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발도인들이 마니교 이단으로 몰리고 화형과 대량학살을 당하는 역사/ 권현익

강대식 2022. 2. 1. 07:34

발도인들이 마니교 이단으로 몰리고 화형과 대량학살을 당하는 역사/ 권현익

 

툴루즈와 앙굴렘에서도 화형 사건이 있었다. 프랑스 역사학자 플뢰리에 따르면 1025년에 프랑스 끝자락인 아라스에서도 이단(개혁자)이 발견되었다. 17세기 로마 교회의 뒤팽에 따르면 캉브레 및 아라스의 주교 제라르는 이탈리아로부터 유입된 새로운 이단 사상에 감염된 자들을 붙잡았다면서, 그들은 칸둘프와 간둘프의 제자들로서 다른 학문에 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접하지 못했고 오직 복음과 사도들의 계명만을 배웠다. 그러나 재판정에서 피고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버리고 로마 교회의 품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화형은 선고되지 않았다.”

 

11세기 역사학자 라돌프에 따르면 “1028년 피에몽의 아스티 교구 몽포르테 성에서 이교도와 유대교 의례를 되살린 혹은 마니교를 따르는 이단들이 발견되었다. 아스티 주교와 그의 형제 수스 후작은 고위 성직자들과 지역 영주들과의 모임을 인도하다가 발각되었다. 밀라노의 대주교는 이들을 마니교 이단으로 판단하고 군대를 보내어 일부는 개종시켰고 나머지는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서 산 채로 화형을 시켰다.”

 

그럼에도 피에몽 계곡에서 발도인들이 없어지지 않자. 교황의 특사 피에르 다미앙은 1050년에 피에몽 지역 상속자인 아델라이드 공작 부인에게 편지하여 공작의 영지에 로마 교회의 신앙을 버린 대중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에 부인은 그 피에몽 지역에 피뉴롤 수녀원을 설립하고 발도인들의 자녀들을 로마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부모로부터 떼어 놓은 후 강제적으로 세례를 주었다. 1096년에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도피네 계곡 전체가 이단들에 의해 심하게 감염되어 있다고 프랑스 왕에게 알리므로 대량 학살이 발생되었다.

 

이러한 박해에도 그들은 발도인들알비인들의 수많은 개혁 교회를 조직하므로 1119년 툴루즈 공의회는 이들의 규모에 놀라 고등법원과 종교재판소를 통하여 이들을 소멸시키기 위한 피의 법을 만들지만, 그리스도의 참 교회는 사라지지 않고 참되고 순수한 카톨릭 교회로 유럽의 모든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1046년 샬롱 쉬르 마른에서도 개혁자들이 발견되므로 샬롱 주교 로제리우스 2세는 리에주의 주교 바조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교구에 마니교적인 이단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알린다. “이들은 무례하고 무지한 사람들임에도 이 종파에 들어가기만 하면 잘 교육받은 로마 교회 신자보다 더 말을 잘하며, 철학자의 웅변보다 뛰어나다.”

 

아쟁에서도 마니교 이단들로 영토가 얼룩졌다고 보고되었다. 1052년 게르만 고술라에서도 개혁 운동이 일어나 황제 하인리히 6세는 성탄절에 그 도시를 방문하여 그들을 교수형시켜 다른 이들이 똑같은 실수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교황과의 불화로 가장 그리스도교적인 왕이라는 명예를 빼앗긴 프랑수아 1세는 이를 회복하기 위하여 루이 12세가 프랑스 내에서 중단시킨 발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재개시켰다. 그는 1545년 프로방스 의회에게 명령하여 프랑스 발도인들의 중심지인 메링돌의 22개 마을들을 약탈하고 불태워 폐허로 만들었다. 수많은 발도인들을 학살하였고, 체포된 남자들은 갤리선 노예로 보냈으며, 1560년에는 근처 카브리에르까지도 파괴하였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이라는 명목 하에 여러 지역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바알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자들을 남겨 놓으셨던 것처럼 곳곳에 숨겨 놓은 남은 자들로 하여금 로마 교회의 오류와 우상 숭배로부터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키게 하셨다.

 

-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 pp 305-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