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1 주일예배
본문: 요 1:9-13
제목: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1.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요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빛으로, 생명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였다.
세례 요한은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사람이었다.
이 빛이 우리 마음 가운데 비쳐야 그분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
주 예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빛이 마음 가운데 비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4)
빛이 비치지 못하게 하고 마음을 혼미하게 하는 범인이 누구냐?
이 세상의 신이다. 마귀요 사탄이요 옛뱀이다.
내가 안 믿고, 내가 못 믿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탄은 권세가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하고 사로잡아 버린다.
그 사탄은 일차적으로 이 세상의 신이며 공중권세 잡은 자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어둠의 영이다.
‘세상의 영’을 받은 사람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고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된다.
구원은 이 사탄의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 것이다.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식들이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엡5:8-13)
주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도 빛과 어둠의 차이와 구별이 별로 전혀 없다?
성경 말씀이 거짓이거나 아니면 본인에 문제가 있음이 확실하다.
구원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것에서 살리심을 받는 것인데, 죽었다 살아난 표가 없다면 문제다.
로마 교회가 천년 동안 유럽을 지배하고 사로잡았는데, 그 시대를 암흑시대라고 한다.
그들의 종교가 어둠이었는지 빛이었는지는 역사의 심판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그 천년의 아성을 개혁했다는 개신교 5백년은 어떠한가?
과연 빛의 열매들을 맺었는가?
교회 안에서도 권력과 돈의 횡포가 난무하고, 밖에서는 세상과 다를 바가 없다면,
그 교회는 어둠의 권세가 지배하고 있는 곳이고,
주님의 말씀대로 장사하는 집이요 강도의 소굴이요 사탄의 권좌가 있는 사탄의 회당일 것이다.
빛의 자녀, 빛의 교회라면 사람 앞에 그들의 빛이 비치게 해야 할 것이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5:14-15)
성경은 그렇게 쉬운 책도 물론 아니지만 그렇게 어려운 책도 아니다.
웬만큼 가르침을 받으면 우리가 행하기에 필요한 말씀은 이해할 수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헛것이다.
교리도 행하기 위한 교리이지 어렵게 엮어가는 교리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바울 서신의 앞 부분은 뒷 부분의 행함을 위한 교리이지 따로가 아니다.
유대인의 율법주의 만큼 현대교회의 지성주의도 성경을 어렵게만 만들고 허공을 치고 있다.
빛을 비추는 선한 행함이 없다면, 교회는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 공동체요,
세상 조직 가운데 하나로서 같이 세상의 어둠에 기여하는 사탄의 회당 그 이상일 수가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주님의 생명의 빛이, 이런 교회들 때문에 모독을 받고 영광을 가리게 된다.
참 빛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가운데 모시고 섬기고 있다면,
선한 행실로 빛을 비쳐야 할 것이고, 빛의 열매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맺어야 할 것이다.
내 자신부터 가정부터 교회부터 직장에 이르기까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이다.
2.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빛이신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자기 백성은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말이 자기 백성이었지, 사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에 오셔도 영접하지 아니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기들 기준과 바라는 것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접하지 않았다.
세상 권력을 다 무릎꿇게 하고 자기네들에게만 축복과 영광을 쏟아부어주는 분을 기대했는데,
오신 예수님은 죄인과 세리의 친구요 갈릴리 어부들과 세리들을 제자로 삼았다.
지도자들을 책망하고, 높여주거나 섬겨주지 않았다.
진리는 말로만 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니,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씀을 하고,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기적들을 행해도,
자기들 이익과 아성을 무너뜨리는 원수로 여겨져서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극히 일부 –‘찾는 자가 적음이라’- 가 참 빛이신 그분을 영접하였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라고 했다.
그분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마음 가운데 영접하는 것이다.
입술로만 영접기도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 가운데 그분을 주로 영접하였다는 것은 그때부터 나를 지배하는 주인은 그분이라는 것이다.
갈2:20이 그 주님 되심을 잘 말씀해 주고 있다. 우리가 외우고 명심해야 할 말씀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는 나는 죽었고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항상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겨져야 하고
우리는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져야 한다.
그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고,
그것은 사망과 생명을 바꾸는 것이고 어둠과 빛을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길은 인간의 의지와 결단만으로 갈 수 없고 성령이 오셔야 하고 내주하셔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는 여러 종교 중의 하나의 종교가 아니다.
하나의 종교로 믿고 가지니, 아무런 변화가 없고 악세사리요 아편이요 소속일 뿐이다.
참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직 성경과 성령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운명공동체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여러 지체들의 연합의 몸이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은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12-13,27)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한 몸으로서의 삶을 말씀과 성령으로 살아가는 권세를 말한다.
현대교회에서는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초대교회는 이를 실현하였음을 사도행전이나 바울서신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초대교회의 가르침과 영적 전통을 이어받은 발도인들 바울인들 위그노들은
그러한 생명 공동체의 믿음과 삶을 살아갔다.
로마교회는 이들을 십자군을 동원해 죽이고 말살할려고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감옥에 가두고 폭행하고 고문하고 굶어죽이고 화형에 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굽히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저항하고
잘못된 로마교회를 비판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참 복음을 삶으로 보여주며 선교하였다.
그 끝에 13세기에 전 유럽에 참다운 종교개혁을 폭발적으로 이루었다.
그러나 우리 교회역사 책에는 이런 사실은 기록되지 않고 있고,
로마교회가 부르는 대로 이단으로 알고 있고, 16세기 문서 종교개혁만 알고 있다.
그 이전에 참 교회의 역사와 참 종교개혁이 있었음을 뜻있는 선교사들이
그들의 발로 교회사를 새로 쓰고 있다.
여러분에게 책 한권을 소개해 드리니 꼭 구입하여 읽어보시기 바린다.
권현익 선교사가 쓴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이다.
감동과 눈물에 젖으며 가슴 깊이 새겨지는 산 역사를 새롭게 보게 될 것이고,
믿음의 선진들의 그 믿음과 행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다는 것의 참다운 의미와 실체를 느끼게 될 것이다.
주님의 사도들이 세운 초대교회의 영 줄기는 계속 이어져 왔으며,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는 그 영 줄기와는 다른 영 줄기인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3.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3절)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사람들의 집합체가 바로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이기에 시대는 달라도 모양과 실체는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의 교회는 그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영 줄기가 다르구나’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미혹의 영’과 ‘진리의 영’의 구별이고 차이이다.
하나님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자들에게는 미혹의 역사를 보내어 거짓 것을 믿게 하신다.
그것이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다.(살후2장)
‘사람의 뜻으로’
목사나 신학교수나 중직자들의 권유나 강단초청으로 세례받고 구원 받은 줄 안다.
‘육정으로’
내 자신의 감정과 의지로 믿기로 결단하고 구원받은 줄 안다.
‘혈통으로’
유대인이라고, 모태신앙이라고, 몇 대째 믿는 집안이라고 등등 구원받은 줄 아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것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자가
부르심 받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된다.
나아가, 우리 주님으로부터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게 되면,
모든 관점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인 회심이 이루어지고 큰 확신과 능력있는 증인이 된다.
이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수시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다.
참 그리스도교는 말씀과 성령의 공동체이고,
초대교회의 가르침과 영적 전통을 이어받는 역사적 한 몸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생명의 참 빛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믿음의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고
불을 켜서 말 위에 두어 모든 사람들에게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주고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 하셨다.(사58장)
그러할 때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게 할 것이라 하셨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하셨다.
이런 믿음과 행함의 길을 가자.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25 성탄절설교,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마 1:18-23 (4) | 2022.12.25 |
---|---|
12/18 주일설교,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6 (0) | 2022.12.18 |
12/04 주일설교, '거짓 선생들', 벧후 2:1-3 (1) | 2022.12.04 |
11/27 주일설교, '위로부터 난 지혜', 약 3:13-18 (0) | 2022.11.27 |
11/20 주일설교, '마지막 추수', 고후 5:10 (2) | 2022.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