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호튼

기독교는 소비자 중심주의를 수용하면서 저급화, 저질화하고 말았다/ 마이클 호튼

강대식 2015. 2. 20. 18:21

 

기독교를 시장화하는 경쟁 과정에서 현대의 기독교 세일즈 대표자들은 변질된 기독교의 축소판을 수용해 왔다. 소비자 중심주의를 수용하면서 기독교는 저급화, 저질화하고 말았다. 기독교의 그 위대한 신비들은 값싼 슬로건이 되어 버렸다.

 

장엄한 기독교의 찬송은 오버헤드 프로젝터에서 투사된 영상을 보면서 따라 부르는 경박한 징글벨 소리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는 마치 광고주들이 판매를 촉진하기 위하여 고객들에게 보여 주는 영상 이미지들과 매우 흡사하다. 지금은 청중이라고 불리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교인들이 황홀한 간증들이나 즐거운 예화들 또는 영적 소비를 충족시켜 줄 성공적인 삶을 위한 실패 방지 계획 등을 기대하게 되었다.

 

상품이 널리 그리고 잘 팔리려면, 상품을 고급화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함께 경쟁하는 다른 물품들보다 더 구매력이 높기 위해서 기독교도 변형되어 신속히 팔리고 사람들이 쉽게 현혹되는 매력적인 포장에 의존해야 할만큼 저급화되고 말았다.

 

복음도 팔아야 하는가?” 우리는 타락한 인간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하여 복음을 핫바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성경은 복음이 과연 팔리도록 되어 있는 물건이냐?”라는 좀더 기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육에 속한 사람(자연인)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 ”(고전2:14). 회심은 인간의 조작의 결과가 아니라 말씀과 성령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말씀이 없다면 결코 제자들이 아니라 단지 소비자들일 뿐이다.

 

복음을 신약성경에서는 도발적인 것,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으로 특징짓고 있는 반해 오늘날 설교되는 있는 복음은 결코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일반적으로 인기 있는 상징으로 이용되고 있다. 심지어 포주들, 포르노 작가들 또 연쇄 살인범들과 연쇄 강간범들도 십자가를 차고 다니고 있으며 어떤 설교자들은 십자가 위에 조명을 달아 십자가에서 이상한 빛이 나도록 꾸미는 일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매달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며 괴로워 몸부림치는 예수님의 육체는 요즘의 사람들에게 전혀 기분 나쁜 것이 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요즈음 자주 선포되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달리신 것”(고전2:2)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고 죄와 허물로 죽은”(2:1) 사람들, 즉 죄인들의 구미에 맞는 복음은 전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아니다. 성경의 복음은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의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아주 멋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출발하지 않는다. 그렇게 출발하는 것은 마치 불신자들의 문제점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교육의 결핍이나 영적 또는 윤리적 방향 감각의 부족에 있다고 보는 것과 같다. 그와는 반대로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더 깊은 문제 제시와 그에 따르는 더 깊은 해결책에 대한 제시로부터 시작된다. “(예수)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8).

 

우리는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에게 구원자를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상업적 복음 전도가 우리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지 모르지만 작금의 부흥 운동은 성경적 신앙과는 아주 다른 운동이다.

 

에릭 프롬은 만약 하늘나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감히 표현하라고 한다면 현대인은 세상에서 제일 큰 백화점과 같은 모습을 묘사할지 모른다라고 조소하였다. 혹자는 우리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이, 아니 아마도 우리들 모두가 또 하나의 현대판 성전인 대형 쇼핑센터로부터 길들여진 것과 똑같은 소비자의 자세를 가지고 교회에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로 옷 입혀졌다는 바로 그 사실에 만족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자. 하나님의 지고의 선과 그분의 영광 장체보다 낮은 어떤 것을 추구하지 말자.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상품이나 테크닉이 아니라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분은 상점에서 팔릴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또 그분을 살 수도 없다. 반대로, 팔리고 구입되는 자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고 우리를 사신 것이다. 즉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을 만족시킨 것이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그 잔혹하고, 피 묻은, 사람들을 거슬리게 하는 거침돌인 십자가와,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신 구세주를 값싼 상업주의자들의 손에서 구출해 낼 때이다. 구세주는 세일로 내놓은 상품이 아니다.

 

- 마이클 호튼,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e-book, pp 141-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