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를 살펴 보면 반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교회가 메마른 지식만 가르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무런 느낌이나 체험도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니다가 어느 정도 절정에 다다르면 언제나 그 틈을 비집고 신비주의 영성이 여러 가지 이름과 형태로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신비주의 영성은 메마른 교회와는 달리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교제를 강조하고 그 교제를 이룰 수 있는 다양한 영적 훈련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갈급함을 느끼던 사람들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그러한 영성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신비주의 영성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아서는 안 된다. 신비주의 영성은 결코 메마른 정통 기독교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어떤 점에서는 신비주의 영성이 형식적인 신앙으로 잠들어 있는 교회를 깨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교회가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속화되어 있을 때면 오히려 신비주의 영성이 교회보다 더 순수해 보이는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을 일깨우고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떠나 하나님을 진심으로 추구하며 깊은 기도와 묵상에 들어가게 하는 바람직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비주의 영성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그 영성을 따라서 영성을 형성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비주의 영성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으며, 거듭남과 관련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때문이다. 신비주의 영성은 기독교 영성의 수원지가 되는 거듭남을 강조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믿음과 은혜의 종교인 기독교 신앙을 훈련과 행위의 종교로 전락시키고 만다.
신비주의 영성을 가르치는 책들을 자세히 읽어 보라. 거기에서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가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구원을 철저하게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것에 대한 감격이나 감탄도 찾아볼 수 없다.
신비주의 영성은 성경이 지극히 소중하게 여기고 강조하는 이 모든 것들을 다 팽개친 채 특별한 방법의 성경 묵상이나 기도를 강조하면서 이런 행위와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최고의 경지에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선전한다. 이런 점에서 신비주의 영성이 말하는 기독교 신앙은 초자연적인 구원의 은혜를 드높이는 은혜의 신앙이 아니라 훈련과 수련을 강조하는 변질된 신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신비주의 영성은 지성과 이해력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일을 소홀히 한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하나님에 대한 참되고도 깊이 있는 지식에 기반을 두지 않는 감정과 의지의 신앙으로 변질시킨다.
물론 신비주의 영성가들의 글을 읽어 보면 그 내용이 심오하고 때로는 굉장히 복음적인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깊이 있는 해설도 없고, 십자가의 복음과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깊이 있는 증거도 없다.
신비주의 영성가들의 글은 대부분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적인 언어로 채워져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영성의 삶을 묘사하고 분석하고 지침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신비주의 영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심도있게 알아 가는 일에서 궁극적으로 자꾸 우리를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물론 신비주의 영성에도 묵상을 강조하기는 하나, 그러나 그 묵상마저도 굳이 성경 말씀에 매이지 않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지성을 깨우치고 풍부하게 채우는 일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 신앙을 감정과 의지의 신앙을 변질시키고 만다.
그러므로 메마른 정통 기독교가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키지 못할 때,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신비주의 영성이 아니라 바로 성경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다시금 거듭남의 은혜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체험하며, 또 그것에 기초하여 우리의 영성을 형성해야 한다.
이 원칙을 우리가 바로 깨닫고 지킬 때,
비로소 우리는 성경적인 영성을 형성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이태복, 『영성 이렇게 형성하라』, pp 12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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