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왓슨

성경은 신적 권위를 갖고 있는가? / 토마스 왓슨

강대식 2012. 3. 27. 23:57

 

우리가 정경이라고 칭하는 책들은 그렇다.

 

1) 왜 성경이 정경이라고 호칭되는가?

말씀은 진리의 규범이며 우리 삶을 지도하기 위한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 말씀은 논쟁의 판관(判官)이요 무오한 반석이다. 우리는 원본과 일치되는 복사본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성경과 일치하는 것만을 진리로 용인해야 한다. 모든 자들은 표준자에 가져와 정확도를 대조해야 하듯이 신학상의 모든 격언은 성경이라는 시금석에 가져가야 하는 것이다.

 

2) 성경은 완전한 규범인가?

성경은 온전하고 완벽한 규범으로서, 구원에 요긴한 모든 것들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다. 딤후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우리가 믿어야 할 바(Credenda)와 실천해야 할 바(Agenda)를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에게 신앙의 정확한 모범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완전하게 가르쳐준다. 따라서 전승을 성경과 동일시하고 성경을 그들의 전승으로 보완하고 있는 교황주의자들은 죄를 범하는 것이다.

 

3) 성경의 주된 범위와 목적은 어디까지인가?

구원의 길을 계시하려는 것. 성경은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발견하게 해준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말씀의 의도는 우리의 은혜를 시험하는 시금석이 되고 또한 피해야 할 암초들을 보여주는 항로 표지구실을 하려는데 있다. 말씀은 우리의 감정을 순화하고 일깨우며 우리의 지침과 위로가 되고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4) 성경을 해석할 권한을 누가 가져야 하는가?

교황주의자들은 그것이 교회의 권능에 속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같은 주장은 허위인데, 왜냐하면 교황들 중 상당수가 무식하고 사악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성경 그 자체 내지는 그 안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성령이 그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금강석을 깎을 수 있는 것은 금강석뿐이듯이 성경은 성경으로만 해석할 수 있다. 태양은 그 자신의 빛에 의해 가장 잘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성경이 스스로를 해석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이 지나쳐버리기 쉬운 난제 부분들이다. 이 부분을 누가 해석할 것인가?

하나님의 교회는 성경을 설명하고 해석하도록 몇몇 사람들을 임명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사를 부여하신 것이다. 교회의 몇몇 목사들은 마치 빛나는 성좌처럼 캄캄한 성경에 빛을 던져주고 있다. 말2:7.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5) 그러나 이는 우리의 믿음을 인간들에게 의탁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과 일치하는 것 외에는 진리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목사들에게 모호한 부분들을 해석할 은사를 주셨듯이 그 백성들에게는 그만큼의 분별의 영을 주셔서(최소한 구원에 요긴한 일들에 있어서) 무엇이 성경에 일치하고 무엇이 일치하지 않는지 말할 수 있도록 하셨다. 고전12:10.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주시나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진리와 오류를 분간하고 진짜와 가짜를 판단할 수 있는 지혜와 분별의 영을 허락하셨다(행17:11). “베뢰아 사람은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거늘.”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자신들의 선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들은 교설이 성경에 일치되는지 따져 보았던 것이다. 딤후3:16.

 

성경이 신적인 영감을 받은 책이라면 다음과 같이 권면해야 할 것이다.

1) 성경을 연구하라

2) 기록된 말씀을 수종히 여기도록 하라

3) 기록된 말씀을 믿으라

4) 기록된 말씀을 사랑하라

5) 성경과 일치하는 삶을 살라

6) 성경을 위해 싸우라

7)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8)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경배하라

 

- 토마스 왓슨, 『신학의 체계』, PP 6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