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6:41-45
입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마음에 가득한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에 가득하면 입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낸다고 하신다.
악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악에서 악을 낸다고 하신다.
이 말씀은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려면 마음에 선을 쌓아야 하고
악한 사람이 되려면 마음에 악을 쌓아야 한다는 말씀도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사람이 되려면, 우리 마음에 악이 쌓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의가 발동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몰아내고 차단막을 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줄기가 자라 열매를 맺게 마련이다.
율법은 정죄와 심판을 가져 온다.
복음은 용서과 사랑을 가져 온다.
율법은 죽이는 것이요, 복음은 살리는 것이다.
율법은 옳은 것이지만,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율법으로, 곧 정죄와 심판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잔소리가 되고, 부담만 되고, 율법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는 것을 본다.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복음의 원리이다.
율법의 지적으로 행위를 고쳐 볼려고 하지만 안 되고 엇가기만 한다.
그런데 그 율법이 원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복음과 믿음이 이룬다.
율법으로는, 정죄와 심판으로는, 못된 나무를 좋은 나무로 만들지를 못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부부는 배우자들에게, 무심코 이 일을 반복하고 있으면서도 모른다.
복음은 믿음과 사랑으로 못된 나무를 좋은 나무로 만든다.
복음은 율법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좋은 소식이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복음으로 오셨다.
구약 4천년 동안 율법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그 씨로 오셨다.
율법은 선하고 옳은 것이지만, 인간이 자기 힘으로 다 지킬 수가 없는 것이다.
다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킬 수 있는 것으로 하다 보니까 위선과 외식의 바리새인이 되고 만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앞세우고 복음을 싫어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을 십자가에 못박고 만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시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율법으로 살지 않는다.
영으로 복음을 살고, 믿음과 사랑으로 산다.
못된 나무가 좋은 나무로 변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주인 행세하지 않는 것이다.
그분이 내 심령과 삶에서 주인 되게 하는 것이다.
리더십(leadership)이 아니고 로드십(lordship)으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하여 구원받는 것이다.
세상이 좋아하는 리더십 내려 놓고 로드십으로 살면 내 마음에도, 관계에도, 천국이 임한다.
이 일의 시작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며 이루어진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내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고 그분을 닮아갈 때 맺을 수 있는 열매들이다.
우리가 거듭나고 회심할 때 풍성하게 맺었던 열매들 아닌가요?
왜, 우리가 다시 시들고 육체의 사람, 율법의 사람들이 되고 마는가?
기도와 말씀을 멀리하고, 세상과 벗하다가 영의 사람에서 육의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다.
그 심령의 토양에 악한 영은 들어와 못된 씨를 심어 악한 열매를 맺게 한다.
내가 요즘 이웃에게 맺는 열매들을 보면, 내 속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육체의 열매는 분명하다고 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다.
이 중에 몇 가지가 요즘 내 심령을 차지하고 열매들을 맺고 있다면, 회개하고 돌아서야 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갈5:16-18)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잘 새겨 두시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아래 있게 될 것이다.
성령을 구하고 의지하고 인도함을 받을려고 하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음에 왜 천국과 평강과 안식이 없느냐?
성령이 메마르고 은혜가 메마르고 내 심령이 물없는 간조한 땅, 광야가 되어서 그러하다.
내 심령이 메마르면 육의 사람이 되고 율법의 사람이 되고 만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이는데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게 된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고 그 들보를 해결할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 일에 바빠서 이웃의 티가 잘 보이지도 않고 뺄려고 하는 마음도 여력도 없을 것이다.
내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려고 복음으로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사람들은 그러하다.
못된 나무를, 내가 율법과 정죄로, 좋은 나무 만들려고 하지 마시라.
억조 창생의 인류가 하다 하다 실패한 방법이다.
그렇게 해서 될 수 있는 일이었으면 주님께서 율법의 저주를 십자가로 속량하실 필요가 없었다.
사람의 덕을 세우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이다.
못된 나무를 좋은 나무로 만드는 것은 성령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만 이룰 수 있다.
우리 역시 못된 나무로 되어갈 때 그 처방은 마찬가지이다.
성령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내 마음에 선을 다시 쌓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내게서 선이 나오고 그 선이 못된 나무를 좋은 나무로 만들게 될 것이다.
율법이 나오고 정죄와 심판이 나오면 아, 내 마음에 또 악한 것이 준동하는구나 깨닫자.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우는 대로 살기를 힘쓰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천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육체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죠)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다(롬14:17).
육체가 아니라 성령 안에 머물기를 힘쓰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3-14)
성령 안에서, 은혜 안에서, 머무는 사람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평강과 안식을 누리고, 하나님 나라를 살게 된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을 알고,
우리 관계에서도, 율법으로 살지 말고, 성령 안에서 은혜로 살기를 힘쓰자.
우리가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게 하기 위해
광야에서의 초막생활, 고난의 연단과 훈련을 받게 하신다.
오늘 우리에게 예배를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다.
오늘 본문에서 이어서 나오는 말씀은 이렇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않느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누구나 우리 인생의 집을 잘 짓고 형통하기를 원한다.
세상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손에 쥠으로 이 집을 잘 지을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사는 것이 이 집을 잘 짓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것이라고 하신다.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것이라고 하신다.
인생에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칠 때, 그 집의 운명이 판가름이 난다.
세상이 바뀔 때마다 흙 위에 지은 집들의 무너져 심하게 파괴되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들이 열심히 쌓은 부와 명예와 권력들이 ‘무너져 파괴됨이 심한 것’을 막지 못한다.
그들이 진짜 무너져 심하게 파괴되는 곳은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에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지은 집은 큰 물과 탁류에도 요동하지를 않는다.
그 집은 복과 형통을 낳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심판대에서 상급과 면류관으로 이어진다.
한번 뿐인 우리의 인생의 집을 말씀과 그 행함으로 짓자.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니 행함으로 우리 인생의 집을 짓자.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보다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부터 빼내자.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찔레에서 포도를 딸 수 없다.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나무가 못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마음에 선을 쌓음으로, 가득 채움으로, 우리는 좋은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
히13:9)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은혜와 대립되는 음식은 율법과 정죄와 심판이다.
은혜가 마르지 않도록, 성령을 구하고 의지하고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배에서 생수가 넘쳐 나도록 은혜의 샘에서 은혜의 물을 깃자.
은혜의 샘의 원천은 말씀과 기도이다.
육체와 율법의 생활이 아니라, 경건 생활만이 우리에게 참된 유익을 가져다 준다.
은혜에서 자라지 않으면 영적인 건강과 행복은 없다고 한다.
마음을 은혜와 선으로 가득 채우고, 좋은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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