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받았으면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 은혜를 받은 신자는 신령한 언어를 말하고 지식을 전달한다. 은혜를 받은 신자는 언어가 바뀐다. 경건한 신자는 그 마음과 혀에 하나님의 법이 있다(시37:30,31). 신자의 육체는 하나님의 전이다. 혀는 하나님의 전에 속한 기관이며, 거룩한 말을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순수한 은과 같은 말을 전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을 베푼다. 성경은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마12:35)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마음은 선이라는 보배가 가득 쌓인 창고와 같다. 그의 마음은 단단히 봉해진 돈주머니와는 다르다. 그는 마음의 창고에서 귀한 보배를 꺼내 다른 사람들을 부요하게 만든다.
은혜는 불과 비슷한 성질을 띤다. 불을 가두어 놓을 수 없듯이 은혜는 새 포도주처럼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god4:20). "내게 말이 가득하고 내 심령이 나를 강박함이니라“(욥32:18)라는 말처럼 경건한 신자는 거룩한 말을 쏟아놓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의 예루살렘에 속한 사람은 가나안 복지의 언어를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없다. 그들의 입은 “지혜의 샘”(잠18:4)이다. 신앙 문제에 관해 침묵하는 것은 중죄에 해당한다. 오늘날 영적으로 벙어리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사람의 말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사8:6)과 같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납고 거친 말을 건넬 때가 많다. 물을 너무 오래 끓이면 끓어 넘치기 마련이다. 마음에 분노가 가득하면 사나운 말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약3:6). 분노의 감정은 제정신을 잃게 만든다. 몹시 분노한 상태에서 저주를 퍼붓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혀를 칼날처럼 세워 상대방을 난도질한다. 분노에 사로잡히면 편견에 치우치기 쉽다. 르호보암은 거친 한마디 말 때문에 이스라엘 열 지파를 잃었다(왕상12:12-20). 혀를 불처럼 사납게 놀리는 사람은 장차 혀를 식혀줄 물 한 방울을 갈구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눅16:24).
인간의 마음은 사악함이 가득한 상자와 같고, 혀는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밖으로 뿜어내는 구멍과 같다. 얼굴에 생긴 발진이나 뾰루지는 피가 오염되었다는 증거이듯이 천박한 말은 마음이 부패했다는 증거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끝마다 맹세와 저주의 말을 덧붙여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하면 좀 더 품위있게 지옥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좀 더 겸손하고 그들의 혀가 더 관대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자신을 칭찬하는 것은 위선에 해당한다. 비방을 일삼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비방은 아무 근거 없이 거짓으로 다른 사람을 헐뜯는 행위를 말한다. 비방은 가치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거룩한 사람도 중상모략에 희생될 수 있다.
우리는 남을 헐뜯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도적질하지 말라”라는 계명과 “네 이웃에 대해 거짓증거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똑같이 중대한 범죄로 간주하신다. 향수 가게에 들렸던 사람은 향기로운 냄새를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한다.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은혜를 맛본 우리는, 거룩한 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은혜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말을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이 나게 하자(골4:6).
성경을 읽으면 풍부한 대화의 소재를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해야 할 말을 가르쳐 준다. ‘성경의 약속’에 관해 말하라. 성경의 약속은 꿀송이보다 더 달콤하다. 성경의 약속은 믿음의 지지대요 기쁨의 원천이자 성도의 특권이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우심’에 관해 말하라. 죄에 대해서도 말하라. 영혼을 아름답게 만드는 ‘거룩한 마음’에 대해서도 말하라. ‘자기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도 말하라. 죽음과 영생에 관해서도 말하라.
오늘날 경건의 능력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성도들 사이에서 거룩한 대화가 오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온갖 부적절한 일들만 화제로 삼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천국에 관한 말은 하지 않는다. 은혜로운 대화는 옛 성도들의 관습이었다.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는 하늘의 수레가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은혜로운 대화를 나누었다. 다윗의 혀는 가나안의 언어를 말했다. “내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씀하오리니”(시71:24).
세월을 아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천국을 전하고 하나님과 영혼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본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항상 거룩하고 은혜롭다.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눅4:22).
은혜로운 대화를 나누면 죄짓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규칙적인 일이 게으름을 막듯이 은혜로운 대화는 악을 예방한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베르나르두스는 “말은 생각의 창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거울을 보고 얼굴이 깨끗한지 더러운지 알 수 있듯이 말을 통해 사람의 마음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 음란한 말은 마음에 정욕이 가득하다는 증거이고, 세속적인 말은 마음에 탐심이 가득하다는 증거이며, 은혜로운 말은 마음에 은혜가 충만하다는 증거이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십볼렛”을 “씹볼렛”으로 발음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냈다(삿12:6).
말은 마음의 거울이다. 통에 구멍을 뚫으면 통 안에 있던 내용물이 밖으로 나오듯이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6:45)라고 말씀하셨다. “옳은 말은 어찌 그리 유익한지”(욥6:25)라는 욥의 말처럼 은혜로운 대화는 유익이 크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강력한 영향을 끼쳐 평생 큰 유익을 누리게 만든다. 신자는 은혜로운 말을 통해 무지한 사람을 깨우치고, 냉랭한 사람을 훈훈하게 녹이며, 슬픈 사람을 위로하고, 흔들리는 사람에게 확신을 제공한다.
은혜로운 말은 기독교인의 영예이다. 혀는 우리의 영광이다(시30:12). 은혜로운 대화를 나누려면 진리를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먼저 거룩한 지식을 충분히 쌓아야 한다. 신앙생활을 기쁨으로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입으로 전하기 마련이다. 기쁨은 사람의 혀를 글솜씨가 좋은 작가의 펜처럼 매끄럽게 만든다. 거룩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은사와 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시51:15)라고 기도하라. 올바른 의도로 하나님에 관한 일을 말해야만 진정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 토마스 왓슨,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pp 106-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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