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시작이 가까워 오는 이때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어마어마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리스 엔더슨(Leith Anderson)은 [21세기의 교회](A church for the 21st Century)라는 책에서 이러한 변화가 “인쇄술의 발명보다 더 크고, 산업혁명보다도 더 큰 변화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 데이비드 S. 도커리(David S. Dockery)는 “19세기와 20세기를 지배하던 근대의 사고방식은 폐물이 되고 있다. 이러한 근대의 개념들은 더 이상 적절치 않아 보인다. 21세기는 ”탈근대(포스트모던)시대“로 특징지워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1. 포스트모던니즘: 그 특징들
1) 객관성의 결핍
예술, 건축, 영화, 음악의 영역에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이 있고,
다수의 포스트모더니즘신학도 있다. 모두가 정의하는 한 가지 정의가 없다.
2) 근대성의 기간
토마스 C. 오든(Thomas C. Oden)은 [근대성의 죽음과 포스트모던 복음주의 영성](The death of Modernity & Postmodernity Evangelical Spirituality)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포스트모던(탈근대)은 근대성의 죽음에 이어지는 실질적 역사의 과정을 의미한다. 근대성(Modetnity)은 1789년(불란서혁명)부터 1989년(공산주의의 붕괴)즉 바스티유부터 베를린 장벽까지 이르는 시기의 기간과 그 시기의 이데올로기와 좋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3) 근대성이란 무엇인가?
불란서 혁명으로부터 시작하여 러시아 혁명의 종말까지 계속 되었다. 그것은 두 벽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 사이에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다.
근대 경험주의와 관념론이 200년간 나타나 권세를 얻고 절정을 이루다 쇠퇴해 갔다.
근대성의 매력은, 과학기술에 대한 절대적 신앙, 계몽주의 관념론, 수량적 경험주의, 필연적인 역사적 발전에 대한 환상으로 특징지워진다.
4) 포스터모더니즘
- ‘포스트’는 간단히 ‘후’, ‘뒤따르는’, ‘그후’를 의미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성을 뒤따르는 것 이상의 알기 어려운 어떤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계관이 연대적으로 모더니즘 다음에 오고 있다는 것을 말할 뿐이며 따라서 근대성의 죽음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어떤 새로운 것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근대성의 파산을 공표하는 것이다.
-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기본적인 믿음- 진리로 이끄는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이 더 이상 조리있는 이론이 아님을 공표한다. 합리주의를 근거로 하는 모더니즘은 17세기 이래로 서구문화의 지배적인 철학이었다. 예수 시대로부터 17세기까지 전통적 서구의 관점은 신중심/로고스 중심이었으며, 로고스인 하나님이 예수와 성경과 자연을 통해 진리를 나타내셨음을 믿었다. 하나님의 계시는 진리의 궁극적 근원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은 오늘날에도 이러한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기독교 이전에도 플라톤은 이성과 직관을 통해 세계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과 논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이었다.
- 그러나 17세기에 데까르트가 계시와 이성을 급진적으로 분리시킨 것이 신중심의 세계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인간의 선험적 이성만을 유일하게 믿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엄격히 인간중심의 세계관이었으며, 후에 자연주의, 인본주의 혹은 모더니즘(근대주의)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로와진 이성이 인간운명의 주인이 되었다. 선험적 이성이 모든 대답을 갖게 되었다.
- 전근대와 근대의 사고방식은 지식이 확실하여 객관적이고 획득 가능하다는 데 동의하였다. 근대의 세계는 과학적사고와 상식철학에 의해 특징지어졌다. 실재의 객관성에 합의를 보았다.
- 그러나 포스터모더니즘은 인간의 경험을 모순된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다.
제임스 사이어(James Sire)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섯 가지 양상을 지적하였다.
1) 사물과 사건은 고유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세상에 대한 계속적인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2) 해석은 외적인 텍스트나 작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관점과 해석자의 특정 가치관에 달려 있다.
4) 언어는 중성적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가치적재적이다.
5) 언어는 이데올로기를 전한다.
- 스튜어트(Steward)와 블록(Block)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철학과 과학의 기본적인 인식론적 가정- 어떤 것에 대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 에 도전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어떤 주장의 진실을 실재와의 상응에 의해 증명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불가능한 환각이라고 주장한다.”
진실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일치된 의견이 없다는 일치된 의견 외에는 일치된 의견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표적이 없기 때문에 과녁의 중심(진리)도 없다. “위로, 아래로, 북쪽으로, 남쪽으로, 서쪽으로 간 탄환은 --- 다 똑같이 정확하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는 모든 사람의 의견이 다른 누구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이다. 중요한 기준은 개인으로써 당신이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로 되었다.”
- 윤리학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우리를 제한한 개인적 혹은 문화적 일관성과 통일성에 대한 외적 기준도 내적인 기준도 없다.”
- 역사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실과 허구 사이의 구분을 제거하였으며 역사학자가 창조하는 실재 이상의 실재를 역사는 가지고 있지 못한다.
- 포스터모더니즘은 이미지(인식)가 대상(구체적실재)보다 더 큰 개념적 실재와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예술, 건축, 사진에서 번성하고 있다. 이러한 분야에서의 포스트모던 구조는 분별의 구조이다.
- 문학에서는 “해석에 있어서 다원주의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표시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텍스트와 객관적 의미 사이에 해석학적 구분을 짓는다. 어떤 명제에도 혹은 언어 자체에도 고정된 의미는 없다. 포스트모더니스트는 텍스트를 읽는(해석하는)데 있어서 아주 자유롭다. 옳은지 진리인지에 대한 고려에 의해 제한 받음이 없이 자유롭게 즐거이 해석할 수 있다.
- 신학에 있어서는, 여러 다른 ‘기독교’신학들이 다양하며 모순적인 메타내러티브들(예를들면, 복음주의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독일신학, 동성애신학등)을 포함할 뿐 아니라, 다른 종교의 메타내러티브들도 진리- 물론 절대적이지 않으며 규범적이지 않은 진리-에의 동등한 주장을 가진 것으로 본다.
2.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독교에 대한 영향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일차적 가정은 진리가 이성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진리는 각 개인과 그가 속한 공동체에 의해 정의된다. 이러한 상대적, 다원적 전제는 우리의 문학과 복장, 예술, 자아정체성, 신학에 영향을 준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독교의 주장을 위태롭게 한다.
성경의 계시의 개념에 관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객관적인 규범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절대성을 무효화해버린다. 다원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성경의 계시와 영감의 거부로 귀결된다.
성경의 해석에 관해서는, 교회의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들의 새로운 사회적 협의사항에 봉사하도록 텍스트를 사용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성에 관해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적 경향성으로 예수를 몇몇 종교의 창시자의 하나로 본다.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온 인류를 위한 ‘진리’(요14:6)로 간주될 수 없다.
3.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기독교의 반응(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1) 포스트모더니즘은 복음주의적 증인들에게 풍부한 기회는 물론 새로운 도전을 제공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세계에서 효율적으로 목회하고 그 유혹을 피하려면 이 시기를 잘 알 필요가 있다. (롬13:11,“이 시기를 알라”)
2)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 진리에 대한 이상을 포기하였다. 그들은 기독교의 주장이 너무 편협하며 다른 종교에 대해 옹졸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교회는 복음의 배타적 성질을 유지하면서 “옛날옛날이야기”에 대해서 말하기를 배워야 한다.
3) 포스트모더니즘 학문을 이용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를 제기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4) 우리는 다른 주의를 이겨냈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이겨내게 되리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도 지나갈 것이다. 전보다 더 기도로 성경의 진리를 계속 설교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 사고의 약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5) 우리의 가족과 학교, 교회내에 기독교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믿는 바를 정말로 알도록 해야 한다.
6) 역사는 멈추어서지 않는다. 한 때 자부심 강했던 세속적 근대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이데올로기와 문화가 새 지평선에 밝아오자 소멸하고 있다. 역사는 항상 복음주의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압박과 불시의 선택권, 절박한 요구들을 들이댄다. 여러 다른 이데올로기들과 주의, 문화들도 왔다가 가지만, 하나님에 대한 충성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견디어낸다.
7) 근대세계의 끝과 포스트모던 세계의 시작은 우리에게 새로운 위험신호의 물결을 가져왔다. 우리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위기는 또한 교회에게 새로운 기회와 새로운 도전을 나타낸다. 예수를 선포하는 교회의 책무는 때에 상관없이 언제나 동일한 것이다.
우리는 충성스러우나 동시에 지혜롭게 이 시대의 사람들을 복음화하는 책무를 수행하여 우리처럼 그들이 주 예수를 받아들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 김의환, 『현대신학과 개혁주의신앙』, pp 276-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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