, 주교제도를 통한 감독 정치를 거부하였다.

청교도는 관과 핍박을 견디면서도 오직 참된 교회의 회복이라는 고상한 정신을 잃지 않았다.

메리 여왕이 교회체제를 다시 로마카톨릭으로 회귀하려 할 때 거부하다가 삼백 여 명의 청교도가 살해를 당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체제하에서는 수백 여 명이 설교하는 직분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 때는 아예 바다를 건너간 망명자들은 낯선 땅에서 다시 배를 타고 신대륙으로 옮겨야 했다. 1660년 왕정복고가 이뤄지자 다시 2천 명의 목회자가 국가교회 체제를 거부하다가 쫓겨났다. 과도한 권력의 조치 앞에서 청교도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둘째, 청교도가 보여준 가장 중요한 공헌은 거룩한 경건생활에 힘쓰면서 뜨거운 헌신으로 매진했다는 점이다. 윌리엄 에임즈는 신학이란 하나님을 향한 삶의 교리라고 규정했다. 실천적 적용을 신학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공헌을 하였다. 특히 엄격한 주일성수, 집회에 참석하여 설교말씀을 받아들이는 일, 신령한 묵상, 시편 찬송, 양심과 윤리적 실천, 기도와 금식, 성경과 경건 서적 읽기, 영적인 일기 쓰기, 자기 훈련을 위한 말씀 강연회와 설교적 교훈 실천 등이다.

 

셋째, 청교도 사상은 언약 사상과 구원의 서정을 중요한 구조로 삼고 있다. 최고의 청교도 사상은 언약신학의 찬란한 성취에서 빛을 발휘했다. 청교도 운동의 마지막 단계는 언약 사상으로 뭉쳐진 동맹이 체결되어서 청교도 혁명으로 결집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 국가언약엄숙동맹 및 언약을 창출해냈다. 언약 사상은 개인구원의 차원을 넘어서서 정당한 저항권을 인식하는 국가언약으로 확장되어졌고, 절대주의 왕권에 맞서는 동력을 제공했다. 청교도 언약 사상은 통제 없는 왕권 통치에 맞서서 세 번의 시민전쟁에서 입헌 군주제를 주장했다. 청교도 사상은 마침내 최고의 문서로 집약되었는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표준문서들을 발표했다.

 

넷째, 청교도 신학들은 알미니안주의에 반대하여 개혁주의 정통 신학들이 공유하던 하나님의 뜻과 작정, 예정과 선택의 교리를 확고히 정립했다. 청교도는 열정과 강력함에서 일반적인 기독교와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청교도는 완전한 개신교회를 향하여 전진하는 기질과 전투적인 성향을 가졌고, 16세기와 17세기에 엄청난 정치적 대격변기를 거치면서 왕권과 로마 교황청이 대립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살았다. 교회를 장악하려는 세력에 타협을 거부하면 곧바로 목숨을 잃거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청교도는 타협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양심을 가진 수많은 성도가 청교도 목회자들을 도왔다. 여왕이나 군주로부터 독립된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열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청교도 운동은 여러 차례 교황의 권세와 영향으로 인하여 부패한 교회를 개혁했던 유럽의 종교개혁자들과 똑같은 정신을 발휘하였다.

 

청교도 운동은 단지 교회와 신학의 논쟁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생활에 관련되어 있다. 유럽의 근대를 여는 시기에 해당하기에, 단일 군주제의 절대 정치를 무너뜨리는 격동기의 인물들과 사건들이 핵심에 담겨 있다. 따라서 청교도에 접근하는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서 엄청난 자료들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주교 제도의 감독 정치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보다 더 성경적인 목양 사역에 충실하려던 청교도의 노력은 마침내 새로운 창조적 변혁을 일으켜 인류역사상 가장 거룩하고도 경건한 기독교를 구현하기에 이르렀다. 경건한 열심을 가지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했던 업적들을 청교도라는 이름으로 밝히 드러냈다.

 

영국의 강해 설교자로 유명한 로이드 존스 박사는 청교도에게서 시대의 해답을 찾았다. 그의 성경 해석 원천은 청교도의 저서들에서 나온 것이다. 로이드 존스 박사는 영국의 복음적인 신학자들과 지도자들에게 청교도의 신앙을 본받으라고 외쳤다. 자유주의 신학으로 물든 영국 성공회와 결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평생 청교도 신학을 연구했다. 자신들을 영혼의 의사라고 불렀던 청교도처럼, ‘영혼의 의사가 된 그는 오직 청교도 설교집과 경건 서적들을 모조리 섭렵해서 새로운 강해 설교의 금자탑을 이뤘다.

 

청교도에게서 답을 찾은 사람 중에서 기억해야 할 이들은 뉴잉글랜드 건국의 조상들이다. 미국 청교도 신앙은 그들의 후손들을 통해서 한국교회에 전달되었다. 그들은 평양신학교를 건립하고 한반도에 청교도 신앙을 심어놓았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교회를 세워나갈 것인가? 아니면, 철저하게 믿음을 지키며, 힘들고 어려운 길을 택할 것인가? 순수한 믿음의 길을 따라가기를 다짐하고, 이런 마음을 배우고 간직하기를 원한다면, 청교도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워야만 한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성도에게 참된 신앙을 갖추도록 복음만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목회자가 영적인 도덕성을 회복하고 건전한 목회 방향을 설정하려면, 청교도 신앙 속에서 소중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회심을 강조하고, 직업에 귀천이 없이 소명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서, 신앙양심을 철저히 지키려 노력했던 영국의 청교도에게 그 해답이 들어있다. 청교도는 이 세상 속에서 순수하며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면서도, 새로운 공동체 사회와 국가를 건설하고자 노력했다. 청교도들은 권력에 아첨하고 탐욕에 눈이 멀어서 애매모호한 기독교로 변질되어버린 영국 국가교회 체제를 거부하며 분연히 일어섰다.

 

청교도는 국왕이 교회의 머리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최고의 권위자이시다는 교회론을 근간으로 하여 참된 신앙을 생활 속에서 회복시키면서, 마침내 신대륙 뉴잉글랜드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했던 용감한 행동주의자들이었다. 박형룡 박사는 한국 교회가 물려 받은 신학은 유럽의 칼뱅주의 개혁신학과 영국의 청교도 신앙이라고 역설하였다.

 

청교도에게서 답을 찾은 사람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얻는다. 왕권신수설이 시퍼렇게 살아 있던 시대 속에서도 청교도는 단독 통치자이자 절대권을 가진 군주에게 저항하면서 인권과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세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청교도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뉴잉글랜드에서 건국의 조상들이 되었고, 그 바탕에서 민주 국가인 오늘의 아메리카를 건설했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근면과 절약정신으로 갖고 살았던 청교도들은 마음속에 직업의 소명의식을 기본으로 품고 있었고, 하나님의 예정 교리를 신뢰하고 살았기 때문에 사치와 낭비를 하지 않았으며 결국에는 사회적인 자본을 축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자본주의가 형성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 김재성, 청교도, 사상과 경건의 역사, PP 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