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은 영적인 변화이며, 회심은 영적인 활동이다. 거듭남은 하나의 힘을 부여하는 것이며, 회심은 이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거듭남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환할 수 있는 원리가 주어지고, 회심은 바로 그 전환하는 것 자체를 말한다. 그 원리로써 우리는 자연의 상태에서 은혜의 상태로 들어오게 되며, 회심은 하나님에게 실제로 고정되는, ‘최종 단계’로서의 우리의 행동이다. 거듭남은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고, 회심은 그렇게 주어진 능력으로 ‘실제로 행하는 것’이다.
1) 회심이 결과라면, 거듭남은 원인이다.
생명의 활동이 있기 전에 먼저 생명이 생겨야 한다 생명이 그 활동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언약에 있어서 새마음, 새영, 그리고 그 언약을 맺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영을 불어 넣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과는 구분된다(겔36:27).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며, 회심의 측면에서 그 힘을 행사하게 하신다.
사람들은 본성으로는 죽어 있어서, 그들 위에 무거운 돌이 올려저 있는 상태와 같다. 거듭남은 마음 위에 올려져 있는 그 돌을 굴려서 없애는 것이며, 회심은 그러한 거듭남을 통해 살아난 몸이 활동하게 되는 것으로서 거듭난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즉, 활동의 원리가 활동을 산출하는 것이다.
2) 거듭남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이지만, 회심에서는 능동적이다.
그것은 마치 어린 생명이 자궁에서 처음으로 수태가 될 때에는 생명의 유입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지만, 생명이 유입된 이후에는 그 생명이 능동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 안에서 처음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피조물 편에서의 무언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활성화된 이후에는 그분이 보시기에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행하게 된다.
거듭남은 피조물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활동인 반면에, 회심은 그 하나님의 활동으로 주어진 첫 번째 원리에 의하여 피조물이 하나님을 향하여 나타내는 활동이다. 이 첫 원리에서 이후의 모든 행동, 곧 믿는 것, 회개하는 것, 죄를 죽이는 것, 죄를 각성하는 것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행동들에 있어서 사람은 능동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원리가 주어지는 데에는 수동적일 뿐이다. 이 모든 행동들은 그 첫 은혜의 유입을 따라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된 의지의 작용이다.
회심은 주님께 우리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은 전적으로 순전한 것이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 새롭게 된 사람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고 말하지 끌려간다거나 강요를 당한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의 의지 안에 어떠한 경향과 성질을 불어넣는 것은, 각성시키는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그러나 주어진 경향의 능력으로써 의지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은 피조물의 자발적인 활동이다. 마치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잡고 인도해 가듯이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다.
거듭난 날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주어진 날이며, 거듭남으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날이다.
- 스테판 차녹, 『거듭남의 본질』, pp 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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