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신학은 우리에 대해 사는 행복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사는 선한 삶이다/ 에임스

강대식 2013. 5. 3. 13:26

신학은 하나님에 대해 사는 것에 대한 교리 혹은 가르침이다. “너희도 너희 자신을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6:11). 교리라 함은 다른 분야와 같이 자연과 인간의 탐구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와 지시로부터 유래된 분야라는 것을 명기하기 위함이다. 산다는 것이 모든 것 중 가장 고귀한 일이기 때문에, 사는 것에 대한 학문보다 더 적절한 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고귀한 종류의 삶은 살아계시며 생명을 부여하는 하나님에게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므로 신학적 삶의 본질은 하나님에 대해 사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일치되어 살아갈 때 하나님에 대해 살아가게 된다.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함이라 ---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19-20).

 

행복하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 이러한 삶의 범위 내에 포함되지만 올바르게 사는 것(유조니아)이 행복하게 사는 것(유우다이모니아)보다 중요하다. 우선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만족과 관련된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선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신학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사는 행복한 삶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사는 선한 삶으로 정의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삶은 인간이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그의 의지에 따라 행하게 되는 전인적인 영적인 활동이며, 분명히 인간의 의지와 관련되기 때문에 시학의 고유하며 최초의 주제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생명의 근원이 이(마음)에서 남이니라”(잠4:23). 이렇게 의지된 삶에서는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신학이 사변적 분야가 아니라 실천적 분야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신학은 이를 특별하고 고유한 방식으로 수행한다.

 

신학은 이러한 최종 목적 혹은 그 목적에 연관된 수단들과 관련되지 않은 어떠한 내용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학의 모든 내용은 실천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이러한 삶의 실천이 신학에서 너무나 완벽하게 고찰되므로, 경제, 도덕, 정치 생활, 법 제정에 있어서 올바르게 사는 것과 관련된 보편적 진리에 대한 교훈들 중에 신학과 정당하게 관련되지 않은 교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학은 모든 학문 중 궁극적이며 가장 고귀한 학문이다. 신학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방식으로 파송되어 신적인 일들을 다루고 하나님을 지향하며 인간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함으로써, 우리의 최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지침이며 총괄적인 계획이다. 따라서 이를 신학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사는 것(테오조니아), 하나님을 향해 사역하는 것(테우르기아)라고 지칭하는 것도 부정확한 것은 아니다.

 

- 윌리엄 에임스, 『신학의 정수』, pp 109-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