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7 주일설교
본문: 수 24:14-15
제목: 여호와만 섬기라
1.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을 주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했으니 그 이전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도 나이 많아 늙게 되었다.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온 이스라엘에게 당부할 말이 있었다.
“여호와께서 앞서 행하시며 그들을 위해 싸우셨고 땅을 제비 뽑아 분배해 주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수23:6)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 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23:7-8)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셨기에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없었다.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23:10-11)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은
그들이 수가 많고 강하고 무기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기적을 베푸시고 왕벌을 앞서 보내어 이기게 하셨다.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었다”(24:13)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하나이다.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는 것이다.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율법 책을 떠나고, 우파가 되든지 좌파가 되어 서로 옳다고 하고 있다.
우리 주님도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당부하시는 말씀도 같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성경은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비로소 알 수 있고 순종하고 청종할 수 있다.
말씀은 가르쳐야 하고 가르치는 자가 있어야 한다.
가르치는 자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으면, 그 가르침을 지켜 행해야 한다.
검증된 경건서적은 성경을 가르치는 책이니 산 스승이 없으면 책을 통해서 만나야 한다.
율법 책 곧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는 자만이 복이 있는 자이다.(시1편)
다윗 왕이 죽으면서 아들 솔로몬에게 한 말은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다 지켜 행하라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성경을 원수처럼 멀리하고
행여 들여다 보면 무슨 큰 일이나 날 것처럼 한쪽에 던져놓고 먼지가 쌓이도록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 복을 달라, 길을 열어 달라, 사정한다.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복과 형통을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의와 법도가 내 믿음과 삶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면,
그의 인생과 길은 저주와 화로 뒤덮여 속히 망하고 말 것이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성경을 멀리하고 자기 의로 하나님의 의를 힘써 복종하지 않아서 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호수아가 늙어서 죽으면서도 자기가 하나님께 받았던 말씀 그대로 당부하고 있다.
성경이 어려우면 영과 진리로 설교한 설교를 가까이 하라. 반복해서 들으라.
설교를 다시 듣고 다시 읽어보는 사람도 참으로 찾아보기 힘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이고,
좋은 설교를 반복해 듣는 것이다. 청하면 종하게 된다. 불청하면 불순종하게 된다.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한 인생을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여호수아가 부탁한 대로, 다윗이 유언한 대로, 시편 1편이 권면하는 대로, 행하라.
성경이 무거워서 싫으면 설교가 요약된 가벼운 주보라도 지니고 다니며 틈틈이 읽으라.
그것도 무겁고 싫으면 인터넷으로 주보나 설교를 찾아 읽으라.
어떻게든 말씀을 가까이 하고, 세상을 멀리 하라.
그러나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가득차 있는 설교는 듣지 말라.
우연치 않게 들었거든 귀를 씻어버리라.
그런데 영과 진리로 하는 설교인지, 사람의 지혜로 하는 설교인지 분별이 되어야 말이지요.
2.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여호와만 섬기라
이제는, 하나님이 알아서 모든 것을 주고, 해주었거든, ‘이제는’ 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라.
경외는 두려운 마음으로 공경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명령이면 100세에 얻은 이삭까지도 번제로 드리는 것이 경외이다.
온전함은 어떤 것인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힘을 다해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진실함은 어떤 것인가?
외식하지 아니하고 겉과 속이 같은 것이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화 있을진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만 의를 꾸미고 속으로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였다.
그러니 그들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서기관은 지금의 신학교 교수들이고,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는 교회 지도자들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고, 내가 얼마든지 그들일 수 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면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겨야 한다.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겨야 한다.
강 저쪽은 아브라함과 그 조상들이 우상을 섬기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말한다.
애굽에서 섬기던 신은 그들이 홍해를 건너기 전에 섬기던 신들이다.
우리에게도 조상들이 섬기며 물려준 신들이 있고, 지금 세상에서 섬기는 신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부처를 믿던 불교와 조상신을 섬기던 유교의 잔재가 몸에 베어 있다.
아울러 미신을 섬기던 샤머니즘의 잔재도 짙게 남아 있다.
그것이 바로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요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이다.
현대에 와서는 돈신 일신 출세와 성공신이 또는 과학신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온갖 잡신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길 수 없다.
더구나 사람의 계명과 철학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고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15:8)
이스라엘은 성읍 수만큼 섬기는 신들이 많았다.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와 같도다”(렘11:22)
우리가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있다면,
우리 속에도 수많은 신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제사를 꼬박꼬박 드리면서도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는 것과 같다.
성경을 멀리할 때마다 온갖 잡신들이 날아든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그는 재물을 섬기고 있을 뿐이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지라, 이 말씀에 대해 비웃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아브라함도 다윗도 왜 여호와만 사랑하고 여호와의 법도를 지키라 하는지
깊이 생각하고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
다른 신들은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고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불러올 뿐이다.
성경을 멀리하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섬기게 된다.
그것은 자연스런 과정이고 필연적인 이행이다.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섬기지 않으려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의 바른 해석,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
초대교회의 가르친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
유대교회와 로마교회와 현대교회의 가르침은 그대로 닮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발도인들, 바울인들, 위그노들, 개혁자들, 청교도들의 경건서적을 통해
성경을 다시 가르침 받고 성경이 얼마나 고귀하고 권위 있고, 살아 있고 능력있는 말씀인지를
다시 눈을 뜨고 참 진리의 말씀으로 성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를 그들의 책과 그들의 삶과 그들의 큰 확신을 통해
새롭게 배우고 우리 인생을 그 진리와 영 위에 다시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 하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모든 관점이 변화되는 회심을 하게 하시고,
불과 성령으로 세례하여 주시는 것이다.
사도 바울을 본받아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버려야 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만 담을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는 변화가 없다면
낡은 가죽부대에 묵은 포도주만 가득 채우고 영원히 타는 불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다.
3.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늙은 여호수아가 이제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고 고백하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하는 명령,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한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지 않는 사람은
마음과 뜻을 다해 온갖 잡신들을 섬기면서도 자신만 착각하고 모를 뿐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내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경외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면,
내가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형통하게 하신다.
하나님도 언약을 지키신다.
내가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나와 나의 집은 머지 않아 저주와 사망과 멸망으로 순식간에 끝을 고하고 말 것이다.
바벨론과 세상이 멸망하는 데는 한 시간이면 족하다고 계시록은 말씀해 준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복음서 바울서신 계시록을 읽으면서,
그 이스라엘이, 바로 나이고, 현대 교회인 것을 알고,
그 멸망의 운명이 곧 나의 멸망의 운명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긴 광야생활의 고난과 연단은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한 자에게 헤브론을 주시고 왕의 영광을 누리게 하신다.
모세의 40년의 광야생활이 화를 당한 연수대로 그를 기쁘고 영광스런 40년의 복을 받게 했다.
우리는 긴 고난의 세월을 통해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된다.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긴 광야생활,
그 크고 광대한 광야가, 불뱀과 전갈이 있는 광야가, 외롭고 목마른 광야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긴 광야가, 마침내 복과 영광의 그릇을 만들게 한다.
그릇이 되면, 하루 아침에 요셉을 세우듯이, 다윗을 세우듯이, 한나를 세우듯이,
하나님은 세우시고, 복과 영광을 쏟아 부어주신다.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게 하신다.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고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게 하신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속히 이루게 하신다.
우리를 괴롭힌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신다.
우리가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신다.
늙었을지라도, 여전히 결실하고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게 하신다.
기력이 쇠하지 않게 하시고, 눈도 흐리지 않고 귀도 흐리지 않게 하신다.
치매 걱정일랑은 집어던져 버려도 된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 선교와 구제에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 날 영광의 임금이 예비된 천국을 주는 것과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보내는 기준이
오직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선한 행실들이고 하지 않은 것임을 명심하자.
하나님은 긍휼을 원하시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심을 알아야 한다.
제사 지내면서 악행을 서슴치 않는 것을 하나님은 보시기에 괴롭다고 하신다.
금식하면서 온갖 오락과 불법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매인 자들을 자유하게 하고, 주린 자에게 심정이 동하는 것이다.
선한 행실로 세상이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이 즐겁고 뿔이 높아지고 원수들을 향해 입이 크게 열릴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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