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함께 하시는 주의 식탁에 참여할 때에 주님과 자신과 타인을 더 배운다/ 엘리노어

강대식 2024. 3. 13. 08:45

함께 하시는 주의 식탁에 참여할 때에 주님과 자신과 타인을 더 배운다/ 엘리노어 크라이더

 

예수 제자들의 식사 기억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부활 이후의 식사 때 일어난 예수의 갑작스런 왕래이다. 제자들이 느낀 감정이 불신, 놀라움, 진실한 기쁨 중 어느 것이었든 간에, 그들은 예수가 그 자리에 계셨다고 계속해서 증언했다. 아주 이른 시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행하여 나를 기억하기 위해 모일 때에 기억 이상의 것인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정말로 그들과 함께 있다고 확신했다.

 

성찬에 그리스도가 임재하신다는 생각은 우리 중 다수에게는 너무나 자주 교리적 문제이거나 논쟁적인 선택사항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성적 설명이 있기 전까지는 성찬식을 기대하거나 누리기를 주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초대교회 형제 자매들을 따른다면, 식탁에서 예수를 만남으로써 오는 담대한 기쁨과 정결케 하심을 체험할 것이다. “이를 행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명령이기 보다는 그와 나누는 우정으로의 초대이고, 그 식탁에서 이루어지는, 연약한 공동체로의 초대이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의 식탁에 거듭 참여할 때에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더 알게 되고, 그분을 더 많이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진정으로 기쁜 타자와의 연대를 배운다.

 

이를 행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이야기를 더 읽어 나가면, 최후의 만찬에서 부활 이후의 식사를 지나 초대교회의 공동식사에서도 이를 행하라는 다음과 같은 초대의 말씀이 수반됨을 알 수 있다. “나의 제자들이여, 함께 먹기를 계속 즐기세요. 계속 하나님을 찬미하고 음식을 나누세요. 특별히 당신들의 스승인 나를 기억하세요. 내 삶, 가르침, 긍휼, 투쟁, 하나님의 뜻에 대한 신실함을, 또 여러분을 향한 사랑을 기억하세요.” 이 메시지를 통해 제자들은 영원히, 세상 끝 날까지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기억해 냈다. 그는 식탁에서 그들과 함께 계셨고, 그들이 나가서 주의 제자삼은 사명을 감당할 때에도 함께 계셨다.(28:19)

 

그들이 자신들의 공동식사를 아가페라고 불렀던 사실은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초청에 헌신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공동식사는 사랑의 현실적 표현이 되었다. 이 식사를 통해 그 날에 필요한 물건들을 분배했다. “오늘은 이 집에서, 내일은 다른 집에서나누는 식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매일의 상호 부조를 통해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영적·물적 측면의 강한 결속을 느꼈다. 음식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아카페 식사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했다는 것이다.12;15:12;6:11;2:46

 

바울은 말하기를, 만약 당신의 공동체가 몸을 생각하지않고 합당치 않은 자세로 주의 만찬을 행한다면, 마땅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이 당신들을 심판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불의로 인해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죽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고전11;30

 

2세기 초 로마에서 활동한 그리스도인 예언자 헤르마스 또한 정의를 행하는 것과 그리스도인 공동체 구성원들의 건강 사이에 관계가 있음을 알았다. 나눔을 거부하는 것은 부자와 가난한 자 양측에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의 모임을 훌륭하게 만드는 하나의 표지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한 분 예수가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관대한 나눔은 하나님의 자비와 친절을 보여준다. 주의 식탁에서 떡과 포도주를 나눌 때에, 그들은 그가 진실로 임재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신 하나님, 결코 거절하지 않으시며 오직 초대하는 분이신 그분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찬미되어야 한다. 신자들의 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관계를 바로잡고 영적·물적 소유를 나누게 한다.

 

고전 10:16-17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해 이런 찬사를 보낸다. “여러분이 축복하는 그 잔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나누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떼는 그 떡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로 여러분이 축하하는 주의 만찬입니다!”

 

강한 경고의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긍정적 가치들을 도출해낼 수 있다. 교회 안에서 경제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 영적 물적 부분에서 관대하게 행하는 것- 이것들이 우리의 성찬예배에서 예수의 기억들을 영광스럽게 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또한 우리를 정의와 해방의 축제인 고대 히브리 유월절의 기억에로 이끈다.

 

엘리노어 크라이더, 성품을 빚는 성찬, PP 2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