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웬,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교만한 태도로 성경을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자들에 대해 크게 화를 내고 싶다. 나는 자신의 능력을 크게 넘어서서 교만하고 무지하게 연구하는 자에게서 진리를 발견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하겠다.” “성령은 자신이 모든 영적 조명의 직접적 저기이기 때문에 택함받은 자의 지성에 역사해서 그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영적 특권이 당연한 것인 것처럼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불가능하므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이성의 한계로 말미암아 필수적인 과정이다.
내프가 주장한 것처럼 이성은 “표준으로서의 지위를 일관되게 거부당했고, 오히려 신학의 인식적 원리인 성경에 예속되어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청교도 신학자들은 소키누스주의 신학자들이 이성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도 이성을 신앙의 법칙으로 삼아 이성에 높은 지위를 부여했고, 이것은 그들의 신학이 오류가 많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
청교도에게 이성은 유용하지만 한계를 갖고 있었다. 복음의 비밀은 겉보기에는 모순처럼 보이는 수많은 진리를 드러내지만, 성령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하심으로써 그들이 이성으로 말미암아 다양한 신학적 오류에 빠지는 길로 들어서지 않고, 이 진리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신다. 굿윈은 모든 신학적 오류의 원인은 “이것들을 하나로 조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신앙이 아니라 이성이 제일 원리가 된다면 “구원의 비밀을 전혀 또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플라벨도 이성은 “신앙과 계시에 속해 있는 문제들을 주제넘게 중재하려고 할 때, 단지 찬탈자”가 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신 이성은 신앙의 발 앞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많은 역사가 이성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성이 자체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성경의 진리들을 믿게 하려고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신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은 영적 진리를 파악하도록 택함받은 자를 이끄시는 행위자이시다. 이성만으로는 복음의 비밀의 고지까지 올라갈 수 없고,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진리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초자연적 믿음이 요구된다.
만일 이성만으로 복음의 비밀을 파악하려고 시도한다면,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오류와 이단에 빠지고 말 것이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 주어진 초자연적 믿음만이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이 자신만큼 오래 되신 아들을 두셨다고 믿게 할 것이다!
- 조엘 비키, 마크 존스, 『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 pp 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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