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도인들의 샹포랑 총회에 참석한 기욤 파렐의 교제와 사역/ 권현익
1532년 7월 파렐이 그랑송으로 돌아왔다.
두 명의 낯선 사람들이 파렐에게 대화를 요청했고, 파렐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프랑스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짙은 피부색의 외국인이었는데,
다름 아닌 피에몽 계곡에서 온 발도인이었다.
파렐은 어린 시절부터 발도인들의 존재를 이미 잘 알았고,
1528년부터는 이들의 동태에 대한 소식도 듣고 있었다.
파렐의 옛 제자인 에밀 페로와 그의 친구 장 카나예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파도바로 갔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피에몽 계곡에 피신해
20개월 정도를 체류했다. 두 사람은 직접 목격하고 관찰한
피에몽의 여러 상황을 에글에서 사역하던 파렐에게 상세하게 전달했다.
이런 이유로 발도인들의 방문은 파렐에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파렐을 찾아온 두 바르브들 가운데 한 사람은 루터를 직접 만났던 마르틴 고넹이다.
그들은 먼저 파렐에게 그들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아주 고대에 콘스탄틴 대제가 하나님의 교회를 이교도 세계와 연합시키려 했을 때,
우리 조상들은 이 혼합을 수용하려는 사람들과 하나 되기 거부했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을 거부한 우리의 선조들은
피에몽의 높은 산과 외딴 계곡으로 피신했습니다.
그 계곡은 지금까지 그 후손인 우리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로마 교황에게 복종한 적이 없으며,
성경의 지시 외에는 다른 지침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성인과 성상 또는 미사의 빵도 숭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행위들을 이단과 이교도의 것이라 부릅니다.”
발도인들은 샹포랑 총회에 파렐을 초청했는데,
이는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한 몇 가지 교리에 관한 파렐의 의견을 직접 듣기 위함이었다.
이 제안을 받은 파렐은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겠다며
즉시 수용했다. 발도인들은 파예른의 설교자이며 파렐의 동역자인 앙투안 소니에도
함께 피에몽으로 와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파렐의 다른 동료들은 먼 산악 지역을 오가야만 하는
파렐의 위험한 여행을 걱정했다.
당시 엑스레뱅의 고등법원이 발도인들에 대한 새로운 박해를 선포했고,
사부아와 피에몽의 감옥들은 이미 신실한 예비 순교자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렐은 진리의 확고한 적이자 베른의 보호마저 무용지물인
사부아 공작의 지역이라 할지라도 가기를 결심했다.
그 어떤 위험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그의 마음을 흔들 수는 없었다.
파렐은 8월 중순에 떠날 준비를 마쳤다.
두 바르브는 그들의 형제들에게 파렐의 총회 수락을 알리기 위해
먼저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전도자들의 도착 예고는
계곡의 주민들에게 행복한 기다림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파렐 일행의 여정은 길고 매우 위험했다.
그들은 도시와 마을을 돌아 발도인만이 알고 있는 안전한 길을 따라,
때로는 숲과 바위틈으로 숨어다니는 등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총회는 바르브 고넹이 머무는 안그로네의 샹포랑에서 개최되었다.
설교자들은 수많은 주민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수백 명의 외부 인사들도 속속 도착했다.
제공된 숙소들은 수용인원보다 더 많은 손님들로 넘쳐났다.
그들은 남부 이탈리아와 보헤미아, 프랑스 그리고
피에몽의 다른 지역과 사부아의 여러 지역에서 온 발도인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 계곡에서 화형의 불길과 교황의 검으로 인해
피신할 수밖에 없었던 발도인들의 후예였다.
유럽 각 지역의 발도인 공동체들은 모든 사회 계층의 대표들을 보냈는데,
그들의 면면을 보면 귀족들과 목동, 노동자, 포도 재배자들이었다.
1532년 9월 12일 마침내 안그로네 계곡의 샹포랑에서
역사적인 바르브 총회가 개최되었다. 대표단들의 의견은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그것은 로마교회의 그 어떤 교리나 예식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파의 주장과,
발도인들이 더 이상 혹독한 박해를 받지 않고 교황주의 이웃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일부 교리를 양보해야만 한다는 온건파의 주장이었다.
이 총회에는 큰 영향력을 지닌 바르브 장 몰린과 다니엘 발랑스가 참석했다.
강경파 진영의 의견은 파렐과 소니에의 지지를 받았지만 귀족들은 대부분 온건파였다.
총회에 참석한 파렐은 많은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했다.
특별히 예배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특별한 의식법이 따로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의식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가치도 없습니다.
이 무수한 기념일과 봉헌 그리고 신도송과 반복되는 응답송은 헛된 예식이며
큰 죄악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참 예배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예배하는 이들은 영과 진리로만 경배해야만 한다’는 것이
주님의 답변입니다.”
한 바르브가 “파렐의 주장은 선조 발도인들의 가르침과 일치하며,
발도인들의 오랜 신앙고백과도 동일하다.
그렇다면 성인을 기념하는 모든 기념일이나 성수, 엉성한 예식들과 같은
모든 인간의 창작물인 예식들은 반드시 거부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계속해서 이런 창작물들은 구원에 전혀 기여할 수 없으며,
구원은 성령의 능력만으로만 가능하며 또한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강조했다.
파렐의 우레와 같은 목소리는 계곡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는 분명한 확신 가운데 발언했고,
그의 엄숙한 말들은 발도인들의 마음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파렐은 안그로네 계곡에 머무는 동안 주민들과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누었고,
주민들은 그들의 오래된 필사본 문서들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발도인들은 너무나 소중한 신앙의 보물을 잘 간직하고 있었으며,
그 문서 중 일부는 무려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있었다.
매우 희귀한 자료로 가득찬 이 책들은 전부 신앙에 관한 내용이었다.
필사본 중에는 고대 프랑스어 번역 성경도 있었다.
그 성경은 로마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으나,
이곳의 주민들은 그 성경을 대대로 돌려가며 읽고 있었다.
파렐은 그들에게 “이 성경은 여러분 모두의 성경이지만,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읽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특정한 사람들만 소유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모두가 각자의 성경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이상한 종파와 이단이 생겨났던 이유도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니지 않아 성경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현대 프랑스어로 성경을 인쇄한 후,
여러분들이 원하는 숫자만큼 갖고 있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라고 말했다.
발도인들은 파렐의 이 제안을 매우 흡족하게 받아들였지만,
현실로 이루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며 어려움도 따랐다.
르페브르의 프랑스어 신약성경은 박해로 인해 거의 사라졌고,
파렐은 더 나은 번역을 원했기 때문이다.
파렐은 “여러분이 성경책을 갖는 것만이 목표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을 가르칠 학교와 교사도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교사들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에 발도인들은 파렐에게 크게 감사하면서, 회의 보고서를 인쇄해 줄 것도 요청했다.
마침내 개혁자와 계곡의 발도인들이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
그들은 성경을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에 근거해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된 이중 언어로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발도인들은 이 작업에 필요한 경비 800에퀴를 기꺼이 헌금했다.
이 금액은 당시 노동자의 20년치 보수에 해당되는 엄청한 거금이었다.
가장 가난한 산지의 발도인들이 정성껏 드린 헌신적인 이 헌금은
장차 불어권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며, 가장 신뢰를 받는 성경의 출판비로 사용되었다.
산악인들은 파렐을 그들의 산지로 보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각각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사역지로 돌아온 파렐은 약속했던 대로
그가 권고한 학교 설립을 위한 기금과 교사 4명을 피에몽 계곡으로 보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차후 성경을 번역하게 되는 올리베탕이다.
파렐은 계속해서 여러 도시를 방문하며 성경 출판을 위한 기금을 모았다.
- 권현익, 『기욤 파렐과 종교개혁』, PP 480-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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