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러분이 ‘칭의’와 ‘성화’를 서로 무관한 것으로 여기며 복음을 능멸하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거룩을 의(義)와 분리시키는 사람들(육적인 삶을 살아간다 해도 자신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상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성화에 힘쓰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방종을 가리는 “덮개” 쯤으로 여기는 자들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성화(聖化)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거룩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임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칭의와 성화가 서로 별개의 것이라면 성결은 필요치 않습니다. 성화는 우리 영혼의 체질과 성품을 변화시켜 하늘을 준비하게 하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이 땅에서 선한 행실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으로 위대하신 구속주(救贖主)를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방종을 일삼는 자들은 로마서 4:5의 말씀을 들먹이며 자신들을 합리화하려 합니다.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나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하지만 이 말씀은 의롭다하심을 받은 사람의 게으름과 나태함의 타당성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도가 ‘일을 아니할찌라도’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게으름과 태만함을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된 표현이 아닌 것입니다.
사도는 사람들이 율법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의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길 바랬습니다. ‘일한 것이 없다’라는 표현으로 그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완벽한 순종이 아니면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율법의 엄격함에 부합하기 위해 ‘일할 수 있 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건치 않은 자’라는 표현 역시 그러합니다. 이것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후의 삶의 모습으로 이해하지 마십시오. 이 표현을 통해 우리는 경건치 않은 자들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고 찬미해야 할 것입니다.
- 존 플라벨, 『은혜의 방식』, pp 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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