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3 주일설교
본문: 고후 6:14-18
제목: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
1.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후6:14)
“동일한 멍에를 메고서 함께 끌지 말라”의 의미다.
멍에는 두 마리의 소나 말이 메고서 함께 보조를 맞춰 움직여야 목적을 달성한다.
믿지 않는 자와 전혀 사귀지도 말고 같이 일하지도 말라의 뜻은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5:9-11)
믿지 않는 자들과는 신앙이나 예배와 관련해서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이나 행위와 관련해서도,
불필요하게 교류하거나 친밀하게 교제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다.
‘믿지 않는 자들’과는 혼인하거나 우상의 신전이나 주의 상에서 함께 먹거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금지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그 다음 구절들이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인들은 ‘의’이고 ‘빛’인 반면에,
믿지 않는 자들은 ‘불법’이고, 죄와 무지로 가득한 ‘어둠’이다.
이교도들이나 죄악을 범한 형제들과는 일체 교제도, 어울리지도 말라고 확대해석 말라.
세상 밖으로 나가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자들과의 교제가 하나님의 법이나 본성의 법에 비추어서,
인간의 삶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합당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데도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과 교회의 머리이시다.
‘벨리알’은 모든 믿지 않는 자들의 머리이자 세상의 신, ‘마귀’를 가리킨다.
신약에서는 오직 이곳에서만 사용,
그러나 구약에서는 아주 추악하고 비열한 자들을 가리키는 데 매우 자주 사용된다.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
사악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시편101;3-4)
비천한 것, 악한 것을 배교자들의 행위라 부르는데, 이것을 직역하면 ‘벨리알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마귀와 상종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마귀의 자식들과 불필요한 교제는 하지 않아야 한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셨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서로 공통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둘이 서로 관계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아무 문제도 없는 양, 필요 이상으로 어울리고 친하는 것은 문제이다.
홀로움을 견디지 못하면, 주의 뜻을 따라, 말씀을 따라, 살 수가 없다.
친구가 없다는 것. 이어령처럼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 친구인줄 알았더니 경재자였더라고 한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교회와 우상을 상대화하여 별 차이나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니까,
같이 어울리고 일치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나서, 곧장 바알을 섬기러 갔다.
산에 가서 산신령에게 빌고, 내려오다가 절이 있으니까 거기서도 빌고,
시내에 들어오니까 교회가 있으니까 거기서도 빈다.
누가 복을 줄지 모르니 다 섬긴다나.
다 섬기다가 다 노여움을 살 일이다.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임을 강조하신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4-6)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4:24)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라 하신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38)
그런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다른 것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우상이요, 현대 교회요, 현대 교인의 큰 문제이다.
마음 속에 돈과 재물, 권력과 출세, 명예와 칭찬에 대한 소욕이 깊고 넓게 차지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우상을 섬기는 자이다. 그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는 것이다.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 달라고 하시는 분이, 거역하면, 질투로 진노하실 것은 명확하다.
그분이 욕심쟁이이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분이 거룩과 공의로 선하심과 사랑으로 통치하시니까,
후회없이 하나 뿐인 영혼과 목숨을 위해 바로 살라는 것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이미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고, 성경에 기록하여 보게 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날에는 핑계될 수도, 변명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두려워해야 할 분은 두려워하지 않고 힘좀 가졌다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랑해야 할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고 재물과 권력과 명예만을 우상으로 섬기고 사랑한다.
심판의 날,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몫이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이다. 혀를 서늘케 해줄 물한방울을 구걸해도 소용없는 곳이다.
2.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6:16)
믿는 자들은 성령의 전.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이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신다.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한 것 같이 우리 몸의 성전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
우리는 믿은 자들 다수이지만, 교회는 단수형이다.
믿는 자들은 오직 하나의 몸을 이룬다. 우리 각자는 그 몸의 지체들이다.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거하셔서 그들과 교제하신다는 것이다.
계2:1,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 그리스도와 같다.
레위기에서 자신의 지시로 세워진 성막에 임재하셔서 자기 백성에게 나타내시겠다고 하셨다.
에스겔서에도 동일한 말씀이 있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여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겔37:26-27)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교회에 거하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하나님과의 영원한 화평이 언약으로 세워지고 그 가운데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다.
그들의 하나님, 내 백성의 영원한 관계 가운데 견고하고 번성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 맛보기를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주시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나타내신다.
맛보고 경험함으로 견고해지고 온전해지는 역사를 하나님은 항상 보여주셨다.
사람은 봄으로 경험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예수의 생명과 향기를 나타내기도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강조한 것은, 영원히 살아 계신 분으로서,
죽은 것들에 불과한 우상들과 대비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
살아 있는 존재가 죽은 것들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동시에 죽은 우상과 교제할 수 없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동시에 죽은 우상을 섬기는 백성이 될 수 없다.
우상 숭배자들은 그들의 하나님, 나의 백성의 언약에 참여할 수 없고 분깃도 없다.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18)
그들의 하나님 나의 백성의 관계는 ‘새 언약’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의 법이 성령으로 마음에 생각에 기록되어 준행하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관계이다.
주님은 이 새 언약을 이루기 위해 자기 피로 세우고 부어주셨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8:10)
이 새 언약과 관계가 전혀 없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고,
성령께서 그 마음에 주의 법을 기록하고 생각에 두어, 지켜 행하는 자만이,
새 언약의 신자이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도 우상도,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은 이 새 언약과 관계가 없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자가 이웃도 자기 몸처럼 사랑할 수 있다.
이것도 저것도는 없다. 이거냐 저거냐가 있을 뿐이다.
선택하고 결단해야 한다.
샤머니즘의 깊은 뿌리가 하나님과 우상을 분별하지 못하게 한다.
3.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17)
그래야 아버지와 그의 자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관계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과 우상을, 비교 우위나 상대적인 것으로 아는 것이 문제이다.
상황윤리들은 다 상대화한 윤리이다. 다 옳은 것이 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진리는, 절대인 것을 알아야 한다. 양보나 양해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마다 미혹의 영이다.
아닌 것에 대해서는 ‘나와서 따로 있어야’ 한다. 분파와 분리는 다른 것이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매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사52:11)
가나안 7족속들과 관계를 맺거나 사귀지 말라고 하였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덧과 함정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하나님의 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자들이 우상을 섬기는 더러운 자들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그런 자들로부터 ‘나와서 따로 있어야’ 함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 것이다.
먹물을 만지고서 손을 더럽히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게 마련이다.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는 그 집을 강탈하리라”(마12:29)
믿음과 진리의 문제는 그리하지 않고서는 오히려 끌려갈 수 밖에 없다.
믿지 않는 자들과, 신앙이 다른 자들과는, 불필요한 교류나 친밀한 교제는 금해야 한다.
멍에를 함께 매지 말아야 한다.
연합 운동에 먹혀 든다. 대교단 대교회의 노예가 된다.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는 자의 먹이가 된다. 대충대충이 화를 불러온다.
다른 교훈을 하는 자들과는 인사도 하지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하신다,
그들의 열매 없는 어둠의 일들에 참여해서는 안 되고,
그들의 부정한 것들을 만지는 것을 피해야 하며, 오히려 그들의 악을 책망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하신 것들은 세심하게 지켜야 한다. 목사는 목사대로, 성도는 성도대로.
그러할 때, ‘전능하신 주’,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아버지로서,
그의 자녀들을, 모든 일에서 보호하시며 복되게 하실 것이다.
그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요 우리 하나님이신 것처럼 더 복된 것은 없다.
그분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일에 더욱 넘치게 능히 하시는 분이시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영원무궁토록 올려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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