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13 주일설교, '의와 평강과 희락', 롬 14:17-18

강대식 2022. 2. 13. 16:17

2022-02-13 주일설교

본문: 14:17-18

제목: 의와 평강과 희락

 

1.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다

 

14장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고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비판하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고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으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다.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

더 나아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의식주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며 일생을 산다.

어떻게 하면 잘 입고 잘 먹고 좋은 집에 잘 사느냐.

그런데 주님은 그런 문제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이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6:25-34)

 

의식주 문제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는 것이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잘 입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매달린다고 그것이 너희에게 더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더해지는 길은, 그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재물과 하나님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재물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재물을 하나님이 주신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그의 의를 사랑할 수 없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이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한다.

 

땅과 땅에 있는 것에만 코박고 살면 그 땅의 감옥(지옥)에 갇히고 만다.

하늘과 하늘에 있는 것을 먼저 구하면 천국도 얻고, 땅도 차지하게 하신다.

그런데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떡의 것에서 말씀의 것으로 바뀌지 않으면,

구하는 것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우선인 사람이 하늘의 것을 구하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을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확실히 회심해야만 가능하다.

교회를 오래 다닌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말씀을 줄줄 외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마음과 생각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에, 땅과 하늘이 뒤집어지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가

와야 하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외식하는 것으로 흉내만 내는 것으로 그친다.

 

속에 있는 것이 바뀌어야 겉도 바뀔 수 있다.

사람들은, 속은 같으면서도,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세상을 정의와 번영으로 바꾼다고 하지만, 날로 악해질 뿐이고, ‘말짱 도루묵일 뿐이다.

 

정의와 평안과 기쁨을 다 희생하고서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고 해서,

이 땅에 하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참된 정의가 없는 곳에 참된 평안과 기쁨이 있을 수 없다.

서로 외식으로 속이고, 그 와중에서 자기 몫, 자기 패거리 몫을 더할려고 하는 것 뿐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23)

 

나라의 우선은 민생 문제가 아니고 경제 문제가 아니고 입술만의 공정 문제가 아니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보지 말고, 내 속에 있는 들보부터 보고,

참된 정의로 살았고, 희생했고, 지금 그 인격과 삶이 그러하냐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우선 순위가 바뀌지 않는 한, 인간은 바뀔 수가 없고, 세상은 바뀔 수 없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확실히 회심하지 않는 한,

교회도 가정도 세상도 바뀔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2.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안에서 육체 안에서는 언감생심,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나이다.

참된 천국은 성령 안에서만 누릴 수 있음을 성경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지상천국을 만든다는 유토피아는 정치인들 사상가들의 입술 끝에서만 노는 것이다.

성령이 오셔서 무익한 육체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모든 관점들을 뒤집어 놓아야 한다.

땅의 것을 하늘의 것으로, 떡만의 것을 말씀의 것으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것은 이 변화를 위한 것이다.

성령 안에서 환난과 인내와 연단을 거쳐야 이 변화는 확실해진다.

그런데 입술만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꾼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확실히 회심하고서도,

그리스도인은 끝없는 내적 투쟁을 통해, 광야생활의 인내과 연단을 통해, 성화를 이루어간다.

그것이 성경이 가르쳐 주는 진리이고,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의 생애들이 보여주는 진리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가운데,

거듭난 영혼은 모든 것이 더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하늘의 계산법이 마음 속에 자리하게 된다.

참된 하나님의 의가 마음 중심을 차지하고, 평강과 기쁨과 함께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된다.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 의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천국을 이땅에서 누릴 수 없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먼저이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붙어 다닌다.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고 함께 평강과 희락이 임한다.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

그런데 은혜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은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

은혜와 의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누릴 수 없다.

 

의가 없는 평강과 희락을 노래하는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명상과 체면술에도 평강이 있고, 술취함과 방탕에도 희락이 있다.

아무리 평강이 있고 희락이 있더라도, 의가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고,

인간들이 지어낸 나라, 사탄이 속이는 나라일 뿐이다.

 

하나님은 재물을 주셔도 그 안에 의가 있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112:3)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119:14)

 

하나님의 나라는 의가 있는 곳이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3)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거룩함의 표현이다.

사법적 의일 때 공의요, 입법적 의일 때 정의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함이 없는 정의와 공의는 외식이고 겉치레일 뿐이다.

 

거룩함이 없는 정의와 평등이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를 만들고 공산주의의 온상이 된다.

공산주의자들은 정의와 평등을 외치면서 독재와 특권사회를 만들고 있다.

군사 구데타를 일으키는 자들이 정의사회 구현을 기치로 든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임을 깊이 알고 누려야 한다.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며 모든 것을 더해 받는 사람들을 보면,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고 있음을 본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먼저 구하는 자에게서는

성령의 의가 없기에 평강과 희락도 오래 가지 못한다.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14:18)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그리스도를 섬길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하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고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라 하신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면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고 하신다.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그리스도를 섬길 때 사람들도 칭찬을 하게 되지요.

자기들은 못사는 것을 살고 있는 사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볼 때,

양심이 있는 자들은 칭찬하고 부러워한다. 아닌 자들은 핍박하고 죽이려 든다.

 

이로써 섬기지 않는데도 사람들이 칭찬한다면, 그 칭찬은 잘못된 칭찬이요 사탄의 칭찬이다.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사도들을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유대인들의 칭찬을 받았다. 빌라도도 그러하였다.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칭찬을 구하고 그 입맛을 맞추며 평강이 없는데 평강이 있다 하고

악에서 돌이켜야 할 자를 복을 받는다고 하여 악을 더욱 조장하고

자기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고 하셨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기 때문이다.

사람의 칭찬과 인정과 자존감의 강화에 목말라 하는 심리학의 술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야 한다.

사람의 칭찬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덫과 함정으로 임하고 뒤집어지고 만다.

확실한 믿음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한다.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가 복이 있고, 배부름을 얻게 된다.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그리스도를 섬길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