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은 복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한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하늘나라에 올라가 천사들과 함께 거하며 부족함 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영원토록 누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바울처럼 영원한 기쁨을 맛본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부귀를 배설물로 여겼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 신실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금식하고, 헌금하고, 죄를 애통해하고, 선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에게 나눠주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을 상인에, 영생을 값진 진주에 비유하셨다. 그리고 지혜로운 상인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진주를 산다고 말씀하셨다(마13장).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에 엄청난 부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마케도니아 왕국의 모든 것을 부하 장수와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헤파스티온이 그 모습을 보고 “대왕,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알랙산더는 “부왕인 필립이 내게 물려주신 이 마케도니아보다 훨씬 더 좋은 인도의 부를 곧 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의 부에 대해서도 이러한데, 바로 눈앞에 있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부를 위해 썩어질 이 세상의 것들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지으신 도성을 바라보고 자기 고향과 재산을 모두 버렸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땅은커녕 묻힐 무덤 자리조차 없었다. 다윗도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안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했다.
엘리야도 자신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영접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결국 불병거를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한 번 하늘나라를 경험했던 사도 바울은 어서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다. 변화산에서 하늘의 영광을 맛본 베드로는 “주여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하면서 아예 그곳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베드로가 이제는 하늘나라에 있으니, 그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이 자신을 하늘나라의 영광 안으로 받아들여주시기를 기도하셨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저자는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라고 진술했다. 사람은 일단 하늘나라의 기쁨을 맛보면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어거스틴은 “하늘의 기쁨을 얻기 위해 지옥에라도 들어가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그나티우스도 잔인한 고문과 위협을 당했을 때 용기를 잃지 않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불, 교수대, 맹수, 아무것이나 좋다. 내 뼈를 부수고, 내 사지를 자르고, 내 몸을 으깨라. 지옥의 모든 고통을 다 내게 퍼부어라. 하지만 나는 주 예수와 그분의 나라를 기뻐하리라.”
폴리갑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 바실도 자신을 박해하는 이들을 향해, “나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노라. 죽음은 나를 지으신 분께 나를 인도하는 지름길일 뿐이다”라고 했다.
롯은 고국을 버리고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 가나안(하늘나라의 상징)으로 갔다. 그녀가 나오미를 따라간 이유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기꺼이 하늘의 가나안까지 그분을 따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곳에서 우리는 영생을 누릴 것이다. 영생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주어진 거룩한 언약이고, 그분의 아들의 피로 인 치신 것이고, 성령과 성례를 통해 보증된 것이다.
영생이야말로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행복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복되신 삼위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어린양 앞에서 기뻐 찬양하고, 성도와 천사들과 함께 “할렐루야”를 외칠 것이다. 하늘나라에는 결코 늙지 않는 영원한 젊음과 쇠하지 않는 아름다움, 다함이 없는 사랑과 아픔이 없는 건강, 끝이 없는 생명만이 존재한다.
- 루이스 베일리, 『경건』, pp 136-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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