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천년 왕국과 영원한 상태"(롬8:18-23) /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6권7장

강대식 2013. 6. 11. 09:54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리라”(롬8:18-23)

 

본문의 말씀은 장차 올 어느 날에 모든 피조물 전체에 이루어질 사실을 최종적이고 영구적인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저는 이 구절들이 어떤 상상적인 천년왕국에 대해서 어떠한 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역설한다. 이 지상에서 천년왕국을 믿는 사람들은 그것이 천년까지만 계속되다가 그 다음에 마귀가 다시 풀려 나오게 되는 죄악과 혼돈의 상태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요한계시록 20장 이외에는 천년기간에 대하여 말하는 부분이 없다. 그리고 거기에는 피조물의 상태에 대해서 하나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주목하라.

 

요한계시록은 상징과 비유와 은유들로 가득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열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으로 완전한 것을 나타낸다는 것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그러므로 열의 세제곱은 분명히 긴 기간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상징을 물량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고집하고 문자 그대로 천년을 가리키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계시록 20장에 있는 구절이 말하는 것은 오랜 기간동안 주님께서 왕노릇 할 것이고 주님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은 사람들도 그와 함께 왕노릇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 뿐이다. 성경 전체 어느 곳에서도 주님과 그의 성도들이 이 땅 위에서 왕노릇을 하게 되는 문자 그대로 장차 올 천년을 고대하라는 권면을 하고 있지 않다.

 

만일 문자 그대로 천년왕국 같은 것이 온다면 분명히 로마서 8장에 있는 이 구절은 모두가 천년왕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로마서 8장에는 그러한 구절이 하나도 없다.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의 서신들에서도 그러한 사건을 언급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 주님 자신은 더 더욱 그러한 언급을 하시지 않으셨다. 모든 혼란과 고통은 성경에 나오는 한 가지 진술만을 가지고 떠드는 데서 오는 것이다. 여기 로마서 8장 본문은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심으로써, 마지막 심판으로 인하여 죄와 악에 속한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멸망시킴으로써,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 새 땅이 들어옴으로 완성되게 될 것이다. 모든 피조물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속 받은 자의 영원한 상태와 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죽을 때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것은 현세의 세상은 끝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하여 최종적인 심판이 있을 때에 되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신자가 죽으면 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빌1:21-24) 8장 본문에서는 그것을 다루고 있지 않고, 몸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 사람의 완전한 구속이란 몸과 영혼이 다 구속받는 것을 말한다. 또한 피조물의 충만한 구속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사단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실패를 요구하며, 구속받은 자들의 완전한 회복을 요구하며 더욱 더 영광스러운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잠시 잠깐 있는 것이 아니고 최종적이고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고 영구한 것이다. 빌립보서 1장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 더 좋으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보다 더한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라는 말의 의미를 질문할지 모른다. 그 의미는 매우 어려운 주제이다. 제가 이해하기로 성경에서 ‘하늘’이라고 묘사되는 것은 보통 우리가 중간 상태로 여겨야 되는 것이지 최종적이고 영원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3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이것이 더 좋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몸은 포함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중간 상태요, 구속받은 사람들이 몸의 부활과 그 몸의 최종적인 영화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고 조건이다. 계시록 20장 4절에서 ‘영혼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영혼들’이지 몸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5장,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자는 자’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불완전한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쓰여진 용구라고 생각한다. 영화로운 상태에 들어가게 될 때에 그 몸은 활동하게 될 것이다. 현세가 용해되어 버리고 새 하늘과 새 땅, 영화로운 땅에서 영화로운 몸을 입고 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영적인 차원에서의 상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의 부활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우리가 다른 영역에서 계속해서 살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만일 이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사단을 물리치시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구속과 구원은 완벽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몸과 영혼으로 만드시고 물리적인 우주 속에 살도록 지으셨다.

 

결론적으로 첫째,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어떠한 것이라도 놀라서는 안 된다. 달라지게 될 것도 기대하지 마라. 여러분은 그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다.

 

둘째,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의 믿음과 소망을 사람이 세상적인 조건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어떤 일에 걸어서도 안 된다. 그 세상 중심에 와해의 원리, 헛됨과 썩어짐의 원리가 있다. 어떤 개선점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선은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에도 소망을 가지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라.

 

우리의 지위는 나는 지금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아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힘을 받았다. 영혼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나 그러나 내 몸은 아직 구원받지 못하고 죄가 내 몸 속에 있다. 몸은 죄의 몸이다. 나는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다. 바울은 그 결과 우리가 현재 ‘우리 속에 탄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탄식하는 주요한 이유는 ‘그 안에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처해 있는 상태를 알기 때문에 만이 아니라 다가올 일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기다리는 것은 더욱 고통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8장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 쓰여 졌으며,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우리에게 고난을 참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다. 고난을 극복하고 ‘넉넉히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오고 있는 이 영광에 대하여 확실해야 한다. 실제적이 되도록 하라. 이제 여러분은 아주 정직하게 “나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 한가족교회, 김영희사모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