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0/6 주일설교,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강대식 2013. 10. 6. 14:18

본문: 엡 1:17-19

 

1.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업을 약속하고 있다.

이스라엘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업이시기도 하다.

(시33: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애3:24)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우리가 받을 기업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 우리가 알아야 한다.

이 땅에서의 영광만 바라보노라면, 이 영광의 풍성함을 알 수가 없다.

마음 눈이 밝아져야 이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볼 수가 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래서 마음 눈을 밝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바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이다.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부르신 것은

영광스럽고도 풍성한 기업을 주실려고 하는 것이다.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은 이 땅에서 누리는 부분도 있지만,

영원한 곳에서 영원히 그분의 상속자로, 함께 하는 상속자로 왕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고,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다.

 

마음 눈이 밝아져서 이 기업의 영광과 풍성함, 부르심의 소망을 볼 수 있을 때,

섭리 가운데 베푸신 고난도 궁핍도 믿음과 인내로 견뎌내고, 순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우리도 이 땅에서의 인생이 잠시 뿐이고 행인과 나그네로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음의 눈을 밝게 하여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묵상해야 한다.

그러면, 이 땅에서도 슬픔과 고통에 흔들리지 않고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다.

 

2.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그냥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과 화목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셨기에 하나님 전에 나아갈 길이 열렸다.

(히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몸이 찢김으로 성소 휘장이 갈라졌다.

일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이 피를 들고 목숨 걸고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이다.

주님의 몸으로 휘장을 열으셔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언제나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열린 것이다.

 

문제는, 교인들이 이 십자가의 희생을 잊어버리고 복과 문제해결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이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믿어,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십자가를 잊고, 육체의 일과 땅의 것만 구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믿음과 성령이 의심스럽다.

그래서, 믿음의 표지가 바로 회개이고, 성령을 받은 증거가 바로 회개이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회개하여 --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20:21)

 

회개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고, 회개하지 않은 마음 가운데 거룩한 성령이 거할 수 없다.

믿음도, 성령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지만, 그 선물이 올 때 사람의 반응은 회개인 것이다.

 

그리고 이 회개는 우리가 죽는 날까지, 믿음과 성령 안에서 하는 것이다.

죄와 싸우고, 죄를 회개함으로,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고 성화가 되어 가는 것이다.

성화의 반대는 육화이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이 믿음을 돕기 위해서, 보증하기 위해서,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이다.

이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주로 믿게 해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곧 우리의 영광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로 구원하시고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것이다.

자녀인 우리에게 영광으로 풍성한 기업을 주시는 것이다.

 

이제, 그 자녀들은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대로 살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길이고, 그리스도인의 길이고, 복된 영광의 길이다.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함이다.

 

삼위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라 성결, 곧 거룩함이다.

죄와 싸우며, 죄를 회개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는 것이다.

고난과 연단을 통해 거룩함을 이룰 때, 하나님은 영광의 풍성한 기업으로 축복해 주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도이다. 순서이다. 질서이다.

 

3. 기업의 영광과 풍성함을 알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야 하나님을 올바로 알 수 있다.

그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달라고 바울이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에 성령이 내주하고 계시지만,

우리는 지혜와 계시로 역사하시는 영의 역사를 구해야 한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제일 먼저 지혜를 구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야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계시해주신 것만큼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지혜의 영을 주셔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지혜와 계시의 영 없이 우리의 이성과 지성만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영으로 계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오직 그 말씀과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만 하나님을 알 수가 있다.

 

프로이드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하였다고,

즉 어릴 때 심어진 아버지 상이 하늘에 투영된 것이라고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성경에 성령으로 계시해 준 하나님이 아닌, 아버지 상의 하나님은 우리가 만든 하나님이다.

 

이민 1.5세대들이 아버지 하나님은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우리는 이 아버지 상으로 믿는 하나님은 버려야 한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상담학의 하나님 아버지는 잘못 된 것이다.

그 상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

은혜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한다.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4.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능력이 이루어 주신다

“그의 힘의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은 우리의 마음 눈이 밝아져야 알 수 있다.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결단이 아니고,

하나님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셔서 은혜로 주신 선물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우리 주로 믿는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이 있으라 하신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쳐 주신 것이다.

 

이 빛을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적이고 초자연적이고 영원한 빛’이라고 한다.

천지 창조보다 더 위대한 능력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창조의 역사보다 구속의 역사가 더 위대하고 영광스럽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분이시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은

우리를 세상에서 인도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인도하신 때와 같은 능력이신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신약성경에서, 지극히 크신 능력을 행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시다.

옛적에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신 것은 오늘도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기적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의 베푸심이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이다.

 

지금 놓여진 환경과 여건이 끝이라고 여기고 절망한다면,

그 사람은 우리에게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게 하시고,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부인하고 거절하는 사람이다.

 

여호수아가 말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와 내 집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 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심 같이 요단을 가르셨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셨다.

 

(수4:23-24)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홍해를 가르심 같이 요단을 가르셨느냐?

땅의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였다.

이스라엘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 였다.

 

우리 앞에 놓인 홍해도 요단도 우리에게 베푸시는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갈라 주실 것이다.

우리 앞을 지금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 철옹성도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무너지게 하실 것이다.

우리에게 베푸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우리로 알게 해 주실 것이다.

 

모세의 40년 광야생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시기였을 것이다.

애굽의 왕자로 40년을 살았던 사람이 광야 유목민으로 산 세월이었다.

그렇지만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과 베푸실 상을 바라보았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극히 크신 능력을 베풀어 주셨고 그 힘의 위력을 따라 역사하셨다.

 

그가 기도한 대로, 그가 괴로움을 받은 날수대로 화를 당한 년수대로 그를 기쁘게 해 주셨다.

주의 영광을 나타내 주셨다.

그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해 주셨다.

잠시 받는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셨다.

그리스도와 함께 받은 고난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게 하였다.

부르심의 소망,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었다.

 

성경의 이러한 기록들은 단지 옛날 이야기들이 아니다.

(롬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어렵고 힘들 때마다 성경의 기록들을 보시기 바란다.

환난 중에 낙심될 때마다 기독교 역사의 기록들을 보시기 바란다.

성경과 경건 서적들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해 준다.

거울과 경계로 우리를 일깨워주고 굳건하게 설 수 있게 해 준다.

 

기독교 2천년 역사는 하나님께서 그의 위력의 힘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그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보여주는 역사이었다.

로마 제국의 학살, 피의 메리 여왕의 청교도 화형, 카톨릭의 천년의 핍박.

핍박하고 괴롭히던 제국과 왕들은 다 무너졌지만, 교회는 계속 세워지고 개혁되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주신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혜의 계시의 영을 구하여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 눈을 밝게 해달라고 구해야 한다.

그래서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시고 베푸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아야 한다.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자족할 줄 아는 비결을 배우며,

우리의 믿음은, 우리에게 약속된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바라보고 붙들고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