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그리스도와 신자들 사이의 신비로운 연합의 성질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곧 여러 나무 조각들을 아교로 접착하여 하나가 되게 하는 일, 가지를 접붙임으로 한 나무가 되게 하는 일, 혼인의 언약을 통해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루게 되는 일, 머리와 지체가 한 영혼에 의해서 생기를 갖게 됨으로 하나의 몸이 되는 일들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그러나 예들은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의 신비한 연합을 묘사하는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죽음마저도 깰 수 없는 영원한 연합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보편적인 국면에서 설명한다면,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서 살도록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신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신자들이 그리스도께 친밀하게 결속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역사하심을 통해 우리가 영적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6:26).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격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사람이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와 동등한 위치로 변해 간다는 식의 본질적 연합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속성과 탁월함에 있어서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차이가 무한하다는 것을 간과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솔한 언행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비로운 연합이다. 그리스도와 우리를 하나의 인격으로 만들지도 않고, 그리스도와 하나의 본체가 되게 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인격을 그리스도의 인격에 가장 친밀하고 가깝게 결합시키는 연합은 정말 놀라운 신비가 아닐 수 없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은 거대한 신비이다. 그리스도는 성도의 머리가 되시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육체의 각 지체와 같은 유기적인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신비로운 연합은 초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산출된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고전1:30). 오직 하나님께서만 행하실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우리가 믿음의 끈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더욱 단단히 매어야 하지만 이 역사도 사실상 우리의 자의적 행사로 볼 수는 없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믿음을 가져야 할 주체는 우리지만, 믿음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은 매우 즉각적인 연합이다. ‘즉각적’이라는 표현은 연합을 위한 방편의 생략이나 배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적용되는 범위와 속도에 관한 문제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은 그리스도와 모두 다 같은 가까움의 정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은 또한 근본적인 연합이다. ‘근본적’이라 함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지속적인 유지를 말한다.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은 그리스도의 특권건과 위로를 근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전제가 된다. 만일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이 파괴된다면, 우리가 누리던 모든 소망의 열매와 특권들은 일거에 소멸되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은 매우 유효한 연합이다. 우리의 영적 생명은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을 통해 보전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이 우리에게 영적 생명은 전달될 수 없다(엡4:16).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의 또 다른 본질은 그 관계가 불가분해적이라는 것이다. 죽음마저도 그리스도와 영혼 사이의 연합은 끊어내지 못한다. 그리스도와 신자를 묶어주는 영원한 끈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연합의 끈은 무덤 속에서 썩지 않는다(롬8:35,38,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8:35). 그 어떤 장애물도 그 ‘신비로운 연합’을 해치지 못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높은 존영이 아닐 수 없다. 신격의 두 번째 위격을 가지신 분과 우리가 연합을 이루다니요! 이것은 최고의 영예이다. 무엇으로 이 놀라운 영광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이 사실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에게 견실한 위로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정말 너무나도 유쾌한 일이다.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고통과 궁핍과 곤고함이 여러분에게 닥친다 해도 여러분은 위로를 받고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열매를 맺는 것은 연합이 가지는 가장 직접적인 목적이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7:4).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떠한 선한 열매도 맺을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접붙임을 받은 모든 가지들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뿌리가 되신다(요15:8).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과 연합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즉시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모든 부요에 참여하게 된다(고전1:30).
그리스도와 성도의 신비로운 연합은 결코 깨어지지 않는다. 불명성은 은혜가 가지는 놀라운 본질의 특성이다. 그 은혜를 입은 모든 성도들은 생명의 원천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결코 분리되지 않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라”(골3:3). 신자들은 뿌리요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의 능력을 공급 받는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불멸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곤고한 영혼들에게 분명 적지 않은 위로를 줄 것이다. 죽음이 영혼과 몸을 묶고 있던 ‘은줄’을 풀어버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묶어 주는 ‘황금 사슬’은 결코 끊어내지 못한다(전12:6).
- 존 플라벨, 『은혜의 방식』, pp 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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