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1:6-7)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들로 그 안에 있다. 우리는 그와 하나가 되었다.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속한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 첫째,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그것이 바로 그들로 그들되게 하신 것이다. 사도가 그 점을 맨 먼저 지적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를 끌어낸 것, 마귀의 집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게 된 것은 우리가 행한 어떤 일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17:23). 사도가 여기서 그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 이해하고 믿기 힘든 진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 확실하듯이, 우리는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다. 다른 설명은 전혀 없다. 여기서 사도는 핍박과 위험에 처해 있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점을 알도록 온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여! 여러분은 6,7,8장으로 내달려 나아가면서 “성화교리에 관해 알고 싶다”라고 말하지 말라. 만일 여러분이 마땅한 바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셨듯이 여러분도 사랑하심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더 이상 나가지 않고서도 거룩하게 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둘째, “부르심을 입은” -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시니, 그들을 부르신다. 그리스도인은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다. 주님께서는 “청함을 입은 자들은 많되 택함을 입은 자들은 적다”라고 말씀하신다. 성령의 약속은 특별하게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여기서 ‘부르심’은 일반적인 부르심이 아닌 ‘효과적인 부르심’을 뜻한다.
효과적인 부르심이란, 두 사람이 같은 설교를 듣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믿고 다른 사람은 믿지 않는다. 부르심은 두 사람에게 똑같이 비쳤으나, 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효력이 있었고 그로 하여금 자기를 복종시켜 믿고 그리스도인과 함께하게 하였다. 그것이 효과 있는 부르심이다. 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의 백성에게 속해 있다. 물론 말씀 전도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의 결과로 그 부르심의 효력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는 고전 2장에서 말하고 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말씀을 효력 있게 만드는 것은 오직 성령뿐이다. ‘부르심을 입은’ 우리는 그 말의 위대한 의미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셋째, “성도” -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효력있는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다. 바울은 로마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어휘를 사용한다. 로마 카톨릭은 어떤 엄격한 시금석을 가지고 그 말을 적용하는 사람들을 선별하고 그 말을 붙여줄 사람들의 탁월한 삶을 규정짓곤 한다. 그들이 어느 표준에 도달하면 ‘성’이란 말을 붙이는 공식적인 의식을 거행한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완전히 위배되는 일이다.
성도는 어떠한 사람인가? 그 말은 거룩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Saint’와 ‘Holy’, 모두 다 같은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과 그를 찬송키 위해 구별된’ 것이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모세가 ‘거룩한’ 산에 올랐다고 말하고, 성전 안에 있는 기명들을 거룩한 기명들이라고 불렀다. 모두 하나님께 구별되어 하나님께 찬송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드려진 것이라는 뜻이다. 모든 것으로 ‘부터’ 구별되었다는 의미이다. 즉 사도가 여기서 사용하는 그 말의 의미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소극적인 측면에서 본 거룩이다. 그 소극적인 측면에서만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도덕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도덕적이 되는 것과 거룩하게 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로 하여금 성도가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구별되는 데 있다. 세상으로부터만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자신을 드린다. 만일 이것이 해당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6:11).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의미에서 성도이다. 그가 죄에 떨어질 수도 있고, 어린 아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리스도인이면 성도이다. 그는 이 유효한 부르심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다른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따로 떼어져 있다. 즉 어두움의 나라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는 뜻이다.
그 말의 의미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더 주관적인 일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별하신 다음에 우리 속에서 계속 일하신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것이 거룩하게 되고 성도가 된다는 것의 주관적인 국면이다. 나는 나아가면서 더 성도다와지고, 내가 성도라는 더 확실한 증거를 가지게 된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성도가 되게 하는 것은, 부분적, 주요한 측면에서 볼 때 성령의 작용이다. 그러나 내 자신도 그 거룩하게 되어가는 측면에서 한 역할을 감당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나그네요 행인이니 이 모든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셨으니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내 자신이 성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는 성도로 구별되었다. 이제 나는 성도답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세상에 가까이 살려고 하는 그러한 헛수고를 그만 두자. 우리는 그것을 자랑하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타내자. “사랑하는 자들아--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러한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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