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2/04 주일설교, '거짓 선생들', 벧후 2:1-3

강대식 2022. 12. 4. 19:01

2022-12-04 주일예배

본문: 벧후 2:1-3

제목: 거짓 선생들

 

1.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을 것이다.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벧후2:1)

 

구약시대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들이 권력자들과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자기들 마음 속에서 지어낸 말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라 전하고 또 기록된 말씀을 사람의 지혜로 해석하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살도록 부추기는 일을 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가운데 우매함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렘23:11-17)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하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셨다.

오늘날 목사들은 선지자와 제사장을 겸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사악하여 교회에서도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마리아 선지자들에게서는 우매함을 보았고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서는 가증함을 보았다.

사마리아 선지자의 우매함은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을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섬기고 마음 속에는 우상들이 가득하여 백성을 그릇 행하게 하였다.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의 가증함은 간음을 행하고 거짓을 말하고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였다.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다.

간음과 거짓과 악행은 붙어 다니고 세트로 이루어진다.

우상과 짝하는 것이 영적 간음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다.

 

영적 간음은 육체적인 간음으로 항상 전진한다.

이를 합리화하느라 거짓을 일삼고 권력에게 부자에게 빌붙어

그들을 악행을 회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손을 강하게 하여 주고 편안하게 해주며 조장한다.

 

하나님 앞에서 그 거짓 선지자들 제사장들은 뭐와 같으냐?

불과 유황으로 멸망한 소돔과 같고, 그 백성은 함께 멸망한 고모라와 같다.

한 가지로,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할 자들이라는 것이다.

선지자와 백성이 짝짜꿍하여 함께 저주와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너희에게 예언(설교)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우선 맘이 편하고 복과 소망에 넘치게 하지만, 헛된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이 가르치는 묵시(설교)는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자기 탐욕과 정욕에서 나온 것이고, 말씀을 빙자하여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징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평안을 얘기하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자들에게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을 말씀으로 보장해 준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설교하며 악인들에게 위로와 평안과 축복만을 말해주고,

그들에게서 떡부스러기를 얻어 먹고, 탐욕에 연단된 마음으로 불의의 삯을 사랑한다.

 

이런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는 구약 대선지서 소선지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목사들은 선지서를 설교하지 않는다.

축복에 대한 말씀만 골라 설교하고, 저주에 대한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다.

천국에 대한 말씀만 골라 가르치고, 지옥에 대한 말씀은 설교하지 않는다.

 

목사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 목사에게 ‘왜 선지서는 가르치지 않느냐?’ 하고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다 똑같은 말만 하고 있지 않느냐’ 였다.

똑같이 심판과 저주만 말하고 있으니 가르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과 천국을 이 땅에서 누리는 비결만 잘 정리해서 가르치고 있었다.

 

여러분, 제발 선지서들을 읽어야 한다.

그 이스라엘이 지금의 교회이고 곧 나이다.

거기에 그 거짓 선지자들에 목사를 대입하고, 그 이스라엘에 나를 대입하고 읽으면 틀림이 없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

 

위로와 축복의 말이 좋다고 은혜 받았다고 사람들은 몰려들 간다.

우리 주님은 지옥 말씀하지 않고 천국 말씀한 적 없고,

평강과 형통 말씀하며 반드시 저주와 멸망을 말씀하신다.

성경은 항상 균형을 말하지, 어느 한 쪽으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다.

어느 한쪽으로, 좌로나 우로 치우치는 것이, 거짓 선생들의 특징이다.

 

2.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이는 자들이다.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2:1)

 

이단은 끝이 다르다는 뜻이다.

같은 것 같은데 보니까 끝이 이상한 것이 이단이다.

성경을 쉽게 잘 가르친다고 하는데, 끝에는 교주가 하나님, 예수가 되고

속한 무리와 교회만이 천국이고, 아닌 자들은 다 지옥 자식들이 된다.

 

자기들을 피로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자기들의 교주가 주가 된다.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다.

멸망은 먼 것 같아도 그렇게 멀지 않다.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을 지옥에 던져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케 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않는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벧후2:9-10)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 곧 연단의 고난과 시련에서 결국 건져주시고, 마침내 축복하신다.

불의한 자는 벌을 받지 않는 것 같아도 형벌 아래에 두고 계신다.

진짜 심판은 최종의 심판의 날에 다 이루어진다.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는 자들,

이런 자들일수록 세상을 주관하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멸시한다.

이에 대해 형벌을 내리시고 심판의 날까지 지키신다.

악인들도 심판을 위해 지키신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단 중에 가장 큰 이단은 제도권 종교를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갖은 전도와 전도 폭발의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사람 수를 늘려서 세력을 만들고,

세속에 물들어, 현재의 정치 권력과 한 편이 되고, 부한 자들과 한 통속이 되어,

하나님이 돌보라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더 어렵게 만든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

 

핸대판 사마리아 선지자들은 책을 많이 써서 유명하긴 하는데,

바알 곧 세상 신의 지혜를 의지하여 성경을 율법주의 지성주의로 아는 척하며 어렵게 만든다.

종교적 열심은 있는 것 같은데 말씀의 행함은 없는 거짓 선지자들이

바로 사마리아 선지자들이고, 바리새인의 누룩이다.

 

반면에, 현대판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은 세속주의에 물들어서,

세상 지혜와 성경의 말씀을 교묘히 섞어 간음을 행한다.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며 가증한 일들을 서슴치 않는 거짓 선지자들이

바로 사두개인의 누룩이고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이다.

 

겉 모양만 다를 뿐 다 같은 거짓 선지자들의 무리들이니,

주여 주여 하며 설교하고 가르친다고, 주여 주여 하며 책을 많이 썼다고, 유명하다고,

속아 넘어가지 말고. 삼가고 주의하라고 하신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하면서, 주여 주여 하면서,

성경을 어렵게 만들고, 접근하기 어려운 책으로 만들고,

믿음의 행함은 없어, 켜 놓은 등불은 없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못 되고

속 따로 겉 따로, 맘 따로 행함 따로가 있을 뿐이다.

말씀의 소리는 요란한데, 성품과 행함의 열매는 없다.

 

주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하셨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다.

주님은 그들의 열매 곧 성품과 삶의 열매를 보고 알라고 하셨다.

가시나무가 포도를 맺을 수 없고, 엉겅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다.

 

주님의 산상수훈의 결론이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19-21)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3. 탐심으로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을 것이다.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리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3절)

 

문제는 그들이 이익을 따르지 진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리는 이익을 위한 도구이고 수단이고 방편일 뿐이다.

어릴 때부터 공자왈 맹자왈 배워서 과거 합격하고 벼슬 따고 부자 되는 것이 목적이다.

 

공부 잘하여 좋은 대학 가서 공무원 판검사 되고 의사 기술자 정치인 경제인 되어,

이익을 많이 쟁취하기 위해, 하나님도 재물도 권력도 겸하여 섬긴다.

죄와 회개는 뒷전이요 예수 믿는 것도 이익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다.

 

호색은 간음이면서 이익을 쫓아간다는 뜻도 포함된다.

진리를 표방하며 이익을 호색하고 따라가니, 참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재물과 축복 노래를 잘 부르고 읊어야 능력 있고 실력 있는 목사가 된다.

 

선지자 제사장 백성이 한 통속, 삼자일체가 되어, 다 같고 세상과 다를 것이 없다.

너희가 마지막에는 어찌할 것이냐? 하시지만, 그런 거에는 관심도 문제의식도 없다.

진리를 빙자하여 탐심으로 지어낸 말이 좋기만 하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면서도 탐욕과 악독 방탕이 마음 속에 가득하다.

겉에 거룩하게 화려하게 입은 양의 옷 속에 노략질하는 이리를 잘도 감추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더디고 없는 것 같아도 역사는 크고 작은 심판의 연속이었고

끝날에는 확실히 행한 대로, 심은 대로 받고 갚게 될 것이다.

 

백성들이 교회에 나와서 시끌벅적하지만, 혹 진리의 도를 말하여도,

하나님의 백성처럼 앉아서 말씀을 듣지만, 그대로 행하지는 않는다.

이는 그 입으로 진리의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오직 이익만 따를 뿐이다.

고운 음성으로 사랑 노래하며 음악 잘하는 자 같이 여길 뿐이다.

 

그들에 대한 심판과 멸망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참 그리스도인들의 상과 축복과 영광도 결코 잠들지 않는다.

이 땅에서도, 현세에도,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15:4)

 

세상 노름에서 교훈과 생각을 받지 말고, 성경을 읽고 연구함으로 삶의 교훈을 받아야 한다.

고난 중에 위로도 성경에서 받고, 미래에 대한 소망도 성경의 교훈에서 갖기 바란다.

 

믿음의 선진들은 다 말씀을 약속으로 굳게 잡고 그 긴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갔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약속을 기업으로 받았다. 이를 본 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