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2/2 주일설교, 보스라의 양 떼 같이

강대식 2012. 12. 2. 16:33

본문: 미가 2:12-13

 

이스라엘을 보스라의 양 떼 같이 초장의 양떼 같이 한 처소에 다 모을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

그 전에는 그들을 다 흩으셨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들을 흩으셨던 이유를, 미가서 3장 10-1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미3:10-12)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이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 나라와 교회들의 형편은 어떤가?

나라의 우두머리들, 교회의 제사장들, 선지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나라는 항상 우두머리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한 통속이 되어 죄악으로 갈 때 망한다.

 

이들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니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태평성대를 노래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미가 선지자를 통해 말씀한다.

미6:8-9)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오직 정의를 행하며,

무조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먼저가 아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나님의 속성 중 최우선은 거룩이고 그 거룩이 사람 가운데서 실행되는 것이 정의(법도)이다.

 

그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 때 공의로 심판하시는 것이다.

의는 거룩함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공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이 혐오이다.

 

그 다음의 하나님의 속성이 선하심과 사랑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속성이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심이다.

이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거룩, 정의, 사랑, 신실의 순서이다.

 

이 순서를 생각하지 않으니까 뒤죽박죽이 되어 버리고 만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만 붙드는가 하면, 사랑하는 하나님만 강조한다.

교회 가운데, 성도들이 속해 있는 영역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정의(법도)는 온데간데 없다.

하나님은 이 모든 속성 안에 전체로 거하시며, 하나님은 이 모든 속성을 동시에 소유하신다.

이 사실을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분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다.

 

그분의 사랑을 그분의 공의와 관계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우리는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구약의 무서운 하나님은 믿지 않는다’고 한다.

망발 중의 망발이고, 지가 만든 복음, 하나님일 뿐이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균형의 완전성을 우리의 생각에도 항상 유지해야만 한다.’(존스)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정의를 행하되, 인자를 사랑함으로,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행하라는 것이다.

정의사회 구현한다고 하면서 독재와 폭력을 행하고 온갖 교만을 떨지 말라는 것이다.

기독교 국가 건설한다고 좌파 또 우파의 권력에 둘러리 서지 말라는 것이다.

 

교회와 성도가 갈 길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이다.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우리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정의가 이루어 지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 앞에서의 사랑과 겸손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이 요구가 행해지도록 우리의 성품을 연단하는 것이 바로 광야생활이다.

불뱀과 전갈이 있는 광대한 광야, 물 없이 간조한 땅을 통과하게 하며 성품을 연단하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시면서, 우리의 성품을 연단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위기와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우리의 성품이, 우리의 삶의 목적과 사고방식과 습관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바로 이들이 하나님이 다 모으게 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다.

 

엘리야 선지자가 선지자들이 다 죽고 나만 남았다고 하였을 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을 남겨 두었다고 하셨다.

악인들은 형통하고 태평을 구가하는 데, 의인들은 고난 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이 남은 자들, 하나님이 남겨 훈련한 자들을 부르시고 모으신다.

야곱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정하게 부르실 때, 자녀처럼 부르실 때 부르는 이름이다.

위험한 광야 시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시절, 외로웠고 절망스러웠던 시절을,

믿음과 인내로 견디어 온 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야곱아’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만을 붙들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믿음과 인내로 견디어 온 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야곱아’이다.

 

이 야곱을 어떻게 하신다고 하는가?

(12)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 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 하리니,

사람들이 크게 떠들 것이며

 

산산이 흩어졌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 모은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신다고 하신다. (‘반드시’를 두 번 말씀하신다)

접근할 수 없는 에돔의 도시, 보스라에 있는 양 떼 같이, 초장에 있는 양 떼 같이,

그들을 ‘한 처소에’ 둔다고 하신다.

그 안에서 목자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 안전히 거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이 크게 떠들 것이라’고 한다.

이전 번역은, ‘그들의 인수(人數)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라고 했다.

보스라의 양 떼 같이, 초장의 양 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크게 떠들 것이다.

 

이 약속은 주님의 초림과 재림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게 이루어질 약속이면서,

이 약속은 동시에, 우리가 경험하며 맛보아 알게 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이다.

우리 교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올려 드린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포기하시고 쫓아내신 듯이 보였지만, 희망이 없는 듯이 보였지만,

이제 역경을 통과하여 남은 자들을, 한 처소에 다 모으실 것이다.

보스라의 양 떼 같이, 초장의 양 떼 같이 모으시며 부흥을 주실 것이다.

이 날이 왔을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찬양하고 고백했다.

한나의 찬양이다.

삼상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삼상2:1)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다윗의 찬양이다.

시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시92:10)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하박국의 찬양이다.

합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바울 사도도 팡파레를 울리고 있다.

롬8:36)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모든 일;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

이 찬양과 고백이 2012년 이 해가 다 가기 전 우리의 찬양과 고백이 되기를 바란다.

 

이 구원의 기쁨과 역사를 위하여 하나님은 친히 앞서 가신다.

(13)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간다. 모든 대적들을 분쇄하고 그들을 위해 길을 열 것이다.

그들은 열어진 길을 따라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다.

그 문은 곧 광야의 연단에서 풀려나는 문이요, 포로에서 해방되는 문이 될 것이다.

 

또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여 갈 길을 인도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이신 여호와께서 그들의 선두로 가시며 행하실 것이다

 

광야 생활에서도, 우리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앞서 행하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우리는 잘 믿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루어져야 비로소, 맛을 보아야 비로소, 함께 하시고 선두에 가시는 분임을 아는 것은

우리의 연약한 믿음이다.

 

신1:30-33)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우리 앞서 가시고 장막 칠 곳도 찾아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우리 갈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란다.

아들을 안음 같이 지금도 우리를 안아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모든 일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않았다.

눈 앞의 필요와 땅에 있는 것에 대한 탐심이 그들의 눈을 가렸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이, 이 세상을 부러워하는 불신앙이, 믿음을 파선케 했다.

우리의 고난들은 영광을 꽃 피우기 위한 것이다.

죽어야 살고, 십가가를 통과해야 부활과 영광의 날이 온다.

진토와 거름더미를 통과해야, 그곳에서 일으켜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하신다.

 

우리가 받을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에 비하면 우리의 고난은 잠시요 경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잠시 받는 이 고난의 경한 것이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룬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후사로서 받을 영광은 우리가 받는 고난과 비교할 수가 없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의 믿음과 인내를 본받으라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분을 찾는 이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맛보는 영광은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땅에 있는 것만을 찾고 위에 있는 것을 무시하다가 그 날에 가슴을 찢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