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10/20 주일설교, 환난은 안식으로

강대식 2013. 10. 20. 14:44

 

본문: 살후 1:4-9

 

1. 환난은 인내와 믿음으로 견딘다

 

(살후1:4)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왜 믿는 자들에게 박해와 환난이 있는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시험과 원망에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광야생활을 거치는 동안 시험과 원망에 시달렸다.

하나님의 소원과 그들의 소원은 항상 불꽃 튀는 충돌을 빚었다.

 

이스라엘의 소원은 아무 환난 없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곧장 가서 누리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소원은 환난을 통해 그들을 정결케 하고 말씀으로 살게 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환난을 받지 않고서는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

 

(시119:71-72)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사람들은 고난으로 인하여 죽을 지경이 되어야 하나님께 돌아오고 그 말씀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기 전까지는 어찌나 당당한지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해 감히 말을 붙일 수도 없다.

다 죽을 지경이 되면 비로소 하늘에 눈을 돌리고 진리에 마음을 연다.

 

고난 당한 것이 그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다.

고난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주의 입에서 나오는 법도가 천천 금은보다 더 좋은 것을 알게 된다.

 

다윗은 기도했다. (시119:36-37)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내 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법도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사람에게 천천 금은에 대한 탐욕은 거의 본능적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돈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 떠나게 되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된다.

 

돈이 많이 있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을 사람이 탐욕으로 얻을려고 하면 멸망을 불러온다.

탐욕은 우상숭배요, 우상숭배는 파멸과 멸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딤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부자가 될려고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덫)에 떨어지게 된다.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게 된다.

그것이 결국은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

 

고난은 믿음과 인내로 견딘다.

(히13:5-6)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

우리를 돕는 자, 진정한 공급자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친히 말씀하셨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러니 어떤 환경도 사람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것이 없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우리 필요한 것을 주께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하신다.

필요한 것은 주실 것이고, 필요치 않은 것은 주시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이다.

 

안 주시는 것은 기다릴 줄 알고, 아버지의 뜻이 아닌 것은 안 주실 것을 알아야 한다.

구하는 것은 주셨을지라도 영혼은 쇠약하게 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시106:14-15)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하나님이 주신 고난은 믿음과 함께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믿음과 인내가 고난을 견디게 해주고, 우리를 보다 온전하게 만들어 준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된다.(약1:4)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것도, 믿음과 인내에 의해서다.(히6장)

(욥23:10)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그분이 우리가 가는 길을 아신다.

그분이 고난으로 단련하신 후에는 우리는 순금이 되어 나올 것이다.

금강석은 용광로에서 끓은 후에는 잡석은 녹아 없어지고 순금이 나오듯이 말이다.

 

하나님은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가르치고자 한다.

그 방법과 과정이 바로 광야생활이고 고난의 연단이다.

하나님은 멱우리 12년에 청교도들을 만나게 해주시고 그들을 본받게 해 주셨다.

 

이 고난의 세월이 없었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바벨탑을 쌓기에 바빴을 것이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진리를 가르치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은 고난을 주셔서,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셔서,

떡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기를 훈련하신다.

세상에 있는 좋은 것들은 다 없어질 것들이다.

영원히 남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고난은 많이 받았는데도, 믿음도 인내도 성장하지 못했다면, 참으로 무익한 고난이다.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고난 중에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고 사시기 바란다.

말씀이 있다면, 고난은 믿음과 인내로 견디기 쉬워지고 유익한 고난이 될 것이다.

 

2. 환난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한다

 

(살후1: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인내와 믿음으로 견디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해 준다.

그 나라를 위해 고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고, 믿음은 인내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믿음이 있을 수 없다.

또한 고난을 인내로 견딜 줄 모르는 사람이 믿음이 있을 리 없다.

 

공의로운 심판은 항상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시작하고 성도로부터 시작한다.

박해와 환난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인내로 견딘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들인다는 표식인 것이다.

무릇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자는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고난과 박해를 믿음과 인내로 견디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 것이다.

믿음도 인내도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히 여김을 받을 수 없지요.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신과 조급증을 드러내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겠어요?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다.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우리의 고난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그의 몸된 교회를 세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의 자기 피로 교회를 세우셨다.

그분을 따르는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로 교회를 세운다.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움으로 우리는 교회를 세운다.

세상의 바벨탑 세우는 것과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세우는 것의 차이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교회에 들어와 세속화 됨으로 상담학과 경영학으로 교회를 세우고 있다.

내면은 상담학으로 치유하고 외면은 경영학으로 조직과 건물을 세운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그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 자들이 세우는 것이다.

세상에 합당한 자들이 세상의 방법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에 합당한 자들은 박해와 환난 속에서도 믿음과 인내로 견디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십자가로 세우지 돈과 권력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만을 받으시지,

화려한 의식과 숫자의 자랑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움으로 그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초대교회 사도와 성도들은 그들의 몸에 고난을 채움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웠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고난을 남겨두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는 우리의 육체에 채울 고난을 남겨 두셨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주신 고난들을 믿음과 인내로 견디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다.

이러한 우리의 고난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

3. 환난은 안식으로 갚아 주신다

 

(살후1:6-7)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삯은 안식이다.

그리스도인은 고난만 받다가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아주시고,

환난을 받는 자들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박해와 환난을 믿음과 인내로 견디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듯이,

환난을 받은 자에게는 안식으로 갚아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시다.

 

박해와 환난을 가한 자들이 오히려 안식을 취하고

박해와 환난을 받은 자들이 환난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공의도 공평도 아니지요.

부와 권력으로 호화판으로 살던 부자는 천국에 가서 안식을 누리고,

거지 나사로는 여전히 지옥에 가서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공의가 아니고 불의이다.

공의의 심판이 아니고 불의의 심판이겠지요.

세상이 좋아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없고 진리도 없다면 그렇게 되겠지요.

 

그런데, 그렇질 않으니 어떡하는가? 엄연히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통치하시고, 심판하신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심판과 통치의 기준이 되기에 빠져 나갈 수가 없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사필귀정이니 정의가 이긴다느니 하는 것은 그 역사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은 주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이다.

(살후1:7-9)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이 땅에서 심판을 받지 않았다고 좋아할 것이 못 된다.

이 땅에서 그런대로 받은 자들은 덜 받을 것이요, 그렇지 않은 자들은 한꺼번에 받을 것이다.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것이다.

 

그 때가 바로 주님의 재림의 날이요, 그 때가 바로 심판의 날이다.

그 때에 형벌을 받을 자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복음에 복종하는 않은 자들이다.

곧, 자기만을 사랑하고 돈과 힘만을 사랑하던 자들과 복음과 진리를 대적하던 자들이다.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는 곳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이 없는 곳이다.

그곳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이다.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막9:48-49).

 

환난을 받은 자들은 천국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시다.

그러나 안식으로 갚아 주시는 고난은 죄의 고난이 아니고 선한 고난이다.

(벧전2:20-21)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의 고난이 죄로 인한 고난이 아니고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고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고난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받고 참는 고난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 주님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심으로 본을 끼쳐 주셨다.

우리도 그 자취를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세상 노름에 놀아나지 말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받는 고난을 징그러워 하거나 두려워 말고

믿음과 인내로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자.

 

때가 되면 공의로운 심판으로 안식으로 갚아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자.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실 것이다.

(시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PBA)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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