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만병통치약을 제공하려고 세상과 경쟁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그 오아시스가 다름아닌 신기루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 사람은 기독교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이전보다 더욱 굳게 확신하게 된다.
우리는 실용주의적 복음을 반대해야 한다. “이 은막의 스타들을 보십시오, 성공한 사업가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이 체육인들을 보십시오. 기독교가 이들을 이렇게 성공적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실용주의적 복음을 배격해야 한다. 그들은 “예수께 기회를 드립시다”라고 말한다.
그러한 틀 안에서는 기도도 인격적인 관계가 아닌 하나님을 조작하고 조종하는 테크닉이 되어 버린다. “나는 기도를 통해 비전이 펼쳐져 보이는 그 역동적인 차원의 실체를 발견하였습니다”라고 로버트 슐러는 선언했다. “그 점을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저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실제 있어요. 그냥 즐기면 그 차원이 느껴질 겁니다. 내가 해봤어요.”
그렇다면 기독교는 더 넓은 시장을 목표로 하여 자기 긍지를 개발하기 위한 더 나은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는가? 자녀 양육의 더 나은 방법을--? 아니면 도덕 증진을 위해 더 큰 자극을 제공해야 하는가? 나는 지금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아침 경건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가?”라거나 “어떻게 하면 당신의 크리스찬 라이프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와 같은 설교를 듣는 일에 신물이 났다.
나에게 다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4단계”의 다른 목록을 주려고 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 단계라는 것들을 다 시도해 보았는데 그 단계라는 것들과 방법이라는 것들이 인생의 더 깊은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주기는커녕 피상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변도 되지 못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3:10,11).
이것이 실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된 주장들이 난무하고 집 주소를 어떻게든지 알아내어 우편 주문하도록 획책하는 구세주들이 횡행하는 시대에 신선한 자극이 아닐 수 없다.
- 마이클 호튼,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e-book, pp 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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