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은 루터와 비견되는 명성, 파렐은 세상의 영예와는 무관/ 권현익
칼뱅은 루터와 비견되는 명성, 파렐은 세상의 영예와는 무관/ 권현익 칼뱅이 주네브로 다시 돌아간 시절부터 파렐은 주네브의 역사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후 파렐의 모습은 그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던 메츠에서 확인된다. 파렐의 마지막 방문이다. 메츠는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도미니크회 수도사들 중 일부가 개혁교리와 순수한 삶을 설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542년 메츠 행정관에 선출된 카스페르가 그들의 집과 영지에서 개혁주의 예배를 허용했고, 그 결과 개혁주의 공동체가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해 12월 초, 파렐은 개혁교회를 조직하기 위해 초청받았다.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도시의 방문을 염려하는 주변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렐은 메츠로 향했다. 파렐의 도착 소식을 접한 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