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4/16 주일설교, '충성되이 여겨', 딤전 1:12-13

강대식 2023. 4. 16. 12:35

2023-04-16 주일설교 (묵도: 8:1-4,7,11-14, 10:1-2,12-15)

본문: 딤전 1:12-13

제목: 충성되이 여겨

 

1.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딤전1:12)

 

믿음은 진리를 믿고 사랑으로 역사하며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믿음부터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

 

우리의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우리의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행함은 믿음의 산물이요 믿음으로 역사하는 결과이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헛것이다.

 

행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받은 믿음의 열매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다.

바리새인처럼 종교적인 열심과 행함을 자랑하고 그렇게 못하는 남을 정죄하는 것은

그 믿음이 자기에게서 난 것이고, 자기 마음과 의지의 산물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서도 바리새인은 자기의 종교적인 열심과 공로를 자랑하며,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한다.

그러나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한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바리새인이 아니고 세리였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진다.

 

믿음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하나님에게서 나야 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참 기독교는 성령의 종교요 성경의 종교인 것이다.

 

성령 없는 성경, 성경 없는 성령 다 잘못된 것이다.

기독교는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경으로 마친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능력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소유 재능 재물 권력 명예를 자랑하고 자부심을 갖는 자는 거듭나지 못한 자이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자가 아님을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다.

 

그러니 못 배웠다고 재물이 없다고 자랑할 경력 소위 빽이 없다고 낙심할 것이 못 된다.

우리를 능하게 하실 분이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바울을 능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능하게 하실 분도 오직 하나님이시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하나님을 믿는다면, 뭐가 없다고 건강 재물 권력 학력도 없다고 절대 한탄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신다.(18:8)

그리스도인은 자기 육체적 능력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떠한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4-5)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이론은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은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헤브론에 올라가 해야 할 사명이다.

 

심히 큰 능력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있음을 굳게 믿어야 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7-11)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하는 바울의 믿음과 고백을 우리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면, 나는 한없이 약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빠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후12:9-10)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오늘은 어떤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워야 한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1-13)

 

하나님은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고자 할 때

필요한 능력 곧 건강 재정 함께할 사람들을 계속해서 붙여 주실 것이다.

우리는 홀로 있지 아니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항상 함께 있다.

 

2.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심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12)

 

그리스도의 일꾼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심은 우리를 충성되이 여기시기 때문이다.

 

충성되이 여겨믿을만한 존재로 여기다의 뜻이라고 한다.

믿음과 충성은 단어는 달라도 뜻은 같다.

충성은 하나님의 친밀함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은 충성된 마음이다. 충성된 믿음이다. 충성된 헌신이다.

내가 네게 맡긴 일을 충성되이 해내는 것이다.

충성 하나 보셨기에 제자를 삼으셨고 사도로 부름 받고 일꾼으로 쓰임 받았다.

 

주님이 택하시고 부르실 때 갈릴리 어부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4:20)-시몬과 안드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4:22)-야고보와 요한

 

우리는 주님과 그 뜻을 따르기 위해 곧 무엇을 버린 게 있나요?

있는 것에다 덕지덕지 무언가를 더 얻고 더 붙일려고만 하지 않았나요?

버린 것이 없으면 얻을 수 없고, 버린 자리가 없으면 받을 자리도 없는 것이 이치이다.

 

줄줄 아는 자에게 하나님은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

함께 고난을 받은 자에게 하나님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안겨 주신다.

 

공을 세웠더라도 거기에 연연하고 머물지 않아야 한다.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푯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2-14)

 

내게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3:7-9)

 

내게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릴 줄 모르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을 수 없고 그 분 안에서 연합되고 발견될 수 없다.

나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성령을 따라 행하고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아야 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인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잘 먹고 잘 사는 데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인 것을 알고 누려야 한다.

 

육신의 생각 따라 살면, 나를 충성되이 여겨 맡기신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

나의 유익에 붙들려 있는 한 충성됨은 찾을 길이 없겠지요.

인생을, 눈에 보이는 것만을 향해 살다가 그럭저럭 고만한 것으로 만족하고 끝을 맺으려는가?

이 땅에서도 영원 세상에서도 별 볼 없는 사람의 운명으로 마칠려고 말 것인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나라의 본 자손들이 되고 말 것인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는 무리에 속하고 말 것인가?

마지막 심판 날, 왼편의 염소의 무리에 속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갈 것인가?

오른편 양의 무리에 속하여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는 복 받을 자들이 될 것인가?

 

이 모든 결말이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어떤 선택 어떤 충성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다가 마칠 것인가 아니면 맡긴 일에 충성을 다하여 별을 딸 것인가?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4:11)

 

3. 전에는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였음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13)

 

바울이 부름을 받기 전까지는 바리새인의 율법에 그 열심과 충성을 다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고 박해하고 폭행하는 자였다.

그 열성과 충성심을 다른 곳에 옮겨 놓으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이셨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게 마련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게 마련이다.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면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하셨다.

 

사도 바울만 전에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인 것 아니다.

예수를 바로 믿기 전에는 다 이와 같은 범죄자들이기 마련이다.

시대를 장악하고 부와 권세를 누린 유대교회 로마교회도 같은 짓들을 하였다.

 

이제 우리가 모르는 것은 16세기 종교개혁부터 5백년 개신교 역사, 현대교회 역사가

하나님을 위한다고 성경을 위한다고 하면서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라는 사실이다.

16세기 종교개혁 이전에 참 교회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다.

 

우리의 교회사는 어거스틴이 초대교회 역사를 집대성했다는 것과

로마교회가 천년 동안 암흑시대 만든 것을 16세기에 루터와 칼빈이 종교개혁을 이루고

개혁교회 청교도교회는 이를 충성되이 따르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그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르네상스가 이루어졌다고 믿어 왔다.

 

아니다. 초대교회가 가르친 영적 전통은

발도인들 바울인들 알비인들 카타르인들 위그노들을 통해서 이어져 왔고,

로마교회가 이들을 이단으로 몰아 고문과 살인과 화형으로 멸절시키려 했지만

피에몽 계곡에 피신하면서도 꾸준히 참 복음을 전파하며 삶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13세기에 폭발적인 종교개혁을 이루었고 그 열매로 르네상스를 유발하고 전 유럽을 변화시켰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이 전통을 따르거나 연계되지도 아니하였고,

변형된 율법주의 곧 지성주의로 그 개혁의 열매를 따먹고 그 영광을 도둑질한 것에 불과하였다.

줄기차게 이어온 초대교회의 영 줄기와 뿌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이어온 사탄의 영 줄기와 뿌리의 연속이었고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개혁일 뿐이었다. 면죄부 팔듯이 교리 책들만 팔아 득세하였다.

지금 그 교회들이 유대교회 로마교회처럼 행세하고 득세하고 누림이 공통현상이다.

 

잘못된 교회를 목숨걸고 개혁한 것은 13세기의 종교개혁이지 16세기의 종교개혁인 아닌 것이다.

신학을 포함하여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요 헤브론의 사명인 것이다.

 

성경 말씀에 더하거나 제하거나 한 신학들, 그 견고한 진들은 다 무너뜨려야 한다.

오직 성경 본문을 떠나서는, 성경 본문 없이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신학만이,

사람의 지혜로 혼잡하지 않은 신학만이, 바른 신학, 정통 신학, 초대교회 신학이고 설교이다.

 

하나님이 충성되이 여겨 긍휼을 베푸셔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직분을 맡기시는 자들이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남겨 놓은 거룩한 씨들이 있다.

바알에게 무릅 꿇지 않고 입 맞추지 않은 7천명이 있다.

상수리 나무를 베어도 그루터기로 남아 있는 거룩한 씨들이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바울처럼 사도들처럼 제자들처럼 능하게 하실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모든 소유를 버리는 주의 제자들이 능히 되게 하실 것이다.

깨닫기 전에는, 유익하던 것을 해로 배설물로 버릴 줄 알기 전에는,

우리는 여전히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일 뿐이다.

나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시고 능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자.

 

기도.

하나님이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시고 능하게 하시는 사명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헤브론 사명을 능히 감당하는 택한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전에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내가, 주의 긍휼을 입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만 복종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