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4 주일설교
본문: 롬 1:16-17
제목: 복음,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
1.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노니”(롬1:16)
복음은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다. 영어로는 GOOD NEWS.
무엇이 그렇게 복되고 기쁜 소식인가?
롬 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 ‘그의 아들의 복음’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요
그 내용은 그의 아들의 복음이다.
2장에서 바울은 나의 복음이라고도 하는데,
하나님이 주신 그의 아들의 복음이 바로 내가 전하는 나의 복음인 것이다.
우리의 복음도 하나님이 주신 그의 아들의 복음이어야 한다.
그 복음이 사도 바울처럼 나의 복음이 되어야 한다.
인간들은 항상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주신 복음이 아니라
인간들이 자기 지혜로 세상에서 배운 학문으로 인간들이 주는 복음으로 교회를 지배했다.
구약시대 유대교회의 율법주의, 로마교회의 이교주의, 개혁교회의 교리주의,
현대교회의 자유주의 신정통주의는 하나님이 주신 복음이 아니라
인간의 복음이었다. 그것이 문제였고, 분별력이 없는 교인들은 그들과 한 통속이 되었다.
성공하고 제도권을 지배한 각 시대의 교회들은 하나님의 복음이 아니라
인간의 복음인 것이 문제이고, 지옥문을 천국문으로 둔갑시켰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 넓은 길,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이었다.
참 교회가 아닌 이런 교회들은 ‘그의 아들의 복음’이 아니고
‘그의 아들을 빙자한 복음’이었다.
그의 아들의 이름을 팔면서도 내용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채웠다.
세상에 속하여 세상에 속한 말을 하니까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이었다.(요일4:5)
전도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었지,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하나님의 복음, 그 아들의 복음을, 참으로 제대로 믿었으면,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 속하여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였다.
그의 아들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참 성도들은 이렇게 살지 않았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이었다.
그분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
바로 우리가 믿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였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고,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참 성도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에,
참 성도들은 속의 성품이 변화되고, 겉의 삶은 그리스도를 믿어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
세상과 구별되었고,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었고,
썩어가는 세상을 정화하고 맑게 하는 소금이었다.
참 교회는 주님이 자기 피로 세웠기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핍박과 박해 가운데서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는 믿음과 그 사랑의 역사를 실천하고 보여주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그리고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그 전통과 가르침 위에 세워지지 않은 교회는 참 교회, 참 성도가 될 수 없다.
역사적 전통성을 상실한 교회와 그 가르침은,
아무리 화려하고 세밀하고 정교한 체계와 신학을 갖추었을지라도,
그것은 먹으로 돌판에 쓴 율법 조문, 교리 조문일 뿐이다.
새 언약의 일꾼들은 하나님의 법을 영으로 마음판에 썼고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여 성품과 삶으로 행하게 하였다.
그것이 참 교회를 세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참 진리의 실천이 되었다.
성경도는 성경의 성도요, 성경과 그의 아들의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3대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5백년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전복의 사명,
초대교회와 발도인의 믿음과 삶을 회복하는 회복의 사명,
13세기의 폭발적인 교회 부흥과 14-15세기의 르네상스를 동시에 세우는 부흥의 사명이다.
2.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1:16)
교회가 많이 세워지고 교인들이 넘쳐날지라도
전하는 복음이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탄의 미혹이요 거짓 선지자 목사들의 거짓 복음일 뿐이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이요 사도개인들의 누룩일 뿐이다.
바리새인들은 율법 조문, 교리 조문들의 정통주의로,
사두개인들은 자유주의, 신정통주의로 포장을 하고 각색을 하고 있다.
진리의 영으로 영적인 분별력을 갖지 못하면, 미혹의 영에 사로잡히게 되고,
양의 옷을 입은 노략질하는 이리들, 거짓 선지자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 복음에 그만 속아야 한다.
사도들, 그 후예들인 새 언약의 일꾼들은 참된 복음을 영으로 전하고 살았고,
이 복음을 믿는 자들은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고,
새 피조물이 되어 변화된 성품과 삶을 살았다.
오늘날 개혁교회들은 교리는 있는데, 구원하는 능력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성품과 삶을 사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
현대교회들은 교리를 반대하며 삶을 강조하는 데, 역시 변화된 성품과 삶을 찾을 수 없다.
이 세대를 그대로 본받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없기에 천국에는 결코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들이 복음주의자들이라고 한다.
노략질하는 이리들이 양의 옷을 입고 선지자와 제사장이 되어 다스리고,
그에 순종하는 양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는데, 무섭고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는 줄을 모른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만 하는 것이다.
머리 돌판에 쓴 먹물 지식, 거짓 복음은 아무 능력도 없고
그저 소속감으로 구원을 보장하고 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입술복음만 선포하고 있다.
주님 오심으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죄사함의 길, 하나님 나라의 길을 열어 주셨지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지, 회개 없는 믿음은 아무 구원의 효력이 없다.
교리만을 강조하는 믿음, 삶만을 강조하는 믿음, 정통과 신정통, 다,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과는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아들의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이 아니면 구원이 없다.
입으만 하나님을 믿고 입술로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마음은 하나님과 먼 복음과 믿음은
멸망의 지옥으로 가는 거짓 그리스도의 복음인 것을 더 늦기 전에 알아 차려야 한다.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전파하고 받게 하는 데,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하고 사도 바울이 초대교회 시절인 데도 탄식하였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이고,
악한 생각으로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린다”.(딤후6:3-5)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는 그의 아들의 복음은 차별이 없다.
유대인과 헬라인의 차별이 없고, 성별의 차별, 좌우의 차별이 없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참 복음을 믿는 성경도가 되기 바란다.
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7)
복음은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로 받은 믿음, 하나님에게서 난 믿음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 믿음에는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뜻이 변화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믿음은 자동온도조절기처럼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에 적용시켜야 한다.
내게 주신 믿음의 시련을 주 하나님을 믿음으로 믿음을 적용하며 극복하며 이기는 것이다.
긴 고난과 극심한 박해로 인한 낙심과 불안을 하나님께 소망을 둠으로 넉넉히 이기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믿음은 자기의 더러운 속 마음이 나타날 뿐이다.
광풍과 물결에 놀라 죽겠다고 하는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셨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셨다.
믿음을 험한 환경에 적용하여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지 못하는 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을 적용하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직 순풍으로, 돈으로, 권력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노아 아브라함 요셉 다윗 모세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길고 험난한 믿음의 시련이 있었지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았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고,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렀고
마침내 축복과 영광에 이르게 되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벧전5:10-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사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다.
잠깐의 고난으로 우리를 친히 온전하게 굳건하게 강하게 터를 견고하게 하신다.
이 복음으로 우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며,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시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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