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이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의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8:18-23)
장차 올 영광 속에서 우리의 분깃이 무엇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사도가 23절에서 ‘양자’ 라고 부르는 바이다. ‘양자’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하나님이 아들들의 지위로 들어가게 됨을 의미한다. 사도는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사도는 바로 그 날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서 어떠할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5장 39-54절에서 ‘썩을 것이’ 없어지게 될 것이고 우리는 ‘썩지 않게’ 될 것이다. ‘육신적인 것’에 불과한 모든 것이 더 이상 육신적이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영적인 것이 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몸이 부활할 뿐 아니라 변화되어 영화롭게 될 것이다.
고린도후서에서 같은 교훈의 진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라”(고후 3:18)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1)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몸을 벗으므로 자기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있는 장막 집으로 옷입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위대한 진리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현재의 상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이 모양인 것은 교회의 대부분이 그 진리를 믿기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교훈이다. 오늘날 스스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면서 부활과 몸의 영화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믿기를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약간 희미하고 불분명한 영적인 상태와 조건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의 중요한 부분으로 몸의 부활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우리들 스스로에 대해서 인식해야 되는 것은
첫째, 우리의 몸들은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우리 주님 자신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영화로운 몸이 될 것이다. 에베소서 5장 26-27절에서 영적인 완전에 대한 바울의 묘사를 살펴보라.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계시록 7장 13절 이하에서 우리가 어떠할 것인가를 묘사해 준다. 더 이상 슬픔이나 애곡하는 것이나 죄짓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또 21장 2-4절 말씀에서 살펴 보라. 우리는 그것을 능가할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모든 방면에서 완전하고 철저하게 될 것이고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육체적으로, 몸의 차원에서까지도 완벽하게 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완벽한 만족을 누리게 된 것이다. 모든 궁핍이 충만하게 채워질 것이고, 우리는 우리로 비참과 불행과 고통과 슬픔을 겪게 하였던 것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이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고난과 비교시켜 보아야 한다.
둘째, ‘의의 면류관’과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
“자녀이면 후사요 하나님의 후사니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라”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8)
‘의의 면류관’ 거기다가 우리는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벧전 1:3- ). 모든 사도들이 같은 교훈을 가르친다. 그것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고 더럽지 않을 것이다. 모든 어리석음과 악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만질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보류시켜 두신 것이다.
셋째, 우리는 거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과 하나님의 천사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고전 6:1-3) 우리들이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이다. 이것이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의지하며 사는 진리이다. 그들이 그들의 핍박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으며, 이것이 그들을 대적하는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 이겨내는 비결이었다.
넷째, 또한 모든 피조물도 역시 그것에 동참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피조물은 모든 썩어짐의 요소에서 완전히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낙원이 다시 건설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위대한 구원의 일부이다. 그것은 신자들이 용서함을 받는다는 것 만이 아니고 그들이 영적인 형태를 가지고 하늘로 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낙원이 다시 되 찾아지는 것이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6-9)
바울은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라고 말하고 있다. 온 옛 우주의 깨끗케 하는 위대한 일이 있게 될 것이고 죄악의 모든 잔재는 불타 없어지게 되며,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 새 땅’이 있게 될 것이다.(벧후 3:7) 우리들에게 사망이 멸해지게 될 것이며 악에 속한 모든 것들이 영원한 멸망의 상태로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20:11) 어떤 방식으로든지 우리를 해치는 것이 결코 없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시편 8편에서 예언된 것의 성취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여호와여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 이것이 바로 우리 앞에 제시된 위대한 약속이다. 우리가 “현재의 고남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는 유추를 끌어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을 비추어 생각할 때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주님의 이적들은 영광과 그날을 예고하여 비추어 주고 있는 그림자이다. 모든 피조물이 날들 중에서 그 날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 이러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처럼 용기를 잃고 좌절당하는 것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떠한 일이 세상에서 우리를 넘어지게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는가? 여러분은 다시 불평하고 불만을 가질 것인가? 여러분은 사람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줄까에 대해서 매우 걱정하겠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말로 할 수 없는 영광을 위해서 예비되고 있다. 이것은 나타나게 될 것이고 장차 드러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머리를 들고 가슴을 펴고 믿음을 가지고 장차 올 영광을 주시하시기 바란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세상은 지나가 버리고 잠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요동될 수 없는 나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자녀들을 위해서 ‘창세 전부터’ 예비한 그 나라에 우리가 속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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