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3 주일설교 (묵도; 이사야 66장)
본문: 딤후 4:6-8
제목: 의의 면류관
1. 어떤 사람이 의의 면류관을 받는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8)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세상을 떠날 시각이 가까울 때 디모데에게 하는 말씀이다.
유언과 같은 말씀이고 초점은 의의 면류관에 맞추어져 있다.
의의 면류관은 일생 동안 믿음으로 산 것에 대한 상으로 주어진다.
주시는 분은 주 곧 의로운 재판장이시다.
‘주의 나타나심’ 곧 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주신다고 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모하는 자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사도 바울은 상 곧 면류관을 받는 사람은 경기장에서 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4-25)
믿음은 달려갈 길이고 달리는 경주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운동장에서 하는 달음질에서 1등 상은 한 사람만 받는다.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한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지요.
태능 선수촌에 들어가는 것도, 음식과 쾌락과 다른 활동들을 절제하는 것도,
다 올림픽과 같은 경주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이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시켜야 한다.
달음질할 때도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해야 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렵게 받은 명예로운 금메달도 결국은 얼마 안가 썩을 승리자의 관이지요.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고 본인도 썩고 마는 명예를 실감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 받는 관은 썩지 아니하고 영원한 관이다.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이기 때문이다.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둘려 24 장로들의 보좌들이 있는데,
그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고 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인가?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1-12)
팔복의 사람들이 하늘에서 큰 상을 받는다는 결론의 말씀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 애통하는 자들,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다.
긍휼이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이다.
곧 팔복의 사람들이 하늘에서 상이 큰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 이미 상을 받은 자들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
구제할 때에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부는 자들이다.
기도할 때에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는 자들이다.
금식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는 자들이다.
외식하는 자들은 사람들에게서 이미 상을 받았다. 하늘에서는 상이 없다.
2. 전제와 같이 다 부어져야 한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다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딤후4:6)
‘전제’는 지난 번역 성경에서는 ‘관제’로 번역되었다.
“drink offering”, 포도주와 같이 본 제사와 함께 부어드리는 제사를 일컫는다.
번제 소제와 같이 드려진 제사이다.
‘전제’는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붓는 의식을 취했다.
희생물처럼, 소제의 제물처럼, 정해진 양의 포도주를 다 부어드림이 전제로 부어짐이다.
바울은 이 전제를 자신의 순교의 죽음과 관련시켜 말하고 있다.
공동번역은, ‘나는 이미 피를 부어서 희생 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다’고 했다.
표준새번역은,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다’고 했다.
빌립보서에서는 성도들의 믿음의 제물에 덧붙여 그 자신의 피를 전제로서 붓는데도
마다하지 않을 것을 말하고 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2:17)
바울은 순교하였지만, 그의 회심 후, 전 생애가 전제로 부어지는 생애였다.
이제 순교로 전제의 포도주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부어질 때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세상을 떠날 시각인 것이다.
바울을 위시한 사도들의 순교와, 그 전통을 이어 받은 발도인들 위그노들의 순교도,
바로 우리 주님의 전제를 본받은 것이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어 전제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셨다.
“이것은 죄 사함을 받게 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7-28)
전제물을 붓는 것은 창세기에 처음 나온다.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창35:14-15)
오순절 성령의 임하심도 하나님의 영을 전제물처럼 부어주심이었다.
사도 베드로가 요엘의 예언을 인용하여 증거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행2:17-18)
우리에게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신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12:1)
그럴려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하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순종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할 것이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할 것이다.
3.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믿음의 선한 싸움이다. 악하고 폭행을 일삼는 악한 싸움이 아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 죽음도 선한 싸움이기에 순종하신 것이다.
초대교회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희생제물이 되면서도 순종한 것은 선한 싸움이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교회와 세상을 개혁하는 것이지,
권력과 재물과 폭력으로 세상을 얻는 것이 아니다.
나의 영광이 아닌,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기에 선한 싸움이다.
우리 싸움의 대상은 육체와 세상과 마귀이다.
육체는 죄를 따르고, 그 육체는 세상에 속해 있고, 그 배후에 마귀가 역사하고 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사는 것, 그것은 그 배후에 있는 마귀를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2-5)
육체의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
육체의 욕심을 잡지 않고 축복과 성공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이 패망과 죽음의 길인 것을
언제나 알게 되느냐? 죽을 때이고, 죽어서 심판을 받을 때일 것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 하였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원수들을 향해 싸우라 하지 않고,
그 배후에 있는 마귀와 싸우라고 하신다.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에게 마귀는 손을 쓸 수가 없다.
복종하지 않을 때, 떡으로만 살 때, 마귀의 밥이 되는 것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5:8-9)
고난의 배후에 마귀가 있다고 하심에 주목해야 한다.
근신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마귀 대적이 우는 사자 같이 삼켜 버린다는 것이다.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원수가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마귀를 대적하며 살아야 한다.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4:1,6)
참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심판으로,
미혹의 역사 마귀의 역사를 보내어, 거짓 것을 믿게 하신다고 말씀한다.(살후2장)
성경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며 지켜 행하는 것이 진리의 영에 속하는 것이다.
의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세상과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세상과 벗하는 것이 간음한 여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니라”(약4:2)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것들은 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속하여 세상의 속한 자들의 말들을 좋아하여 많은 사람들이 멸망으로 달려간다.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을 알고 진리의 영에 속한 사람들은
오직 사도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찾는 이도 적은, 생명의 길을 목숨 걸고 간다.
의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육체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2-13)
우리 몸과 육체가 불의의 무기가 될 것인가, 의의 무기가 될 것인가,
죄에게 내줄 것인가, 하나님께 드릴 것인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죽었다가 방금 살아 난 사람 같이 우리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라 하신다.
육체로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8-19)
땅의 일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자기의 탐심과 야망의 배를 채우는 것이 그들의 하나님이고,
영광을 얻어도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고, 그 마침은 멸망으로 끝이 난다.
그들은 육체를 따라 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함으로
그날에 임할 진노를 그들을 쌓고 있다.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2:4-5)
의의 면류관을 받을려면, 믿음을 지켜야 한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이다.
믿음을 지킬려면, 무엇보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낸다.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된다.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사람들의 특징은 믿음과 오래 참음이다.
믿음을 지킬려면 항상 말씀 안에 풍성하게 거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지켜 행해야 한다.
말씀으로 사는 믿음의 행함이, 나와 가정과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키고,
공의가 앞서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뒤에서 호위하게 하신다.
나의 남은 생애가 전제와 같이 다 부어지고 의의 면류관을 받는 생애가 되게 하자.
기도.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전제와 같이 다 부어지는 바울의 생애를 본받게 하옵소서.
육체와 세상과 마귀를 대하여 선한 싸움을 하게 하옵소서.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으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는 자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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