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3 주일예배
본문: 여호수아 4:20-24
제목: 여호와의 손의 강하심
1. 홍해와 같이 요단을 마르게 하사 건너게 하신다.
두 강을 건너면 구원과 천국(기업)을 얻는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의 다수는 광야에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10:5)
요단을 건넌 2세대는 가나안에서 멸망하고 말았다.
사사시대와 왕국의 분열과 멸망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육신만 죽은 것이지 영혼은 구원을 받았다고도 한다.
왜냐? 홍해를 건너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요 구원은 잃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회에 오는 것이 홍해를 건너는 것이요 교회에 속하면 요단을 건넌 것임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다.
유대 교회는 유대인에 속하고 율법과 제사가 있으면 구원과 천국을 얻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개 취급했고, 천국을 따논 당상으로 여겼다.
로마 교회는 교회는 구원의 방주요, 천국행 열차였다.
현대 교회는 이 로마 교회와 유대 교회를 그대로 닮고 있다.
그 실체를 그들만 모르고,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안다.
교회는 그렇고 그런 곳이고, 세상과 다를 것이 없고 더 구린네가 나는 것 같다고 여긴다.
그것이 그들이 교회에 가지 않고 교회에 속하지 않는 이유이다.
교회가 구원의 방주, 천국행 열차라고 아무리 전도를 해도 미동도 않는다.
종교란 악세사리요 야편인 것을 그들은 알고, 그 신은 아버지 상 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안다.
다윈의 진화론 한 방에,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한 방에, 리첼의 양식비평 한 방에
그 신과 성경은 죽고 말았다. 퇴물이 되고 말았다.
기독교국가라는 유럽과 미국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은 극히 소수라고 한다.
참 기독교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종교이다.
사람의 의가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종교이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유대교처럼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는 종교이다.
이사야 선지는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라고 하였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58:8-11)
기독교는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혀주고
병들었을 때에 돌봐주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아주는 종교이다.
“너희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마25:34)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의 행위들을 하는 사람들,
주님이 말씀한 행위들을 하는 오른 쪽 양의 사람들이
구원 받고 복을 받고 천국에 가는 사람들이다.
넓은 길 큰 문으로 멸망으로 달려가는 많은 무리들이 교회인 줄, 천국 백성인줄, 아는 데, 아니다.
좁은 길 작은 문으로 해서 생명으로 가는 극히 적은 무리들이 천국 백성이라 주님 말씀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요단을 가르신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수4:23)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기적을 행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믿음이 작은 자들이여, 오늘도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고
어제와 오늘이 동일한 분임을 믿으라. 약속을 하시고 지키는 분이심을 믿으라.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으로, 홍해를 같이 건넜다고, 요단을 같이 건넜다고,
다 구원 받고 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 떡만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더해 주실 뿐이다.
오른 쪽에 속한 양들처럼 행위를 해야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의 행위들을 하는 자들에게만 구원과 천국이 열린다.
믿음은 순종하고, 말씀은 청종함으로써, 사람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천국 백성들의 모습이다.
유대 종교와 로마 종교와 달리 참 교회의 성도들은 주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선한 삶의 행위와 열매들을 맺으며 살았고 그 전통을 지켰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오른 쪽의 양들이 눈꼴 사나와, 유대 교회와 로마 교회의 권력자들은
왼쪽의 염소가 되어 그들을 고문과 십자가형과 화형으로 보답했다.
하나님은 홍해를 건넜다고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광야에서 연단과 훈련을 받아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사람이 되었을 때,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기업을 주신다.
요단을 건넌다는 것이, 다윗에게는, 헤브론에 오르는 것이었고,
갈렙에게는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는 기럇 아르바를 정복하게 하시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에게도 헤브론에 오르게 하시고 기럇 아르바를 주시는 것이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손의 능하고 강하심을 보여주는 기적의 방식이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의 역사이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역사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그가 믿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프로이드가 말하는 아버지 상의 하나님을 믿고 있을 뿐이다.
광야에서 고난과 연단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 받지 못한다면,
홍해도 요단도 건넜다고 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1세대와 요단을 건넌 2세들의 결말을 보면 알 수 있다.
2. 여호와의 손이 강하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24)
하나님이 요단을 건너게 하시는 방법은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시는 방법이다. 사람도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손의 역사이다.
억울한 죄목으로 오랫동안 감옥살이하던 요셉을 하루 아침에 대애굽제국의 총리로 세우셨다.
적국에서 망명생활하며 시글락 환난을 당하던 다윗을 헤브론에 올려 왕이 되게 하셨다.
광야생활을 마친 85세의 갈렙에게 거인들의 성읍 기럇 아르바, 헤브론을 정복하게 하셨다.
40년 광야 생활을 마친 모세에게 40년간의 놀라운 출애굽의 대역사와 광야 인도를 이루게 하셨다.
땅의 모든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지고 하나님의 역사에 놀라 기절할 지경이었다.
하나님은 괴롭히던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원수들의 멸망을 듣고 보게 하실 것이다.
마지막 심판 날엔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을 절감할 것이고, 영원한 불못에 다시 놀랄 것이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51:1-3)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 곧 가나안 땅의 황폐한 곳들이다. 사막들이고 광야들이다.
어떻게 하여, 시온이, 예루살렘이, 이렇게 되었나요?
죄악과 우상숭배의 탓이었다.
죄악과 우상 숭배는 시온도 황폐한 사막과 광야를 만드는 주범이다.
유대 교회와 로마 교회의 죄악과 우상 숭배는 지금도 현대 교회에서 반복되고 있다.
세상과 다를 것이 없고, 돈신 재물신 부동산신, 성공과 출세신, 축복의 신들을 경배하고 있다.
이들과 이방인들의, 땅의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손의 강하심과 능하심을 보여 주실 것이다.
그들에게는 저주요, 멸망이지만,
택한 백성들에게는 그 사막이 에덴으로, 그 광야가 여호와의 동산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을 것이다.
땅의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원수의 목전에서,
택한 백성들이 화를 당한 연수대로 즐거워하게 할 것이고,
그 작은 자가 천명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속히 이루게 할 것이다.
잉태도 출산도 산고도 겪지 못하고, 밭 가는 자들이 그 등을 갈아 고랑이 길게 지어졌던 이들이,
장막터를 넓히고 그 처소의 휘장을 널리 펴고 말뚝을 견고히 하게 할 것이다.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고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게 할 것이다.
이는 다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심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에게 축복하시고 번성하게 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셔도,
마다 하고 사양할 것이 못된다.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심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3.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헤브론에 오르게 하시는 것은,
더 중요한 목적은,
택한 백성들이 자기 하나님을 항상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손이 강하심을 알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땅의 강한 자들, 왕들 귀족들, 부유한 상인들과 부자들은, 계시록에 보면,
여호와의 손이 강하심을 보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우상 숭배에 더 빠지고 있다.
하나님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헤브론에 오르게 하실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신8:12-20)
하나님이 놀랍게 축복하시면 하실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바란다.
경외한다는 것은 아브라함을 보고 배워야 한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항상, 영원토록,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
홍해와 요단을 기적으로 건너게 하셨음을 명심해야 한다.
경외는 이삭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순종하여 바치는 아브라함의 믿음 수준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요단 한 가운데서 열 두 돌을 취하여 이를 기념하게 하셨다.
이 돌들이 무슨 뜻이냐고 묻거든,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여러분도 요단을 마르게 하사 건너게 하시거든, 헤브론에 기적으로 오르게 하시거든,
주변에서 기념물을 취하고 기억상실증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하시기 바란다.
조금만 편해지고 먹고 살만해지면 하나님을 쉬 잊어버리고 세상에 빠지는 세태에
오늘 여호수아의 기록 본문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였으며, 광야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를 통과하였으며,
성품과 삶에, 말씀과 청종에, 믿음과 순종에, 떡으로만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사는 것에,
변화의 열매, 의의 열매가 나타나고 있다면,
여러분은 요단을 마르게 하사 건너게 하심을, 헤브론에 오를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시기 바란다.
주신 계시와 약속이 있다면, 더욱 더 신뢰하고 의지하고 구하시기 바란다.
주셨을 때, 이루어 주셨을 때,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의 강하심을 알게 하며,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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