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신학은 영적 간음이다. 성적 난잡을 불러온다/ 프란시스 쉐퍼
영적 간음과 육체적 간음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 간음을 범하고 딴 길로 가면 그 다음 세대는 곧 육체적 간음을 하게 됨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세대는 넘치는 힘으로 이것을 증명한다.
영적 간음을 방치하면 얼마가지 않아서 그 땅에 육체적 간음이 독버섯처럼 솟아 오른다.
1930년대에는 자유주의가 미국의 전 교회를 거의 장악했고 1960년대의 우리 세대는 난잡한 성행위 때문에 골치를 앓는다. 난잡한 성행위는 영국에도 그러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적 간음과 육체적 간음은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적 그리스도로부터 떠나면 하나님의 눈에는 그것이 불신자의 극악한 혼인의 경우보다 훨씬 더 가증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의 탈선은 신랑과 신부의 가장 중심된 관계의 사실을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영적 간음인 배도는 그것보다 훨씬 더 악하다. 그런데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이 입장에 처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것을 분명히 보아야 된다고 제안한다. 오늘날의 자유신학을 생각해 보라.
자유신학은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또 신성하신 역사적 그리스도를 부인한다. 자유신학은 성경이 언어로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부인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도 부인한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들 자신의 인도주의이론(人道主義理論)을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내신 말씀보다 더 높인다. 그들은 신(神)이 아닌 그들 자신들의 관념을 신으로 만든다.
우리는 우리와 대화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애써야 하고 예의 발라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가르치는 이론이 영적 간음이라는 사실에는 조금도 타협해서는 안된다. 이 영적 간음은 악하다. 육체적 간음보다 훨씬 악하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우상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악하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신학은 훨씬 더 위대한 광명과 축복을 저버리기 때문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옛 몰록을 섬기는 것보다 훨씬 더 악하다.
몰록에 관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힌놈의 골짜기에 있던 몰록은 유대인들이 섬겨서는 안된다고 계속 경계를 받은 이방 신이었다. 그는 초산아(初産兒)를 제물로 받는 신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동우상(銅偶像)의 등에는 구멍이 있는데 거기에 불을 피워놓고 모든 부모들은 벌겋게 달아서 펴진 몰록의 팔에 그들의 초산아를 바친다고 한다. 부모는 감정을 표현해서는 안되고 아이가 몰록의 손에서 죽을 때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북을 쳤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오늘날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거기 서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게 오는 많은 사람들, 나와 같이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몰록보다 더 악한 것에 파멸된 자녀들이다. 소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자녀가 현대신학에 삼키우고 있는데도 그들은 우두커니 곁에서 무표정하게 서 있다.
우리도 지나온 배경에서 이 일들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우리 세대의 후기 기독교는 이 자유신학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현세대가 가지고 있는 모든 흔적, 흘린 모든 눈물, 여러분들이 고의로 유산시킨 모든 아이, 여러분들이 체험한 모든 마약 여행 등은 교회가 탈선하여 불성실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 문화권 내에는 그 몸에 몰록에게 화상을 입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세대는 몰록의 손에 있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단순히 예술애호가로서 곁에 서서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도 무익한 공론의 장구를 크게 쳐서 귀를 막아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럴 것이 아니라 우리는 통분하며 행동을 해야 한다.
자유주의신학을 무엇에 비교하면 좋을까? 그것은 잠언 30장20절에 하나님께서 간음하는 여자에 대하여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한 말과 비교할 수 있다. 얼마나 적적한 비유인가?
그들의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에 다소 침륜된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자유주의 신학자(구식 자유주의 신학자이건 새로운 실존주의 신학자이건 간에)는 이 입장에 서 있다. 교회 뿐만 아니라 후기 기독교의 전 문화도 그들의 불성실에 결과를 나타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영적 간음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모든 선물을 받고도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떠나 몰록에게 미혹되어 아이를 바치는 부모들보다, 더 파괴적인 것을 경배하는 자유주의 신학보다 더 더러운 음녀도 없다.
우리는 현대의 배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하며 서로 권고하여 아무도 현대 배도에 동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도 우리의 구주와 주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의 영적 간음 가운데서라도 매일매일 본질에 있어서나 생실생활에 있어서 신성하신 신랑의 다정하고 참된 신부가 되어야 한다.
신랑은 우리에게 교리적 충실성을 원하실 뿐만 아니라 매일매일의 우리의 사랑을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교리적 충실성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날마다의 사랑이다. 논리에서가 아니라 실천 생활에서의 사랑을 원하시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 프란시스 쉐퍼, 『20세기말의 교회』, pp 161-183
'현대신학비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 복음 없는 현대 교회의 충격적 실상! (0) | 2012.03.09 |
---|---|
현대 자유주의는 기독교와 전혀 다른 하나의 자연종교이다/ 그레샴 메이첸 (0) | 2012.01.24 |
현대신학은 세론(世論)을 신학적 용어로 말하는 것 뿐이다/ 프란시스 쉐퍼 (0) | 2012.01.23 |
[스크랩] 찰스 피니의 영향을 받은 20세기의 인물들과 운동들 (0) | 2012.01.16 |
[스크랩] 자유주의의 길을 뒤따라가는 복음주의 (0) | 2012.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