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속죄를 언제나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 주제로 인식해 왔다. “속죄하다”라는 것은 “하나가 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이 화목되는 것이다.
속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 된 인간 사이의 연합과 교제를 가져온다. 이것이 기독교의 중심 교리이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그 무엇보다도 본질적으로 굉장한 속량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타락과 그 이후 계속되는 부패에 반하여 복음은 화목의 메시지를 가져오며, 죄와 그것의 파괴적인 권세로부터 피난처가 되어 주고, 하나님과의 화목과 교제를 누릴 수 있는 관계로 진입하는 길을 제공해 준다. 이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희생 제사를 통해서 죄인들과 자신을 화목하게 하신다.
속죄는 무조건적이고도 주권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나는 왜 구원받는가?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가? 믿음이 나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나는 그분의 속죄 사역의 모든 복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왜 속죄 사역을 수행하러 오신 것인가? 바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명을 맡기셨는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속죄의 복의 궁극적인 근원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생각과 뜻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여기까지는 많은 알미니안주의자들도 칼빈주의자들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다음 질문에 대해서는 알미니안주의자들과 칼빈주의자들이 날카롭게 대립한다. 존 머리 교수,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사로 드리신 것인가? 그분의 죽음으로 그의 몸 안에서 누구를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것인가? 그분은 율법의 저주와 죄책과 죄의 권세와 사탄의 유혹과 권세로부터 누구를 속량하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누구의 자리에서 누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인가?”
구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칼빈주의자들을 그리스도께서 오직 택한 자들만을 위해 돌아가셨음을 믿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영원하고도 무한한 가치를 부인하지 않으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비구원적이며 간접적인 유익이 불신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보편적으로 만인을 위해 죽으셨다고 믿는다.
- 조엘 비키, 『칼빈주의』, pp 146-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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