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서양사상의 접근
성경적인 기독교 신자는 서양의 여러나라에서 이제는 소수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세속주의가 팽창되고, 동시에 비기독교적인 신비주의가 성장하고 있다.
이는 범심론적 성격을 띄고 있다. 청소년들층의 히피와 마약중독자들의 신비주의.
역사적 기독교를 포기하면서도 교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신비주의.
동양은 여러 세기를 두고 종교적 범신론의 본고장이어 왔다.
본서는 문예부흥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문예와 철학사상을 독특한 논법으로 간명하게 파헤침으로써 현대의 사상과 현대인의 고민을 분석하고, 아울러 기독교 신앙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지며 또한 가져야 할 것인지 설명한다.
자연과 은총
현대인의 기원, 세계를 실제로 변화시킨 한 사람의 사상.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자연과 은총의 문제를 처음으로 논하였다.
도식화하면, 은 총
자 연
은총, 상층부 : 창조주 하나님, 천국, 천상의 사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과 땅에 미치는 그 영향, 인간의 영혼- 통일성
자연, 하층부 : 피조물, 땅과 땅의 것들, 가시적인 것과 인간과 자연이 하는 일, 인간의 육체- 다양성
아퀴나스의 시대까지 인간의 사고방식은 비잔틴적이었다.
천상의 사물들이 너무나 중요하고 너무나 거룩하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못했다.
예, 마리아와 그리스도를 한 번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다만 상징적으로 그렸다.
또한 미술가들은 단순한 자연, 즉 나무니 산이니 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아퀴나스가 등장함에 따라 휴메니즘의 문예부흥이 비로소 탄생을 보게 되었다.
아퀴나스의 자연과 은총에 대한 견해에서는 양자 간의 불연속은 볼 수 없다. 애당초 통일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예부흥의 좋은 결과- 자연이 적절한 평가를 받게 됨.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경멸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경멸하는 것.
아퀴나스와 자율
파괴적인 결과도 초래하였음.
인간의 의지는 타락하였으나 지성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인간의 지성이 자율적이 되었다. 자연신학의 발달. 자율사상에서 자연신학은 성경과는 관계없이 추구할 수 있는 하나의 신학으로 성립.
이 자율적인 원리를 근거로 하여 철학도 역시 자유를 얻어 계시와는 무관하게 되었다. 날개를 단 격이 되어서 성경과는 관계없이 어디든지 가고 싶은 대로 훨훨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자율사상이 미술에도 침투했다.
화가와 저술가
자율사상에 영향을 입은 최초의 화가는 지옷토의 스승, 씨마부에. 자연의 사물을 자연 그대로 그리기 시작하였다. 단테가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
페트랄치, “등산을 위한 등산을 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에 대한 관심은 좋은 것이고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아퀴나스가 자율적인 휴메니즘과 자율적인 철학으로 가는 길을 터놓았지만 이러한 자율주의 사상운동이 한 번 꿈틀하자 곧 홍수가 터지듯 파급되었다.
은총을 침해하는 자연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원리는 자연이 자율적인 것이 되자 곧 자연은 은총을 잠식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문예부흥시대를 통틀어 단테의 시대로부터 미켈란젤로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점차로 완전히 자율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휴매니즘의 철학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로이 떠나 더욱 자유롭게 사고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문예부흥이 그 절정에 달할 즈음에 와서는 자연이 은총을 몽땅 삼켜 버리고 말았다.
1415년경에 그린 <그랑드 와르 드 로항>이라는 화제의 그림;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를 데리고 에집트로 피난가는 길에 어떤 사람이 씨를 뿌리고 있는 들을 그들이 지나갈 때 일어난 기적 이야기. 한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곡식이 자라고 열매가 맺어 추수를 하게 되었다. 농부가 추수를 하려고 하던 찰나에 뒤를 쫓는 병정들이 와서 물었다. “그들이 여기를 지나간지가 얼마나 되었나?” 농부는 자기가 씨를 뿌리고 있을 때 그들이 지나갔다고 말하자 병정들이 되돌아 갔다. 이 작은 그림의 구도법이 흥미를 끈다. 마리아와 요셉, 몸종, 당나귀가 유달리 크게 화면의 맨 위에 그려져 있다. 아래쪽 화면에는 낫질을 하고 있는 사람과 병정의 모습이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은총이 훨씬 중요하고 자연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종래의 개념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반 에이크- 새로운 방식으로 자연에 대한 문호를 연 사람.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시작.
1410년은 미술사상 중요한 해. 아주 작은 그림. 5인치 x 3인치. 사실적인 풍경을 그린 최초의 그림. 그림의 주제는 예수의 세례였지만 그것은 화면의 극히 일부를 차지할 뿐이었다.
배경에 강이 흐르고 실감을 느끼게 하는 성과 집들이 보이고 언덕과 솟아 있는 경치가 눈에 뜨인다. 그는 1435년에 <롤린 대신의 마돈나>를 그렸다. 마리아를 마주보고 있는 롤린 대신의 모습이 마리아의 모습과 같은 크기로 그려져 있다.
마사치오- 사실적인 원근법과 공간처리를 시도함.
필립포 립피- 풍경을 배경으로 아주 예쁜 처녀를 마돈나로 그렸다. 그가 마리아로 그린 처녀는 그의 부인이었다. 자연이 은총을 마구 좀먹게 된 것이다.
푸케이- 1450년경 왕후 아그테소렐을 마리아로 그렸다. 왕후의 한쪽 젖가슴을 노출시킨 채로 그렸다. 은총은 사멸하고 만 셈.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은 자연이 자율적인 것이 되자 그것이 곧 파괴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율적인 영역이 허용되자 마자 하층부는 상층부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레오날드 다 빈치와 라파엘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방식을 도입하였고, 코지모는 신플라톤주의를 옹호하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층부에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에 신플라톤주의가 지배적인 사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념과 이상을 다시 말해 보편적인 것을 회복해보고자 신플라톤주의를 받아들였다.
라파엘의 <아테네 학파> 그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플라톤의 사상의 차이를 묘사.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손을 아래쪽으로 내려뻗치고 있는데, 플라톤은 손으로 위를 가리키고 있다.
레오날도는 다양성과 통일성의 문제를 두고 씨름을 하였다. 그는 신플라톤주의 화가요 현대수학의 시조이다. 그는 통일을 위해 영혼을 그리려 노력하였다 . 기독교적인 영혼이 아니라 보편적인 영혼을 그리려고 했다. 특수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을 한데 묶는 합리적인 통일에대한 희망을 실현할 수 없었으므로 낙심한 가운데 임종을 맞이하였다고(젠틸레).
과거에는 지식의 통일을 고집하는 것이 지성인의 특징이었다. 그는 현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식의 통일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 프란시스 쉐퍼, 『이성에서의 도피』, 1장. pp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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