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2025-04-20 부활절
본문: 요 11:25-26
제목: 그리스도의 부활
1. 부활은 십자가에서의 구원의 완성을 선포하고 인치고 확증하신 역사였다
“나는 부활이요”(요11“25)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으니 부활이 있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부활이 되셨으니, 우리를 부활하게 하실 수 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너무 많은 특권과 영광을 주시는 역사적 사건이다.
주님 부르시는 날까지 그 특권과 축복을 누리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이 동정녀 탄생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란 이름으로 오신 것이다.(마1:21)
이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구원하셨다.
이 구원의 역사는 창 3:15부터 시작하는 모든 예언(복음)의 실행이요 성취였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다고 하였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영혼이 떠나가셨다.(요19:30)
다윗은 시편 16편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정확히 예언하고 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확실히 예언하신 분은 예수님 자신이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막10:32-34)
주님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구원 역사를 인치고 확증하고 선포하신 역사였다.
오순절 성령의 부으심 가운데 사도 베드로가 첫 설교에서 증언하였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다.”(행2:22-24,32)
주님의 부활을 기념할 때마다 그분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원 사역을
먼저 생각하고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만 한다.
이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단지 부활의 의미만을 논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을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지냈지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다.
우리도 부활할 때 그와 같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15:42-44)
2. 부활은 새 생명, 영생을 살기 위함이다.
“내가 생명이니”(요11:25)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생명이 되셨고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 생명을, 성령을 통해 받음으로, 새 생명을 사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새로운 창조와 부활을 말한다.)
죽음과 부활과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로 살기 위해, 새 것으로 살기 위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생명으로 연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6:4-5)
우리가 구원 받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기 때문에
그분의 십자가 죽으심도 함께요, 그분의 부활도 함께 참여하는 바가 된다.
그의 죽으심도, 그의 부활하심도,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는 것이다.
주님과 죽음도 함께, 부활도 함께, 연합한 것은,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요, 새 생명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에서와, 영원한 세상에서의, 우리의 부활된 삶을 위한 것이다.
부활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새겨야 할 말씀은 갈 2:20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
죽지 않은 나의 옛 사람으로, 욕심 따라, 많이 소유하고, 높이 쌓아올리려 하지만,
그것은 헛수고와 저주를 낳을 뿐이다. 사망과 멸망을 낳을 뿐이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갈6:14-15)
주님은 친히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어서, 우리 십자가는 광야 생활이요 고난의 연단이다.
모세의 광야 40년은 세상도 그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 세월이었다.
요셉도 13년간의 억울한 노예 살이 감옥살이도 세상과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세월이었다.
다윗도 십수년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그 자신과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세월이었다.
내가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나도 세상도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살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오직 새 사람을 지으심 받는 것이 중요하다.
고난과 연단, 광야의 생활 없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구하는 것,
그것은 죽지 않고 부활을 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만 좋아하고, 광야와 고난은 싫어 하다가, 광야에서 멸망을 닿했다.
그걸 보면서도 현대인들과 교인들은 하나 같이 이 과정 없이 축복과 영광만 얻을려고 한다.
홍해를 건넜어도 요단을 건넜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홍해를 건넌 출애굽 1세대는, 그 다수가, 광야에서, 멸망하였고,
요단을 건너간 2세대는, 가나안 땅에서, 멸망을 당하였다.
광야 생활을 통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아니하면, 세상도 천국도 얻을 수가 없다.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 받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힘 없이, 새로 지으심 받을 수 없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통과하지 않고, 새로 지으심 받을 수 없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실 수 없다.
나도, 세상도, 십자가에 못 박혀야, 부활을 살고, 영광도 얻을 수 있다.
믿음과 오래참음 없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를 수 없고, 약속을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축복도 영광도 있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나를,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게 하시고,
세상도, 나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게 한다.
내가 죽지 않고, 부활할 수 없고, 고난의 십자가 없이, 부활의 영광 없다.
내가 죽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서는, 하늘과 땅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죽고 변화된 자만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교회도, 세상도, 개혁할 수 있다.
3. 부활의 영광을 누리다가 영생으로 들어가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부활한 새 생명으로 살다가, 영생에 들어가야 한다.
이 땅에서 천국을 살다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
초기교회의 실상과 발도인교회의 역사를 알고서, 그 전통과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그 공동체가 맺는 열매로, 폭발적인 교회성장과 동시에 세상의 르네상스를 일으켜야 한다.
변화와 축복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요단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갈 것이다.
부활의 새생명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주님은, 이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성품과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하실 것이다.
그리도 새 피조물로 변화되지 못하던 내 옛 사람이, 성령의 역사로, 극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리고 큰 사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기적 같은 사역으로, 감당하게 하실 것이다.
오늘 부활절에 선포한다. 우리 교회 설립 28주년에 선포한다.
우리 새언약교회에 주신 사명은 ‘성경도 사명’이다.
오직 성경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사는 사명이다.
1. 종교개혁 5백년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사명이다
2. 참 교회인 초기교회와 발도인교회의 전통을 회복하는 사명이다
3. 폭발적인 교회성장과 르네상스를 함께 이루는 사명이다.
하나님은, 세상이 깜짝 놀랄, 재정을 부어주시고, 헤브론 5대 사역으로 이루게 하실 것이다.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실 것이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 주님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실 것이다.
헤브론 사역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환자와 죄수들을 위한 시설과 사역부터 시작한다.
1 서울 근교에, 엄청난 규모의 성막을, 20년 동안에 이루는 사역이다.
2 알프스 피에몽 계곡에도, 그 절반 규모의 성막을 이루는 사역이다.
3 수많은 새언약교회와 한가족서클과 성경도아카데미를 국내외에 세우는 사역이다.
4 오직 하나님 사랑의 유일한 실천인 이웃 사랑에만 모든 것을 쏟는 사역이다.
5 사령탑은 이 땅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는 사역이다.
우림과 둠밈을 통해, 점진적인 계시로, 확정해 주신, 성경도사명이고 헤브론사역이다.
그토록 많은 공부를 하게 하시고, 그토록 낮추시더니, 이제 맡기신 사명이고, 사역이다.
우리는 멱우리 고난 시절에 함께 한 동지들이고 증인들이다.
이 사명과 사역에, 여러분을, 귀한 일꾼으로, 크신 축복으로, 사용하실 것이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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