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롬1:3-5)
믿음과 순종이라는 말은 언제나 함께 취급되어야 한다. 곧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성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믿음의 순종, 복음에 순종한다는 것은 지성적으로 승인하는 것보다 더한 무엇이다. 그것은 의탁의 요소와 복종의 요소를 내포한다. 사도가 이 로마서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서신들 속에서도 그 점을 거듭 언급한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6:17).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10).
성경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마음’이라는 말은 감정만을 뜻하지 않고, 인격의 중심을 뜻한다. 사람이 믿을 때 그의 인격 전체로 믿는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순종’이라는 말이 의탁과 복종의 전체 개념을 드러낸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일종의 ‘신앙주의’가 아니다. 만일 ‘믿음의 순종’이라는 이 어구를 기억만 한다면 이 이단의 희생물이 될 사람은 하나도 없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전체 인격이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 두 아들 비유 가운데서 이 주제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첫째 아들은 대답하고 가지 않았으며, 둘째 아들은 ‘가지 않겠다’고 말한 후에 뉘우치고 ‘갔다’. 순종이란 회개하고, 가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복종시키고 우리 자신을 의탁시키며 우리의 전인격을 수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의 가르침에 따르면, 회개하여 죄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라도 복음을 믿는 사람으로 여길 수 없다고 말한다. 복음을 믿는다고 말한다면, 나는 죄인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전에 있었던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죄에서 돌아서고, 세상의 죄에 더 이상 속해 있고 싶지 않으며, 그에게 속하여 나를 위해 그처럼 많은 일을 행하신 그분을 즐겁게 해드리고 싶을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일종의 ‘신앙주의’를 가르치고 있는가? 여러분이 그분을 여러분의 구주뿐만 아니라 주로 믿지 않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없다.
“모든 이방인(민족들) 중에서” - 믿어 순종케 하라고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첫째,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부르실 때, 그를 유대인에게 보내시고 또 이방인에게도 보내신다고 말씀 하신다(행26:). 둘째, 이것이 로마서의 대 주제들 가운데 하나이며 사도가 가장 기뻐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16). 그런 다음 전체 인류는 복음을 필요로 함을 입증해 나간다. 1:18-3:20까지 줄곧 그 문제를 다루며 모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음을 말한다.
2장에서는 유대인들도 역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3:22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것을 마무리 짓고 있다. 에베소서를 보면, 이 시대에 일어난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라고 말한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사도가 여기서 공포하고 감격해 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주라는 것이다. “다른 이름으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음이니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었다.
“모든 민족들 중에 믿음의 순종” - 모든 민족들의 구주이시다! 얼마나 놀라운 메시지인가!
“그 이름을 위하여” - “그의 이름에 목숨을 걸고” 바로 이것이 사도 바울이 행하는 일의 이유이다. 성경에서 이름은 언제나 지시된 인격을 알고 이해하도록 주신 계시를 대신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름들을 통해서 자신을 알리셨다. 이름은 그 사람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 그 사람의 이름을 사용한다. 사도는 그런 의미에서 그 이름을 사용한다. - 그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고 대표한다. 사도는 나는 그의 영광을 위해서, 사람들이 그를 영화롭게 하고 그를 자랑하도록 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의 최상의 동기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순종함으로써, 믿음의 순종을 통해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는 필연적 결론이 성립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그를 영화롭게 하기를 거절하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죄의 진수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영화롭게 하라고 부르심을 받았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소명이요, 우리의 임무이다.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할 수 있는가? 그를 믿음으로써 그를 영화롭게 할 수 있다. 사람이신 예수 – 하나님의 아들, 그가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와 나를 구속하셨다, 그렇게 말할 때, 그를 영화롭게 하고, 그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그의 탁월하심을 드러내야 한다. 그의 덕과 그의 위대하심과 그의 영광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할 때 그를 영화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그를 찬미하기를 간절히 바람으로써 그를 영화롭게 한다. 우리는 그분이 그처럼 영광스럽고 놀라우신 분이시기에 모든 사람이 와서 무릎을 꿇고 절하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는 그가 오시기를 고대한다. 다음에 그는 왕 중 왕으로, 주의 주로 오실 것이다. 하늘의 구름을 타고 거룩한 천사들에 둘러싸여 오셔서 그의 원수들을 퇴패시키고 죄와 악을 추방하여 그의 나라를 세우고 왕노릇 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나는 사도요. 나는 복음을 전한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는 온 세상이 그의 발아래 꿇어 엎드리기를 바란다. 오, 세상이 그분에게 머리를 숙인다면! 그 이름을 위해서 나는 그 일을 행하노라고” 이것이 성경의 위대한 주제이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삶,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로 말미암아 주께 영광이 되고 있는가? 바울은 그리스도에 취한 사람이다. 그는 그의 이름을 위해서 살고 일했고 수고하였다. 우리도 그 일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특권이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
오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이 내 속에서 자라나시고
다른 모든 것은 쇠잔하게 하소서. - 요한 카스파 레베이트의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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