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5 주일설교
본문: 눅 5:11
제목: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랐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5:10-11)
마태복음, 마가복음에서는,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랐다고 했다.
요한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가 먼저이고, 형제 시몬으로 연결하고,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인 빌립으로, 빌립은 나다나엘로 제자되는 순서가 기록되어 있다.
레위 마태도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갈릴리 한 동네 사람들 중에서 처음 제자들을 삼으셨다.
주님은 갈릴리 같은 한가족교회, 청교도아카데미에서 모인 한 동네 사람들을 부르시고 계신다.
고난의 시절에 함께 모이고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연줄 연줄로 이어지고 한 때 어울리다 헤어졌지만, 하나님은 다시 불러 모으시고,
사명을 맡기시고, 축복으로 성취하게 하신다.
최근에는 과거 인연들 중 120명 정도를 선별하여 교수 명단으로 확정하여 주셨다.
그 전 어느날은 청교도 아카데미 회원들 중 50명 정도를 선별하여 교수 명단으로 주셨다.
주님은 3백만 성경도 후보생들을 15년 동안에 주셔서 성경도 아카데미에서 양육하게 하실 것이다.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르지 않고서는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제자가 되지 않고서는 구원도 없다.
제자 수준 따로 있고, 평신도 수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세례 받고 교회 다니면, 직분 받으면,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부족할지라도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를 사람을 제자로 삼으신다.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고 택하시고 부르신다.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사랑할 사람,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할 사람을, 주님은 택하시고 부르신다.
그리고 고난과 연단으로 만들어 쓰신다.
부르시기 전에도 모태에서부터 모든 과정을 주관하시며 인도하신다.
나의 모든 과거 인생 역사에서 주님은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만드셨다.
때가 되어 부르실 때는,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7)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33)
부모 형제 가족까지, 내 목숨까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라야 제자가 될 수 있다.
내 목숨, 내 가족, 내 모든 소유, 다 버려야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이를, 말씀 그대로 실천한 사람들이 초대교회 사람들이었고, 발도인들, 위그노들이었다.
오늘날 교회는 유대교회 이스라엘을 그대로 닮아서 그들과 전혀 다른 것이다.
로마교회, 그리고 이를 개혁했다는 개혁교회, 자유주의 신정통주의로 세운 현대교회,
이 넷은 다 그대로 쌍둥이들이다.(이름과 시대만 다를 뿐 실체는 동일하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이요 율법조문들이요, 교리조문들, 지성주의 철학조문들이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엮어낸 것들이다.
다 먹으로 돌판에 쓴 것들이지, 영으로 마음판에 쓴 것들이 아니다.
그러니 입으로만 입술로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초대교회 발도인들의 신앙과 삶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없고,
뜻에 대한 교리와 신조의 율법조문들 지성조문들만 있는 것이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다.
왜? 영으로 마음판에 쓴 그리스도의 편지들이 되지 못하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고전6:11)
2. 바울은 유익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
사도 바울이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면, 그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유사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대교회에 우굴거리듯이,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도
많은 사람들이 우굴거리지만,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된 모습들은 찾을 길이 없다.
무엇이든지 내가 유익하던 것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고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을 얻을 수 있고 그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고전9:17) 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딤후4:6) 했다.
자기에게 유익한 것은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고 한다.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겔33:31)
먹으로 머리 돌판에 쓴 것들은 마음에 가득찬 이익을 이길 수 없다.
경건조차 이익의 방도로 생각한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너희 바리새인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눅11:39)
바리새인은 경건의 모양만 갖추고, 마음 속은 탐욕과 방탕, 외식 불법으로 가득하였다.
그래서 너희 의가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있으면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
어떠한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워야 한다.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게 하신다.
3.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5-26)
모세가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된 모습이다.
‘땅의 계산법’이 아니라, ‘하늘의 계산법’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재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는 ‘하늘의 계산법’,
상 주심을 바라보는 ‘하늘의 계산법’으로 모세는 살았다.
주님 또한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욕하고 박해하고 악할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마5:11-12)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와 고난들이 하늘에서 큰 상을 받게 한다.
그 어떤 고난도 수모도 궁핍도 위험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한다.
그러나 롯의 처를 기억해야 한다.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에 빠져서,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고 심판은 안중에 없다.
곧 닥칠 일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영원히 당할 일인데도 말이다.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바로 믿음의 비밀이다. 능히 제자가 되는 비결이다.
이 믿음의 비밀이 있었기에, 초대교회 성도들, 발도인들, 위그노들이 있은 것이다.
발도인 역사를 통해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발도인 역사를 지워 버렸기에, 이단으로 몰고 없애 버렸기에,
로마교회가, 개혁교회가, 현대교회가, 왕 노릇하고, 제자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발도인 역사를 살리지 않고서는 초대교회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루터와 칼빈에 그만 속고, 복음주의 사탕발림에 그만 속아야 한다.
그들의 5백년 견고한 진이, 대안으로 나선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견고한 진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뜨려야 할 견고한 진인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이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한다.
먹물들의 교회를 무너뜨려야, 먹물들의 세상도 무너뜨리고, 참다운 개혁을 할 수 있다.
13세기에 참다운 종교개혁이 유럽 전체에 폭발적으로 일어났기에,
14-15세기에 르네상스가 일어날 수 있었고, 세상이 변화될 수 있었다.
이제는 발도인들이 오랫동안 심었기에, 동시에 개혁과 르네상스를, 열매로 거두어야만 한다.
말씀을 영으로 가르치는 말씀학교(Word Hall)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르네상스를 가르치는 사회학교(Social Hall)가
한 커리큘럼이 되어,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가르치고 삶으로 사는 작업이
‘성경도 아카데미’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성경도들을 길러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신앙과 삶, 발도인들의 신앙과 삶을, 변화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먹물들의 잔치 외에 더할 것이 없을 것이다.
말씀을 영으로 마음판에 쓰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 부어주시는 성령으로, 말씀으로, 나부터 거듭나고,
회심하고,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힌다. 새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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