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7 주일예배
본문: 약 3: 13-18
제목: 위로부터 난 지혜
1. 땅 위의 지혜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3:13)
지혜와 총명의 기준이 세상과 세상 사람들의 것과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아는 것에 있지 않고 선을 행함에 있다.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이는 것이 참다운 지혜요 총명이다.
지혜는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할 것이 못 된다.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약3:14-16)
많이 배웠고 높이 올라간 사람들이 왜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을 양산하고 있는지 알만 하다.
그들에게서 지혜의 온유함은 찾을 길이 없다.
마음에 쌓은 악으로 악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6:44-45)
나무와 열매의 관계를 통해 주님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구분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다.
가시나무 같은 사람이 선한 무화과 열매를, 찔레 같은 사람이 선한 포도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이 입으로만 말하는 무화과 포도에 넘어가고 있다.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의 정체를, 본인의 정체를 알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화려한 외모와 거창한 외양만을 보고 떼지어 몰려가고 멸망으로 치닫고 있다.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들어 있는데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니 거기에 속아 넘어가고 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일만 스승들이 그들이다.
주님이 열매를 보고 알라 하시고, 거짓 선지자들을 주의하라고 하시는데도,
세상이 알아주는 학력 경력 잘생긴 외모의 아름다움, 다수의 크기와 건물과 예식의 거창한 외양에 끌려,
그들이 내놓는 결과와 열매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그편이 내편이라고만 하고 있다.
내가 속한 편은 다 옳고 다른 편에 속한 사람은 다 잘못 되었다.
겉만, 잔과 대접만을 깨끗하게 하고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바리새인들을 삼가라고 한다.
그들이 마음에 쌓아놓은 것이 무엇인지 알라고 하신다.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열매는 보지 않고 나무의 외양만 보니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7:20-23)
하나님만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악한 마음은 악한 행실로 직행한다.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한다.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전9:3)
모든 사람의 결국이 같다는 것이다. 어떻게 같으냐?
인생을 사는 동안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가는 것이,
그 마음으로 해 아래에서 행하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을 행하다가 가는 것이 같다는 것이다.
솔로몬은 자기 입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도 자기는 그대로 행치 않다가 멸망의 길로 갔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시81:12)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8:11)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 같이 되리라”(렘13:10)
(유브라데 바위 틈에 감춘 띠가 썩어서 쓸 수 없게 되었다.)
땅 위의 지혜, 사람의 지혜는 사람의 마음 속 정욕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원천과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에덴 동산의 뱀, 곧 사탄과 귀신의 것이다.
영의 줄기가 다른 것이다. 영의 줄기를 잘 찾아가야 한다.
사람의 지혜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신을 따라 섬기고 절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띠가 썩어서 쓸 수 없음 같이 썩어지는 인생으로 끝나고 만다.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악한 일이 없어질 수 없다.
세상이 날로 악해지는 주요 원인이다. 사람이 평안을 살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11:19-20)
그 몸에서 돌 같은 악한 마음을 제거하고 새 영을 주며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야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것이 예수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고, 성령과 불로 회심해야 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그러할 때 지혜의 온유함으로 선한 일들을 행할 수 있다.
그 마음에서 나오는 시기와 다툼에서, 혼란과 모든 악한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거짓이 없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약3:17)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령의 지혜요 하나님의 지혜이다.
영의 줄기가 다르고 원천이 다르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성경 말씀을 성령이 가르치는 지혜로 알지 못하고
사람의 지혜와 전통으로 알고 가르칠 때 하나님은 그 예배와 가르침을 헛것으로 아신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9)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고 그 말만을 듣는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초대교회 이래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가르쳤고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으로 가르쳤다.
그것은 묵은 누룩이요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이다.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5:8)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야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2:12-13)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지 않은 사람은 세상의 영을 받은 사람이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세상의 영 곧 세상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의 영을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은 육에 속하여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한다.
그것들이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것들을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해야 영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자들이 항상 많고 세력이 크기 때문에 항상 제도권 종교와 권력을 장악한다.
그래서 세상의 큰 세력 큰 유명교단 큰 유명신학교 큰 유명대학교 좋아하다가 큰일 당한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다.
성결하지 못한 지혜는 위로부터 난 지혜가 아니다.
성결 곧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의 으뜸이요 다른 속성은 다 이 거룩에서 나온다.
공의와 정의도 이 거룩, 곧 성결에서 나온 것이고 그 거룩의 표현이다.
그 다음의 속성이 사랑이요 선하심이다.
그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그 거룩하심 때문에 인간의 죄를 볼 수 없고 가까이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백성이 될 수 있다.
그 크신 사랑으로 성자 하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대속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하심으로 자녀를 삼으셨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기도를 가르치실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를 첫째에 두셨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4-16)
세상의 공의와 정의가 요란하면서 혼란만 낳는 것은 성결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가 성결하고 다음에 나오는 것들은 다 성결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성결에서 나오는 지혜의 첫째로 화평함을 들고 있다.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첫째 맺는 열매가 화평함이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개하면서 사람이 달라지면서 첫째 맺는 것이 화평함으로 관계를 회복한다.
인간과의 관계는 화평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화목으로 회복하는 것을 본다.
그러면서 관용함과 양순함이 따른다. 그 지혜도 그러하다.
그 다음으로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 그 사람과 지혜가 같이 한다.
그런 가운데 편견과 거짓이 없어져 간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성령의 지혜의 특징과 순서를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이러한 특징과 순서가 바르지 못하면 그 지혜는 아무리 요란 떨어도
그것은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다.
3.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18절).
의의 열매를 거두는 방법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사회 정의를 바로 잡는다고 하면서 권력과 횡포를 서슴치 않는 자들은
그것이 또 하나의 큰 악이요 악순환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둔다.
목적이 옳다고 폭력으로 강제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결국 의의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
가정이든 조직이든 사회든 지혜의 온유함으로 선한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한다.
참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선한 행실로 시기와 다툼, 혼란과 모든 악함을
해결해 가는 주체가 되어가야 한다.
그것만이 이 땅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방법이다.
성결에서 나오는 화평함으로 심어서 의의 열매가 맺어지도록 참 교회와 교인은 힘써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도 밥 굶으며 성회를 하며 싸우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끊어주며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다.
이 선한 행실이야말로 화평으로 심는 것이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야말로 화평으로 심는 것이다.
주릴 때에 목마를 때에 나그네 되었을 때에 헐벗었을 때에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고 공급해 주는 것이야 말로 성결에서 나오는 화평으로 관용으로 심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나타낼 때 그것이 바로 화평으로 심는 것이다.
그 화평으로 심음이 의의 열매를 거두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가르치신 지혜와 말씀을 실천하고 순종함으로 초대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다.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위로부터 난 지혜로 성결하고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자.
땅 위의 지혜, 정욕의 지혜, 귀신의 지혜를 해로 배설물로 여기고 버리자.
사람만 끌어들여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을 전도요 부흥이라 하는 거짓에 그만 속으라.
위로부터 난 지혜가 없으니, 1차 대각성과 2차 대각성을 분별할 줄 모르고 같은 연속으로 보고,
13세기 종교개혁이 있는 줄도 모르고, 16세기 종교개혁만을 알고 있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
참 교회의 가르침의 전통과 믿음의 행함을 되찾고 회복하고 살려나가는 우리가 되자.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하세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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