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6 주일설교, '환난 인내 연단 소망', 롬 5:1-4

강대식 2022. 2. 7. 15:54

2022-02-06 주일설교

본문: 5:1-4

제목: 환난 인내 연단 소망

 

1.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5:1)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법적 선언이다.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법정에서 형벌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형벌을 받으셨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으므로 대신 피를 흘리심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셨다.

 

영단번의 이 피 제사를 믿을 때 하나님은 그 영혼을 의롭다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죽음을 믿을 때 의롭다 하신다.

구원을 받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이 이루어지고 성령이 내주하게 되신다.

 

이 믿음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인간의 의지와 결단으로, 영접기도를 함으로, 오는가?

현대 전도와 제자훈련은 그렇게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9)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

 

이 믿음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한다.

그래서 내가 믿음을 자랑할 수가 없다. 내가 한 게 있어야 자랑을 하지요.

 

은혜는 우리가 한 것이 없는데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고 선물이다.

그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것이 믿음이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에게만 이 믿음을 주신다.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나는가?

육은 육이고, 영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이 성령과 물로 거듭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렇게 성령으로 거듭나고 다시 태어난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혈통으로 난 자들, 육정으로 난 자들, 사람의 뜻으로 난 자들로 가득하다.

모태 신앙들, 내 감정과 의지로 난 자들, 목사와 전도자와 교사들의 뜻으로 난 자들이다.

유대인들은 혈통으로 구원받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멸시하였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으면, 물과 성령으로 죽은 영혼이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은혜에 의하여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믿음으로가 아니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아니고, 사람으로부터 난 자일 뿐이다.

 

거듭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이 하시기 때문에 결과로 알 수 있다.

바람이 불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그 소리를 들음으로 바람이 온 것을 안다.

그와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다고 하셨다.

 

성령으로 거듭남의 증거는 회심이다.

회심은 마음이 하는 것. 즉 소용들이치며, 이전 것에서 새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거듭남과 동시에 오는 사람도 있고, 오랜 시간이 걸려 오기도 한다.

 

회심했어도 변화가 미약한 사람들은 가르침에 문제가 있다.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획기적인 변화,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본다.

 

대전환이 이루어질 때, 회심의 완결, 대회심이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한다.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배설물로 여기고 버리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죽음만을 알기로 작정한 바울의 회심에 유의하시라.

 

로이드 존스는 청교도들의 종합 결론으로 회심은 관점의 획기적인 변화라고 한다.

자신에 대해, 인간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이전의 관점이 새로운 관점으로 바뀌는 것이다.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획기적인 변화가 오는 것, 그것이 회심의 완결이고 대전환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남으로 받은 믿음.

그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이것이 구원이다.

중세 카톨릭은 믿음 더하기 선행과 고행과 면죄부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마틴 루터는 고행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려고 몸부림치다가

로마서 성경을 통해서 이신칭의의 교리를 재발견하고 대회심을 경험하고서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종교개혁에 나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제물, 희생제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화목제물이 되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던 죄의 담이 무너짐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화평하는 것이다.

 

주님은 그 육체의 죽음으로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을 찢고 제거하셔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제든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하셨다.

우리는 이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 땅에서도 영원 세상에서도 계속 누려야 한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5:2)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의 세계에 들어감을 얻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율법의 정죄함이 더 이상 없고,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한다. 아버지의 사랑의 징계를 받을 뿐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3-24)

 

우리가 바라고 즐거워하는 영광은 하나님이 천국의 성도들에게 주실 영광이요

하나님을 뵈옵고 즐거워하는 데서 나오는 영광이다.

죄가 있는 자는 그 영광을 감히 바랄 수도 없다.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

그것이 성도의 현재의 영광이다.

우리가 천국에서 얻고 누리는 영광은 영원한 행복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7)

 

고난 없이 영광 없다. 주님도 십자가를 참으사 보좌 우편의 영광에 앉으셨다.

현재의 우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한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7)

 

3.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3-4)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는 것은 환난 그 자체를 즐거워한다기보다는

그 결과와 목적을 알기에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지만, 이제 갓 태어난 어린아이이다.

 

이제 의인으로써 실질을 갖출려면 성숙하고 자라야 한다.

환난과 고난을 주시는 목적이 거기에 있다.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면서 말씀으로 사는 사람, 의인을 만들어 가신다.

 

우리는 그가 만드시는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는 의인으로 만드신다고 하신다.

영광을 즐거워하고 누릴려면 그에 상응한 인품과 능력을 갖춘 그릇이 되어야 한다.

우리를 그러한 사람으로 만들고 계신다는 것을 안다면 고난의 인내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를 진정한 의인으로 만드시는 역사, 그 과정이 환난이고 고난이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모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셨다.

그리고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다.

그분이 잠깐 고난을 당한 우리를 친히 온전하게 만들고자 하신다.

 

굳건하게 강하게 터를 견고하게 하시는 작업이라고 하신다.

이러한 고난의 목적을 안다면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

목적과 결과를 모르면 결코 즐거워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목적을 이루는 과정을 오늘 로마서는 상세하게 말씀해 주고 있다.

환난은 인내를 온전하게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인내를 이루면 온전히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된다.

 

그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은 연단을 이루고자 하신다.

연단은 금강석에서 금을 뽑아내기 위한 용광로 작업을 말한다.

순전한 금이 아닌 것은 용광로 불로 다 녹여 버려야 한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23:10)

 

연단, 단련은 우리의 성품에 적용할 때, 거듭나고 회심하고 나서도,

우리는 몸에 벤 어린 시절, 사고방식과 가치관은 그렇게 쉽게 버리지 못한다.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갈등하는 내면의 싸움은 죽는 날까지 계속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성령으로 기도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순금이 되어지는 연단이 그 결과와 열매, 곧 우리의 소망을 이루게 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은,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믿음이 없으면 인내할 수 없다.

믿음과 오래 참음은 같이 붙어 다닌다.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약속을 기업을 받는 자들을 본받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사람들, 아브라함 욥 요셉 다윗 모세의 생애를 보라.

긴 세월 광야 생활을 통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룸을 확실히 믿게 된다.

그 하늘의 방정식에 우리를 대입하여 우리도 우리의 정답을 만들어 가야 한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받기까지 25년을 기다렸고,

요셉은, 13년을 어린 나이에 노예 생활, 억울한 죄수 생활을 하였다.

다윗도, 10여년을 사울과 군대에게 쫓겨다니고 적국에 망명생활을 하였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힌 날수 대로와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신다.

건축자가 버린 돌을 하나님은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정한 날,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신다.

 

잉태도 출산도 산고도 겪지 못한 자에게 외쳐 노래하게 하신다.

장막터를 넓히며 처소의 휘장을 널리 펴고 말뚝을 견고하게 하신다.

그 작은 자가 천명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속히 이루게 하신다.

 

홍해를 마르게 하사 건너게 하심과 같이 요단을 마르게 하사 건너게 하심으로

땅의 모든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심을 알게 하고

우리에게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항상 경외하게 하신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이렇게 소망을 반드시 이루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시는 분이시다.

선한 목자, 우리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머리에 부으셔서, 잔이 넘치게 하실 것이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2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